제10강 분위기를 잘 타자
큰딸과 나는 어느 서점에 갔다가 책 몇 권을 샀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근처 피자집에서 피자를 시켜 놓았다. 피자가 나오기 전이라 금방 산 동시집을 꺼내 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아까 읽어보니 이 동시들 참 좋더라.”
“응, 아빠. 그런데 피자 먹고 그 이야기하면 안 될까?”
“그래, 그러자.”
나는 큰딸의 제안을 바로 받아주었다. 위 대화에서 보듯, 대화는 아이들의 심리적 상태에 맞추어 해야 한다.
그만하고 싶어.
다음에 하면 안 될까?
아이들이 위와 같은 말을 할 때는 대화를 중단해야 한다. 아이들이 재미있는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위와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은 그런 일에 몰두하고 있고 그런 몰두도 다른 유형의 감성적 상태일 것이다. 따라서 두 개의 감성적 상태가 만나면 부딪칠 수 있어 반발할 수 있다. 그 반발은 나중에 그런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대화가 필요 이상으로 너무 길어지거나 자주 하여도 지겨워질 수 있다. 아이들의 심리적 상태에 따라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 대화의 길이, 대화의 빈도를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먼저 분위기의 중요성에 대한 사례를 살펴보고 글쓰기에서 분위기의 중요성을 살펴보자. 많은 사람이 고전적 이야기인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안다. 중국의 대유학자 맹자의 엄마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한 교훈이란 말로서 그 내용은 이렇다. 맹자가 어릴 때 장례식장 근처에 사니까 장례놀이를 하고, 시장에 사니까 장사놀이를 하였다. 그래서 그의 엄마가 세 번째로 이사한 곳은 학교 근처였는데, 맹자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 분위기가 그처럼 중요하다는 말이다. 맹자의 예는 장례산업이나 상업을 천시하던 시대의 고리타분한 이야기이고 또한 너무나 옛날 이야기라 별로 맘에 닿지 않는다. 그래서 그러려니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지 모른다. 맘에 닿을 수 있는 저자 주변의 사례를 두 개 들어보기로 하자.
분위기의 예 1♥♥♥
저자가 학창시절 과외선생을 했을 때였다. 학생의 부모님께서 어떤 집에서는 대학교수이시고, 어떤 집에서는 사업을 하시고 어떤 집에서는 큰 회사의 임원을 하시고, 어떤 집에서는 정부의 고관이셨다. 아이들이 다들 공부를 잘 했는데. 그 아이들과 이야기해보면 교수집의 아이들이 대체로 책읽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아마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기니깐 그것을 보아왔고 또한 책이 주위에 많으며 서재의 장식용이 아니라 부모님께서 자주 꺼내보시는 책들이란 걸 보아왔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면 아이들은 책을 자주 접하는 태도가 형성된다. 그래서 그런지 공부를 특히 잘 하였다. 교수가 아닌 집안에서도 책이 많은 집안의 아이들은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것이 많고 가르칠 때 이해가 빨랐다.
분위기의 예 2♥♥♥
저자의 친척인 초등 5학년생에 관한 몇 년 전의 이야기이다. 말을 해보니까 나이에 비하여 상당히 아는 것이 많았다. 가까운 친척이 3, 4일을 같이 지내는 모임이 있어 저자도 그 애도 그리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저자의 큰딸과 중학교를 다니던 작은딸도 거기에 와 있었다. 하루 지나서 큰딸이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쟤 영어가 보통이 아니야. 아주 잘해. 내말 다 알아듣고 말도 잘해.”
