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변: 한국문화의 특성에 관하여 시리즈의 글을 쓰고자 한다. 여기서는 다섯째(V) 글로서 집단주의를 뒷받칭하는 이론, 가치관 및 조직원리 등을 기술한다. (이 시리즈의 글은 주제를 위해 시간과 공간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것들이 하나의 가상 공간 및(또는) 시간으로 융합될 수도 있다. 이하 동일)
V. 집단주의: 이론, 가치관, 조직원리, 업적평가 등
(1) 집단주의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 유교
지원: 집단주의의 이론적 근거, 기치관, 조직원리 등을 말씀해주신다고 했어요.
교수: 그렇게 하지. 먼저 집단주의를 뒷받침하고 있는 동양적 이론을 설명하겠네.
지원: 네.
내 설명은 아래와 같다.
다른 글에서 이미 많이 썼고 뒤에서 더 쓸 것이지만 동아시아에서 집단주의를 뒷받침하는 이론은 공자가 창시한 유교이다. 유교가 가리치는 것은 이론이라기 보다는 심오한 이론이 없는 일종의 주장뿐이다. 이를 테면, 공자가 강조한 것은 충효사상이다. 왕은 왕이라는 이름하에 절대권력을 가지고 신하는 왕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복종해야 하는지에 관한 설득력 있는 이론이 없다. 부모는 부모라는 이름하에 자식은 부모에게 무조건 효도를 해야 한다. 이에도 이론이 없이 부모라서 그렇다는 식이다. 신하와 자식이 그런 것을 따지면 불경이요 불효다. 이러다보니 직장에서도 상사의 이의를 제기하면 안 된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상당한 교사와 교수는 자기가 선생이니까 자기가 가르치는 건 뭐든 학생이 수용하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무조건 복종 내지 수용 이론을 개발하고 설파한 사람이 공자이고 그런 공자를 모시는 곳이 향교이고 서원은 그런 공자의 이론을 무조건 따르는 사람들의 아지트였다. 성균관이 그 이론을 가르치는 공식교육기관이었고 서당이 그런 교육을 하는 사교육조직으로서 오늘 날의 학원이었다. 공자이론이 공산국가에서는 이미 죽은 지 오래지만, 사실 공산주의 체제가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는 사상이니까 죽은 공자가 부활한 사상이 공산주의인 셈이다. 공자는 그 무조건적인 사상과 이 시리즈의 다른 글에서 설명할 총체적 사고(holistic thinking)으로 동양을 오늘날의 동양으로 비참하게 만들어온 해악을 기친 이론가임에도 그런 모심을 받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그의 분석적 사고(analytic thinking)로 서양을 오늘날 서양으로 발전시킨 큰 은인에도 그런 모심을 받지 않는다. 그런 중국 사람뿐인 공자를 우리 조상은 최고로 모셔왔다. 어처구니 없는 사대사상에 기인한 무조건 모시기였다.
지원: 왜 공자를 그처럼 모실까요?
교수: 동양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한 분야에 대가(큰 인물)이 나오면 그를 넘어서는 안 되는 불문율이 있는 경향이 있다네. 그래서 공자를 넘어서면 안되고 그를 모시지 않으면 불경에 해당되지. 종교가 가장 전형적인 집단주의이며 종교에서 모시는 신을 넘어서면 불경이지. 중세기독교에서 그런 불경을 저지르으는 자는 파문을 했고 파문은 한마디로 말해 죽음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하였다네. 그래서 집단주의가 대새인 동양에서는 공자를 신처럼 모시고, 후학이 선학 중 최대의 대가인 공자를 넘지 못한다는 말이네. 이런 경향은 동양에서 만연하고 특히 우리나라는 그러하네. 실력에서도 그래서 학문의 발전이 없지. 예컨대, 한의학에서 허준을 넘어서는 사람이 조선시대에 없었다네. 지금도 그런 사람이 없어서 TV에 나오면 한의사는 누구나 허준과 동의보감을 입버릇처럼 왼다네.
