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풍경(2) 가을풍경(2) 늦가을 오후 텅 빈 공원의 긴 의자 지금은 떠난 그녀가 그의 곁에 늘 앉던 자리에 낙엽 하나가 날아와 살짝 내려앉는다. 낙엽이 그를 올려다보고 그가 낙엽을 내려다본다. 마주보고 사그락거리다가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 낙엽이 날아간다. 그를 빠져 나온 마음이 낙엽을.. (블로그시집) 제2부 그때 그 시절 2015.12.14
풍경(1) 풍경(1) 해가 금방 넘어간 서녘하늘 붉게 물든 노을 속으로 새 한 마리가 빨려들고 미루나무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서 있는 들녘 속으로 서서히 조금씩 가라앉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하고 보이는 것들은 모두 실종해야 하는 시간 미처 실종하지 못한 것들이 마지막 주.. (블로그시집) 제2부 그때 그 시절 2015.12.14
잡초 잡초 반겨줄 아무도 없다 집착할 곳도 없다. 돌무지의 박토이라도 좋다. 뿌리를 내릴 수만 있다면 죽은 듯 살아갈 수 있지만 재수 없게 명당에 뿌리를 내리면 목이 잘리거나 통째 뽑힐 테니까. 설혹 목이 잘리어도 뿌리만 박혀 있다면 잘린 부위에 새 목을 돋아낼 것이다. 뿌리채 뽑혀 아.. (블로그시집) 제2부 그때 그 시절 2015.12.14
음치퇴치법 음치퇴치법 산에 사는 것들은 음치가 없다. 산새들이 노래를 잘한다. 나무와 바람이 합창을 잘한다. 노래를 전혀 못하는 그대여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산에 올라가 야호! 하고 한 번 목청껏 소리를 질러보라. 소리를 내지 못하던 바위들이 그대들의 투박한 목소리를 아름다.. (블로그시집) 제2부 그때 그 시절 2015.12.14
산에 관한 단상(斷想) 산에 관한 단상(斷想) (1) 산에 사는 것들 중 대단한 것들은 낮은 곳에 살고 별것 아닌 것들은 높은 곳에 산다. 큰 나무들은 산자락에서 살고 작은 나무들은 산봉우리에 산다. 큰 새는 산자락에서 살고 작은 새는 산봉우리에 산다. 속 넓은 훈훈한 바람은 산자락에 살고 속 좁은 쌀쌀한 바람.. (블로그시집) 제2부 그때 그 시절 2015.12.14
꿈속에서 살고 싶다. 꿈속에서 살고 싶다. 물구나무를 선다. 시원한 푸른 하늘에 발을 담그고 나를 떠받들어오던 지구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올린다. 내 앞에서 늘 거들먹거리던 인간들이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린 채 내 가랑이 사이에서 꿈틀거린다. 별이 민들레꽃으로 총총히 핀 은하수를 따라 이 지구를 들.. (블로그시집) 제2부 그때 그 시절 2015.12.14
가을 풍경 가을 풍경 북한강변의 산비탈 숲은 비가 내린 뒤면 허물을 벗고 허물은 안개가 되어 하늘의 치마폭이 되어 펄럭거린다. 바람이 그 치마폭을 들추자 하늘의 파란 엉덩이 속살이 해맑게 드러나고 속살 아래에는 벗은 하늘의 월경피로 물든 조각보가 알록달록 아름답다. 조각보 한 조각의 .. (블로그시집) 제2부 그때 그 시절 2015.12.14
강설(降雪) 강설(降雪) --시조 1-- 천상(天上)의 허(虛)에서 무(無)들은 오래 오래 순결의 무게로 육모로 꽃발 빚어 빛바랜 인간사(人間事)마다 소록 소록 목화 밭 *작시후기: 오래전 어느 겨울 날 내가 아는 어떤 동료학생이 자기 가까운 친척이 경찰고위 층에 있다 하기에 내가 어려서 어렴풋이 들은 .. (블로그시집) 제2부 그때 그 시절 2015.12.14
산인(山人) 산인(山人) -김소월의 산유화에 부쳐- 꽃은 산이 좋아 산에 살고 새는 꽃이 좋아 꽃과 더불지만 나는 사람 싫어 꽃과 새와 더불어 살고픈데 꽃은 벼랑에서 고개 저리 돌리고 새는 돌아앉아 꼬리 털며 찌르르륵 * 훅시, 나는 자연인이 되고 싶다. (블로그시집) 제2부 그때 그 시절 2015.12.14
겨울나무(2) 겨울나무(2) 과즙이 충만한 과일이랑 가진 모든 것을 베풀고 뼈만 남은 모습이 초라하다. 새들도 품을 떠난 지 오래다. 흑백만이 허용되는 겨울 들판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초라한 그림자로 죽은 듯 서 있어야 할 것이다. 풍만한 육신을 수시로 흔들던 바람을 몸짓마저 버린 앙상한 팔 사이.. (블로그시집) 제2부 그때 그 시절 201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