저자는 외국에서 대학교수를 했던 터라 영어를 좀 하는 편이다. 그래서 영어로 말해보니 저자의 영어를 다 알아 들을 뿐만 아니라 말도 곧잘 하였다. 나아가 좀 어려운 영어단어 몇 개 물어봐도 아는 것이 아주 많았다. 우리나라 일류대학의 학생들이 그 애만큼 잘 할 수 있을까? 글쎄다.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그 애 부모도 상당히 똑똑한 편이다. 그러나 그 부모가 천재는 아니었는데도 그 애는 왜 그처럼 아는 것이 많고 영어도 잘하고 다른 공부도 잘할까? 돌연변이가 아닐까? 혹시 책읽기 덕이 아닐까? 그 부모에게 물어본 결과 어릴 때부터 그 애에게 책을 많이 사주었다고 한다. 지금은 중학생인데 중학교에서도 뛰어나게 공부를 잘한다고 들었다. 책읽기의 효과로 보인다. 그 애의 책읽기는 지금도 이어가고 있으며 그의 동생도 책을 아주 많이 읽는다고 한다. 책 읽기의 효과에 대해 제17강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위의 두 예 중에서 첫째의 것에서 보면, 집안의 유형(직업)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위의 두 번째 예에서 보면, 집안의 유형보다는 엄마와 아빠가 관심을 가지고 분위기를 만들어 주느냐가 더 중요하다. 즉,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사주고 책 읽는 습관을 가급적 어릴 때 익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 대화 등에서 뿐만 아니라 글쓰기에도 분위기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런 분위기에서 감성이 자극되기 쉽고 자극되면 분출하게 미련이기 때문이다. 분위가가 좋으면 대부분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런 분위기에서 그림을 그린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분위기에서 글을 쓴다.
위에서 보듯, 자극된 감성의 분출방법으로서 글쓰기를 하려면 감성적 분위기를 타야 한다. 시는 특히 더 그렇다. 그건 시가 읽기도 어려운데 쓰기는 더 어렵기 때문이다. 시에 관한 대화는 감성적 분위기가 아닐 때는 정말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예컨대, 프로야구 경기를 보면서는 시에 관한 대화를 거의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반면에 가을의 아파트 단지의 벤치에서 노란 은행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함께 보고 있을 때면 시에 관해 대화할 수 있는 감성적 분위기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낙엽과 관련된 추억, 친구에게 보낼 편지 내용, 단풍여행에 관한 주제 등이 잘 어울릴 수 있고 그런 대화를 하다보면 글쓰기 이야기로 이어지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때그때의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평소 일기를 쓴다든지 하는 몸소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 한결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하면 글쓰기뿐만 아니라 공부도 잘할 것이다. 분위기 형성에 중요한 것은 소위 타이밍이다. 즉, 그런 분위기는 가급적 어려서부터 만들어주기 시작하여야 한다.
시는 읽기와 가르치기 또는 그에 관한 대화 모두에서 감성적 분위기가 필요하지만, 쓰기에는 더욱 더 그렇다. 물리적으로 보아 감성적 분위기가 아닌데도 시를 쓸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예컨대, 좁은 방의 책상에 앉아서 시를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실제로 경험한 감성적 상황을 가슴속에 재연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경험하지 않은 것을 상상으로 가슴속에 그려놓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요컨대, 그런 곳에서 시를 쓰는 사람은 심리적인 감성적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처럼 감성적 분위기는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것도 포함하며 후자가 사실상 더 중요하다. 그렇지만 물리적 분위기가 감성적일 때 심리적 감상적 분위기를 만들기가 더 쉽다. 예컨대, 가을 벤치에 앉았을 때, 봄에 돋아나는 새싹을 보고 있을 때, 또는 물안개 가득한 아침 강가에 서 있을 때, 가슴속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건 바로 물리적 분위기가 감성을 자극하고 있어 그에 대한 반응에 의해 심리적인 감상적 분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감성적 분위기와 그런 자극된 감성만 가지고는 시가 잘 써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는 어느 장르의 글보다 짧게 함축된 문장으로 자극된 감성을 비유와 해학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을 격렬하게 표현하는 폭발 능력도 필요하고 조금씩 분출시켜 잔잔하게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게 시 쓰기이다. 그래서 시를 써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수려한 문장과 함축된 문장으로 수필 등 산문형의 글을 더 잘 쓸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습작이라는 자신과의 오랜 싸움을 해야 하는 게 시 쓰기이다. 오랜 자신과의 싸움인 성격 때문에 시 쓰기를 가르치기가 어렵다고들 말한다. 단순히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가르치기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한다.