지원: 네. 그러고 보니 유교에서도 그렇고 한의학에서 그런 것 같네여.
교수: 그래, 현대의 우리 역사에서 큰 인물을 넘지 못하는 예를 더 들어보겠네. 정치적으로는 독재자였던 이승만을 국부로 모시고자 하는 이야기가 요새 있네. 그를 국부로 하자는 생각을 지원의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원: 글쎄요. 잘 몰라서…..
교수: 그의 국부 주장은 잘못된 발상에 기인하네. 그가 국부라 불릴 수 있으려면 두 가지에 대한 업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그렇지 못하였지(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블로그의 다른 글 '역대 대통령에 대한 소고'라는 카테고리의 두번째 글 참조). 그 하나는 건국시점의 흔히 나타나는 위기에 대한 관리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의 기틀 다지기를 해야 하는 것이지. 첫째인 위기관리는 이 승만이 비교적 잘 한 셈이야. 한국의 단독정부 수립과과정의 각종 위기를 잘 극복하였다네. 김구가 주장한 남북이 하나로 된 정부수립은 정서나 이론상으로는그게 맞지만 실현가능성에서 불가한데 그에 끝까지 매달리는 건 허황할 정도인데, 그런 주장도 이겨내 단독 정부나마 잘 만들었지. 나아가 우리 남한의 최대 위기였던 6.25도 잘 버티고 뒷 일도 잘 처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봐.
지원: 네. 그는 독재를 하여 두 번째 업적인 민주주의 기초다지기는 못한 것 같죠?
교수: 안카깝게도 그 말이 맞아. 그건 못한 정도는 아니고 대실패였지. 독재를 하여 4.19혁명이 일어나 도망가는 꼴이 되고 말았어. 그런 큰 혁명 초기에는 늘 그렇듯 4.19 혁명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5.16쿠데타가 일어나게 한 장본인이야. 그 후유증으로 박정희의 유신정치라는 독재 중의 독재를 경험해야 했고 전두환이란 무지막지한 군인의 통치가 이어졌고, 끝으로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치를 30년이 넘게 경험해야 했지. 지금도 진정한 민주주의 나라가 아니라 할 정도로 아승만의 후유증은 커. 계파정치, 갑을논란, 부정부패, 강성노조 등은 진정한 민주주의에서는 이처럼 심하지 않아. 이승만의 독재를 원인(遠因, 먼 이유)으로 하고 박정희의 군사독재를 근인(近因, 가까운 원인)으로 한 후유증이지.
지원: 국부로 불릴 수 있는 상술한 두 업적을 이룬 분이 존재하나요?
교수: 존재하지. 미국의 죠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야('역대 대통령에 대한 소고'라는 카테고리의 두번째 글 참조). 그는 독립전쟁을 위기를 극복하면 성공시키고 위스키 반란이라 불리는 위기가 q발생했지만 그것도 잘 극복했네. 그리고 대통령을 자꾸 하라는 요구가 있었고 혹자는 종신 대통령을 하라는 주장도 했지만 두 번만 하고 3선을 하라니까 손사례를 지고는 홀연히 자기 고향으로 Virginia로 내려가 농사일을 했다네.
지원: 그래요. 훌륭한 분이네요. 진정한 국부고요. 이승만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런….
교수: 그렇지. 박정희라는 독재자도 또한 우리가 넘지 못하는 대가로 되었네. 그를 욕하면 보수주의자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을 거야. 그는 독재자 이하도 이상도 아닌데도 말이야. 그는 인권을 무시하고 4.19로 싹이 튼 민주주의를 말살시킨 장본인이네, 먹기 살기 해결해주면 그래도 되는가? 공자를 섬기는 나라 사람들임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서비정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자가 주장하고 선비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인(仁)을 하나도 없이 먹고 살기만 해주면 인권이고 민주주의를 짓밟아도 된다는 말인는가? 그는 분명 경제개발이라는 것을 이룬 점에서는 업적이 있지만, 인간 본연의 기본권을 말살하려 했지. 유신정권은 그 단말마적인 시대였고. 또한 박정희만큼은 아니더라도 김대중('역대 대통령에 대한 소고'라는 카테고리의 두번째 글 참조)도 진보주의자에게는 그도 넘어서는 안 될 대가의 대우를 하고 있지. 그를 비난하면 진부주의자는 나를 비난을 할지도 모르네. 비판을 아예 못하게 하여 대가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작용하는 우리라 후학이 선학을 넘어설 수 없는 게 우리야.
지원: 말씀을 들으니 그런 느낌이 드네요.
교수: 어떤 사람을 넘어서려면 그 사람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해. 비난도 못하게 하면 넘어서지 않겠다는 말이거나 그런 능력이 없음을 의미해.
지원: 네. 그러고 보니 비판은 부정이 아니라 하신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나요.
교수: 그렇지, 비판은 생산적이라 앞으로 나아갈 발판이고 부정은 비생산적을 넘어 퇴보를 하는 지름길임을 의미해. 그런 차이가 있어.
지원: 네.
교수: 이제 개인주의에 대해 말해보겠네.
그렇게 말하고 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집단주의와 달리, 개인주의에서의 리더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집단의 구성원간 이해조정에 국한된다. 오늘날 작은 정부가 개인주의에 근거한 정부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보수당인 공화당은 작은 정부를 위한 정책을 펴는 정당이고 민주당은 큰 정부를 지향하는 정당이다. 작은 정부에서는 국민의 활동에 정부가 가급적 간섭을 하지 않고자 하므로 세금도 적게 거두어 정부가 할 역할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 반면, 미국의 진보당인 민주당은 큰 정부를 추구하는 정당으로서 복지라든가 기타의 민간활동에 간여하여 자원배분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관여한다. 따라서 그런 간여할동에 필요한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시행하기 위하여 재정적 자원이 필요하여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은 세금을 더 많이 걷우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미국의 민주당 역할을 하고 새누리당이 미국의 공화당 역할을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작은 정부가 아니라 큰 정부처럼 권력을 너무 많이 행사하는 것 같아 미국의 공화당 냄새가 나지 않고, 더민주당은 지나친 복지를 지향하는 것 같아 미국의 민주당 같은 냄새가 냄새보다 더 진한 냄새가 난다.
(2) 집단주의의 가치관: 의리
지원: 이제 집단주의의 가치관에 대해 설명해주시면 좋겠어요.
교수: 그럼세.
내 설명은 아래와 같다.
집단주의에서 강조하는 가치관은 의리이다. 그 의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배신이라 한다. 집단주의에서 으리란 충성도를 의미한다. 의리는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사조직은 깡패집단에서 이들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이의라 나 충성도는 은혜를 입은 자는 그 은혜를 베푼 자(두목)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함을 의미하고, 그렇지 않으면 배신이 된다. 의리의 사전적 정의야 어떻든 실제에서는 은혜를 입으면 명령의 내용여하를 불문하고 졸개는 두목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게 의리이다. '무조건 복종'이란 표현에서 보듯, 복종해야 하는 명령은 애초부터 옳고 그름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다. 리더가 옳으면 옳고 그르다면 그른 것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리더십은 설득이 아니라 명령으로 이루어지며 수평이 아니라 수직적 존재로서 독재를 의미한다. 깡패집단에서 보듯 집단주의에 근거한 모든 조직에서는 이처럼 복종이 거의 의리라는 말과 동어처럼 사용한다.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연설에 안경을 벗어 닦거나 손벽을 적게치거나 졸면 충성심부족으로 그냥 고사포로 쏴죽이는 게 집단주의의 극단적인 경우이다. 이와 달리, 개인주의에서는 강조되는 가치관은 정당성(legitimacy)이다. 리더가 정당한 방법, 정당한 내용으로 구성원을 리더쉽을 발휘하지 않으면 구성원은 복종하기를 거부한다.