그런 어려움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저자는 시도 쉽게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다. 역설적으로, 어렵게 하는 그 이유를 찾아내기만 하면, 오히려 다른 어느 장르의 글보다 쓰기도 쉽고 가르치기도 쉬운 것이 시이다. 그럼 그 이유가 뭔가? 그건 가슴이 닫혀있기 때문이다. 닫힌 것을 여는 건 열쇠이다. 앞의 제5강에서 설명했듯이, 시 쓰기를 포함한 모든 글쓰기의 열쇠는 바로 글의 실마리로서 그 실마리를 찾으면 된다. 저자는 독자에게 그 실마리를 찾아주지는 못하고 또 찾아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실마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런 상황은 독자에 따라 다르고 저자는 그런 상황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마리 찾기는 남이 찾아주는 게 아니라 각자 스스로 찾아야 다음에 잘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목적 중 하나는 실마리를 찾는 방법을 가르쳐주자는 것이다.
이 책을 읽더라고 글의 실마리 찾기는 오랜 시간에 걸친 자신과의 싸움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었거나 읽지 않았거나 다 같이 자신과의 오랜 싸움이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지 않다.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글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더 이상 헤매지 않고 곧바로 걷기만 하면 되는 신나는 여정의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전에는 잡초가 가득하여 황량하던 저 황무지가 아름다운 꽃과 신나는 새들의 노래로 가득 차있을 것이다. 다만, 길이 멀어 땀깨나 흘려야 할 뿐이다. 가다가 나무 그늘에 잠시 쉬거나 졸졸졸 흐르는 맑은 냇물에 목을 축이고 가면 된다. 아름다운 꽃과 속삭이어도 보고 나비 등에 타 날아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가다보면 꽃이 되어 볼 수도 있고 나비가 되어 볼 수도 있다. 그런 신비의 길을 혼자 걷지 말고 딸, 아들과 같이 걷기 바란다. 같이 가면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면 눈이 순수해지고 그 길이 동화의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글쓰기의 분위기는 딸과 아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가급적 한두 살 때부터, 무릎에 앉혀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부터 만들어주기 시작해야 한다. 어릴 때는 그렇게 해주다가도 딸과 아들이 자람에 따라 그만두는 엄마와 아빠가 대부분이다. 그런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다만, 딸과 아들이 자람에 따라 그 방법을 달리해야 하는데, 그런 방법을 몇 가지 아래에 예시한다. 이들 외에도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을 사용하여 딸과 아들의 글쓰기 능력을 키워주면 좋을 것이다.
1. 자라는 나이에 맞는 책을 아이들과 같이 읽고 내용을 요약하고 느낌을 글로 쓰고 이야기하기
2. 학년이 중 2나 중 3이면 책 이외에 신문사설 등을 함께 읽고 느낌을 글로 쓰고 이야기하기
3. 어떤 일(예, 집안 청소, 꽃밭 만들기, 등산, 소풍 등)을 같이 한 후 그에 관한 느낌을 글로 쓰고 이야기하기
위에 추가하면, 어떤 나이든 한 가지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일기쓰기다. 엄마와 아빠가 일기를 쓰고 아이들도 쓰게 하는 것이다. 일기의 종류나 일기에 관한 기타 사항은 제19강에서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다.
<어른을 위한 시>
나이아가라 폭포
세상만사 서러울 때
여기 와
목 놓아 보라
그대 울음은
긴긴 세월을
안으로 안으로만 맴돌던
삶의 굽이굽이에
시퍼렇게 맺힌 멍울을
침묵으로 굳어진 입술로
경련 일으키듯 토해내느라
흰 치마 뒤집어쓰고
절망의 단애(斷涯)를 뛰어내리며
오직 한 마디의 첩어(疊語)로
쾅쾅
하얀 안개로 제 몸을
산산이 부수는 소리
단말마의 흰 파편일 뿐
아픔은
흩어진 살집 조각조각을 부추겨
거품 짚고 일어나
의식의 끝까지 몸부림친다.
한 치의 높이로 다시 일어섰다가
이내 겨우 거품 되어
스스로 자지러지는
허망한 한숨이지
한숨의 깊이만큼 골 패인
흘러온 세월보다 더 아득히
배를 깔고 누운
흘러가야 할 세월에
더욱 목메는 그대여
저기
저기를 보게
울어 더욱 맑아진 그대의 눈에
방울방울 맺힌 눈물마다
7색 영롱한 물보라 타고
그대 영혼의 파편들이
높이
높이
피어오르는
무지개
무지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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