의리와 배신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역대 정부에서 흔히 사용하던 개념이다. 그 표현이야 어떤 단어를 쓰던 말이다. 박정희 시대에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의 전신)을 하다가 미국으로 도망가 박정희에 대한 여러 가지 폭로작전을 펴다가 파리에서 쥐도새도 없이 사라진 김**은 배신자로 찍혀서인지인지 납치되어 비명에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박정희에 대적한 두 김씨의 가신 그룹도 서로간 형임 아주 하면서 의리를 중요시했고 그 덕에 그들은 정권을 잡는 데도 성고한 것 같다. 박근혜정부에서도 의리와 배신의 개념에 대한 예외는 아니라서 방송에서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이 이들 두 말일 것이다. 유**를 집권당 원내총무에서 내쫓다시피 하고 그 후 그는 총선내내 그 두 단어의 회오리에 휩싸이다 시피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 덕에 무난히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역설적인 결과가 되고 말았다. 새누리 당에서는 그렇게 배신한자가 용이되어 스언하여 한다.용어에서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친노가 뭉치는 것도 이런 의리 때문이며, 노무현이 민주당을 버리고 열린 우리당을 만들어 나오자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특정 지역의 미움을 샀던 것도 배신과 의리의 문제일 것이다.
깡패집단의 말이 났으니 몇 마디 하여보자, 우리 깡패조직에서 현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사는 김두한이 아닌가 한다. 그는 일제시대 때 깡패조직으로 민족의 울분을 불살랐다 한다. 그게 사실인지 아니면 깡패기질 때문인지는 그만이 알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래도 울분을 불사른다는 명분이 있었고, 일제 당국과 깡패조직에 시달리던 일반인은 그의 주먹을 텅해 억눌린 마음을 추스리며 만족스러울 수 있었다. 오늘날 그의 활동을 영화화하여 우리에게 재미도 주고 그 자신은 물론 그 자손도 국회의원을 하는 등 상당한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의 깡패조직은 오늘날의 조폭의 전신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런 전신으로 후대에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의리와 배신, 이들 두 단어를 방송으로 듣다보면 우리 역대 정부는 깡패의 조직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번 정부도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한다. 정부뿐만 아니라 정당도 전에는 4.19당시의 민주당에서 신파니 구파니 하고 싸우더니 상도동계니 동교동계니 하면서 주도권을 잡는 계파간 알력이 강했다. 그때는 그래도 낭만적 싸움이었지만 그 후 친이니 친박은 친박연대가 당으로 등록할 만큼 개인의 성이 당이름을 가지는 웃지 못할 수준의 싸움질이 성행했다. 야딩에서는 친노니 비노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고 지금은 친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여당에서는 친박이니 비박과 싸우다 못해 친박 내에서도 원조친박이나 가박이니 진박이나 그야 말로 찡어지고 얽히고 설켜 좌장이 있느니 없느니 하며 싸우는 게 마치 깡패조직과 같다. 누가 말해 보라 그이들과 깡패조직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깡패와 정치조직은 싸움방식에서도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이 톱을 들고 문으 자른다거나 망치로 국회문을 부순다거나 최류가루를 뿌린다거나 똥물을 뿌린다든가 하는 게 깡패와 다를리 없다. 싸움목정세서 다르다고?그렇지. 깡패는 돈을 바라고 싸우고 정치인은 권력을 잡기 위해 싸우지. 정치꾼의 싸움에서는 자기 계파를 위해 월급을 주는 국민은 안중에 없어 밤낮으로 상대당과 싸우는데 그 여파는 깡패의 싸움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친다는 점에서 국붖역에 피해를 주는 깡패와 다를 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 깡패조직'과 같은 느낌 이상이 든다.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깡패조직을 가진 곳이 북한이다. 그러고 보면 북한이건 남한이건 우리 한반도는 깡패수준의 나라이다. 왜 한반도만 이런 수준일까? 아휴.
의리와 배신이란 말은 역사적으로 공자가 가르친 유교 사상에근거한 개념이다. 물론 실제로 사용한 단어는 충이니 효니 하는 충효사상이지만 이들 충효도 따지고 보면 의리의 개념이다. 즉, 3강5륜 중 부자유친란 말의 친은 사실상 자식이 지킬 도리로서 의리를 말하며, 군신유의라는 말의 의는 바로 신하의 도리지키기로서 충이라는 의리이다. 부부간의 부부유별이란 별은 따지고 보면 서열관계에서 부인이 행할 것으로서 가장인 남편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란 의리이다. 그렇지 않으면 칠거지악에 속하기 때문에 퇴출감이다. 그런 것을 지키지 않으면 불효, 불충 및 칠거지악으로서 이들은 바로 배신의 다른 표현이다. 이를 테면, "너는 내가 낳아주고 길러 주었는데 나에 대해 의리를 지키면 효이고 그렇지 못하면 배신인 불효야."하는 식이다. 또한 "내가 보호해주고 중히 썼으니, 나에 의리, 곧 충을 다하지 않으면 배신, 곧 불충이다,"라는식이다. 배신의 낙인이 찍히면 후레자식이나 대역죄인이고 친정행이다. 그러면 그 사람의 인간다운 삶은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나라는 공자의 사상을 가장 충실히 떠받드는 나라이다. 중국과 북한은 공산주의 치하에서 공자사상을 버린지 오래이고 일본은 본래 공자에 우리처럼 충실하지 않았다. 집단주의는 이처럼 그 조직을 하나로 묶는 사상 내지 가치관으로 공자사상인 충효에 근거한다. 그게 우리나라를 오늘날의 계파 내니 파벌의 나라인 우리 동양인으로 만들었고 그 중에서도 한국과 같이 TV만 켜면 계파싸움을 하는 정치의 나라로 만들었다. 이런 조직이 장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부작용이 개인주의의 것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많고 그게 우리 한국이다. 누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했던가? 맞는 말이다.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했던가? 틀린 말이다.
(3) 집단주의의 조직원리: 관계
지원: 집단주의의 조직원리는요?
교수: 그 원리는 이렇네.
내 설명은 아래와 같다.
집단주의에서 집단을 얽히게 하는 조직 원리는 관계(relation)이다. 사실 국가도 가족관계인 씨족집단에서 부적국가로 그리고 부족국가에서 고대국가인 고조선, 부여,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 등으로 발전했다. 집단주의에서 관계란 좁게 말해 계급을 의미한다. 그런 계급에서 가장 밀접한 느낌을 제공하는 것은 가족관계에서의 계급이다. 아빠와 아들, 형, 동생 등의 호칭이 관계 형성에 가장 효과적이다. 그게 마치 가족 같은 느낌을 주어 우리 맘에 가장 큰 친밀감을 주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가족관계 용어로 감성적 느낌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있어 사회생활에서도 이런 용어로 관계를 맺는 잘못된 풍조가 있다. 전에는 사회적 집단가의 느슨한 관계인 선배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요새는 이보다 친근감을 주는 호칭단어인 형, 이모, 누님과 같은 가족관계 용어 사용이 대세이다. 대학에 가면 이런 말이 사용된다. 그렇지 않으면 왕따가 된다. 나아가 어른 사이에서도 식당에 가면 서빙하는 여자가 아무리 어려도 여자손님은 그 서빙하는 여자를 언니나 이모라 부르고, 남자손님도 이모라 부른다. 관계를 너무 중시하는 우리이고 가족관계를 이용해 더욱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족관계 용어를 가장 두드러지게 사용하는 집단주의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일본에서도 존댓말을 사용하지만 우리나라만큼의 가족관계적 계급적 집단주의는 아닌 것 같다. 지금 우리는 한 살만 많거나 작아도 형이나 아우니 한다. 그래야 그가 속한 집단(대학, 직장, 마을)에서 왕따 없이 살아간다. 일본에서는 5살까지는 친구처럼 지내고 타향에서는 10살까지도 그렇다고 한다. 우리도 40여년 전에는 그와 같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행동하면 왕따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같은 동양이라도 존댓말이 없는 중국에서는 10살 차디도 친구가 되고 서구, 특히 영미에서는 할어버지와 손자가 서로 이름을 부른다. 그렇다고 손자가 할아버지를 존경하지 않고 마구 대하는 건은 아니고 우리보다 속으로 우러나는 더 높은 경지의 존경을 표한다. 우리는 할아버지를 형식적으로 존대하지만 세대차이가 나느니 뭐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많고 우러나 존경을 가지고 할아버지를 대하는 손자가 얼마나 될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공자사상에 충실하게 가르친 것이 우리이다. 그러나 가족관계 무너지는 게 우리이다. 아버지의 돈, 바로유산, 유산, 유산.... 아버지나 엄마도 유산을 받고 더 받을 것이 없으면 버리는 게 우리이고 그걸 보고 배우고 있는 손자들, 손녀들이다. 현대, 두산 및 롯데의 형제간 재산다툼이 너무 TV에 나와서 유산 다툼의 풍조로 되고 유산을 받은 후 부모를 버리는 사회교육이 되었다. 이복 형제자매간은 물론 친형제간인 이맹희와 이건희 사이에서 보더라도 돈 앞에서는 친형도 없다고 할 것이다. TV를 보니 이건희는 '이맹희는 그는 아버지도 버린 자식'이라고 내용을 말한 것 같다. 그걸 보고 저 사람이 어찌 저런 사회교육을 하는 강사가 되었나 생각되었다. TV에 그런 말이 나오도록 하였으니 말이다. 서양에서는 형의 이름을 부르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가족에서만은 그런 형에게 이름을 부르는 건 정서에 맞지 않는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부르는 건 정말 아니다. 신동주와 신동빈의 사건에서 보듯, 아버지도 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관계를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람은 동업을 못한다. 하다 잘 되면 그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독차지한다. 내가 다니던 카 센터는 동업을 했는데 한 사람이 트릭을 쓴 것 같았다. 직접 내개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내 앞에서 자기들끼리 한 말을 종합해 보면 이렇다. 카센터가 좁아 큰 장소로 옮기작 합의를 본 것 같다. 그 중 한 사람(A)이 열심히 물색해 좋은 장소를 잡았다. 다른 사람(B)가 좋다해서 새 장소에 대해 계약을 했다. 그 계약을 하자 A는 이사를 위한 여러 가지 후속작업을 하였나보다. 그러자 B는 말을 바꾸었다. 자기는 여기 있을 생각이다. 그래서 둘이 내가 있는데 막 다투었다. 그러자 B는 너와는 같이 동업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 후 B는 옆의 자동차 판매가게 장소로 그 카센터를 확장해 그 장소에 그대로 영업을 계속했다. A가 열심히 새 장소를 물색하는 중에 B는 옆가게를 나가도록 하고 그 자리로 확장하는 계약을 추진햇던 것이다. 위에서 처럼 동업이 불가한 한국인간의 관계임에도 LG와 GS의 멋진 동거와 그후 순조로운 독립은 참으로 놀랍고도 아름다운 동업과 분립과정이었다. 내가 요새 전자제품으로 LG의 것을 사는 건 그 이유에서라고 보면 된다. 문제는 그들 두 그룹의 후손들이 그룹내에서도 끝까지 그런 모습을 보일까? 글쎄다.
지원: 네. 저도 대학생일 때, 언니라는 말을 매일 수십법은 했어요.
교수: 그랬을 거야.
지원: 그것이 나쁜 풍조인지도 모르고.
교수: 집단주의에서는 그런 비판을 생각조차 못하게 해. 그런 것의 부작용의 결과이지.
지원: 네.
교수: 관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를 하나 예로 들어 관계맥기가 왜 문제인지 알아보세.
지원: 네 그렇게 하면 좋겠어요.
교수: 먼저, 문학분야를 살펴볼까?
지원: 네.
교수: 우리나라에서 문학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지원: 글을 잘 써야 하지 않나요?
교수: 물론이지. 그러나 그것으로는 안되네.
지원: 등단해야 한단 말이시죠?
교수: 바로 그거야. 등단이란 제도는 문학에서 문학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야. 아무리 글을 잘 써도 그것 없이는 문학인 취급을 못 받아. 지금은 다소 달라져 등단 없이 문학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건 아주 예외야. 등단이란 관계맺기 없이는 힘들어. 그래서 등단을 시켜준 자는 등단을 받은 자의 영원한 은인이고 스승이라 극진히 평생 모실 어른이다. 등단이란 정말 없어져야 할 제도이다. 왜냐하면 "요새 시의 운율이 사라진 느낌이 들어 금년에는 그런 점에 중점을 두었다."는 식의 심사평을 읽어보면 한두 사람의 구미에 맞는 글을 써야 등단된다는 말이라네. 그런 구미를 예측할 수 없으면 등단이 불가하지. 그런 경우 그런 구미를 사전에 어떻게든 알면 등단이 쉬워지는 부조리가 발생할 수도 있어.
지원: 그렇갰네요. 그런 누가 등단시켜야 하나요?
교수: 독자이지. 다빈지 코드(Davinci Code)라는 소설을 쓴 Dan Brown도 등단 없이 그 글이 좋아 독자가 좋아해 유명 소설가가 되었지. 또 해리포트(Harry Porter)라는 판타지 소설을 쓴 Joan Rolling도 독자가 등단시킨 경우야. 서양에는 등단제도가 없어.
지원: 그런 그런 과정은 어떤 건가요? 출판비용은 누가 담당해요?
교수: 좋은 글을 가지고 출판사에 가면 출판사가 그 글을 보고 좋은 글이라 판단되면 출판 여부를 결정해.
지원: 그럼 출판사가 등단여부를 결정하나요?
교수: 아니지. 그는 출판 여부를 결정하고 독자가 그 글을 평가하는 것이지.
지원: 아, 네.
교수: 이처럼 한두 사람의 맘에 드느냐 않느냐는 이유로 능력 있는 문학인이 영원히 빛을 못보지. 나아가 그걸 이용해 자기가 아는 제자나 지인을 등단시키는 거야. 명함에 시인이나 서설가로 표시하고 싶어 등단하는 사람도 많고. 남녀관계로 등단시키지 말라는 법이 없고 특정지역의 출신이라 등단시키지 말라는 법이 없어. 온갖 바람직하지 못한 등단제도이지.
지원: 그렇군요. 전에는 등단제도에 대한 이런 비판을 읽어본 적이 없어요.
교수: 역시 집단주의에서 실종된 비판의식 때문이지. 가만보면 경상도 정권에서는 박**이란 분이 각광 받고 그 후 전라도 정권이 들어서자 서**가 그런 대우를 받기고 해. 이게 독자가 아니라 등단제도에서 나타나는 한 형상일 거야.
지원: 그렇군요. 그런 것이 이제 눈에 훤히 들어와요.
교수: 그 점을 감안해 앞으로 글을 쓰면 좋은 안목으로 쓰는 글이 될거야.
지원: 감사해요. 모든 게 달리 보여요.
교수: 이제 관계에 대해서는 이만 이야기 해도 충분해. 이 관계가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네. 된다. 그래서 집단문화에서는 사이비 종교가 많고 미신이 많아. 우리나라에 사이비 종교가 많고 미신이 많은 이유는 그래. 나중에 이 사이비 종교와 미신 문제를 다르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이야기를 마감하세.
지원: 네. 많은 것을 배우고 그래서 생각을 바꾸게 하는 말씀이 너무 좋아요. 감사해요.
(4) 기타: 클럽사회, 연공서열,
(나중에 수정하고 보완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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