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변: 한국문화의 특성에 관하여 시리즈의 글을 쓰고자 한다. 여기서는 여섯째(VI)의 글로서 집단과 그 구성원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이 시리즈의 글은 주제를 위해 시간과 공간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것들이 하나의 가상 공간 및(또는) 시간으로 융합될 수도 있다. 이하 동일)
VI.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집단 내 구성원간의 관계
지원: 교수님, 오전에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개념과 집단과 구성원간의 관계를 말씀하셨어요. 지금부터는 구성원 상호간의 관계에 대한 말씀을 부탁드려요.
교수: 알았네. 개인주의에서는 구성원 간에는 가급적 독립적 관계(independent relationship)를 유지하려 해. 이런 태도는 내 가치를 존중 받기를 바라는 만큼 남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것이지. 서로 지나치게 깊은 관계를 맺게 되면 나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기 시작하고 그러면 남의 가치를 존중해주지 못할 수 있어, 구성원 간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있지. 그렇다고 구성원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고 필요에 의해 서로 접촉하지. 그런 접촉은 관련 사항이 공동관심사인 경우나 내 권리가 침해받아 그 수정을 요구할 경우에 국한되지. 필요에 의한 부분에 국한하다보니 나와 관심이 없는 것에는 아무런 간여도 하지 않지.
지원: 그런 예를 좀 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교수: 내 휴대폰의 카버가 좀 낡았어. 친구들을 만나면 하나 같이 그거 오래되었으니 새것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는 거야. 내 차가 좀 오래 되니 새 차로 바꿀 때가 되었다는 거야. 뭐 이런 것들이지.
지원: 그런 말은 저도 해요. 친구 사이에 흔히 있는 말인데요.
교수: 그게 다 집단주의에서 남의 일에 너무 관심이 많아 간여하는 현상이야. 집단주의에서는 구성원간에 상호의존적 관계(inderdependent relationship)를 가지려 한다네. 미국에서 MBA 과정에 있을 때의 일이야. 어떤 미국의 학부 여학생이 자동차 운전석 옆 창에 유리가 깨져 없으니까 그 문을 비닐로 막고 다니는 거야. 그래 내가 다른 미국의 MBA과정 친구에게. “저걸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깐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해. 그건 그녀의 문제니까 알아서 할 거라고 말이야. 그때 보니까 앞 후드가 찌그러진 차, 앞 범퍼가 찌그러진 차 등의 학부학생 차가 꽤 많더군. 우리나라 같으면 “그걸 차라고 몰고 다니느냐?” 또는 ”창피하지 않느냐?”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지. 그런 뒷말이 무섭거나 싫어서 우리네 거리에는 그런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아예 없지. 차가 좀 오래 되면 중고차 산다는 선전 쪽지를 차에 꽂고 다니는 사람이 사는 나라이니까.
지원: 참으로 행동이 자유로운 사회네요.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이런 간섭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모르고 사는데.
교수: 일반대중도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런 간여, 즉 집단주의 문화를 더 심화시키는 대중 매체도 있어.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MBC 방송에 전원일기란 최장수 프로그램이 있었다네. 그 프로그램의 인기 때문인지 KBS에도 그와 유사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지. 두 프로그램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이웃에 대한 관심이나 간섭, 그리고 이웃을 내 잣대로 평가하는 말, 그 말이 소문이 되고, 이웃에 문제가 생기면 도움 요청이 없어도 이웃사촌이란 이름으로 해결해주려 드는 것이 주제인 프로그램이었지. 그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이라 장수한 것이지. 어처구니 없는 내용의 프로그램이네. 이런 프로그램도 집단주의에서는 인기가 있고 그런 문화가 잘못이란 걸 모르고 살아. 집단주의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지.
지원: 직장에서도 그래요. 누구는 옷이 어떻다느니 누구는 성격이 어떻다느니 등 말이 많아요. 때로는 소문으로 돌아다녀 그 사람을 왕따 시켜 상처받아 퇴직하기도 하고요. 솔직히 그런 일로 피곤할 때가 많아요. 그러면서도 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그런 문화에 깊숙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라 잘못이란 것을 모르거나 알아도 항의할 수도 없고요,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교수: 반성해야지. 한국인이면 누구도 그런 반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지. 집단주의에서는 그처럼 남을 내 잣대나 또는 동료, 즉 집단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지. 그런 잣대는 객관성보다는 감정이 개입되기 쉬워. 그 감정적 평가 자체가 문제투성이인데다 다른 구성원의 공감을 얻는 과정에 과장과 허위가 개입되기 쉬워. 바늘에 찔리면 돌고 돌아서 본인에게 돌아올 때는 손목이 잘렸다거나 심하면 목이 짤려 불구나 죽기직전이라는 수준으로 되어버리지. 그런 소문은 공식적 의사소통이 아닌 입과 입으로 이어진 시대의 정보부족 탓에 기인해. 그런 버릇이 지금도 남아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고 모함까지 하는 우리네 심리가 작용한 까닭이야. 그 결과 구설수에 오른 사람이 왕따가 되거나 심한 심리적 내상을 입어 감당하기에 벅차서 종국에는 그 조직을 떠나야 하지. 그 후의 생활도 비참할 거야.
지원: 네. 그런 우리네 문화 때문에 저도 모든 행동에 주위를 무척 의식하게 되어요. 이를 테면 옷을 입을 때도 내 동료들의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까 걱정 하는 등 말이에요.
교수: 주위에 대한 지나친 의식. 그게 집단주의에 사는 사람의 대표적 행동양식이야. 문화심리학에 그런 방면의 연구가 많다네.
지원: 그래요?
교수: 그래. 누가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주위의식에 관한 실험연구결과를 하나 소개할 게. 설명이 실감나도록 하기 위해 지원을 그 예로 들겠네.
지원: 네, 교수님.
교수: 전면에는 지원이 웃는 사진을 놓고, 그와 동시에 배경에는 여러 사람이 웃고 있는 사진을 함께 아주 짧은 기간에 놓았다가 모든 사진을 동시에 치우는 실험이야. 그런 후 피실험자에게 묻는다네. "조금 전 복판에 있던 지원이 웃고 있었느냐 찡그리고 있었느냐?”라고 말이야. 피실험자는 동양인과 사양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양인과 서양인 모두 지원이 웃고 있다고 정확히 대답했다네.
지원: 네.
교수: 두 번째 실험에서는 앞의 실험과 같이 지원이 웃는 사진을 전면에 놓는다네. 반면, 배경사진은 앞의 것과 달리 여러 사람이 슬퍼하고 있는 사진을 아주 짧은 기간에 보여주고 모든 사진을 동시에 치우는 실험이야. 앞의 실험에서처럼 피실험자에게 질문을 하는 거야. "가운데 사진에 있는 지원이 웃고 있었는지 찡그리고 있었는지?"라고 말이야. 그러면 서양인은 지원이가 웃고 있다고 정확히 대답했지만, 동양인은 지원이가 찡그리고 있었다고 잘못 대답한다는 거야.
지원: 그래요? 왜 그럴까요?
교수: 그건 서양인은 지원이라는 중심인물에 관심을 집중하는 데 반하여, 동양인은 중심인물보다는 지나치게 주위를 의식하여 짧은 시간이라 주위만 둘러보다가 중심인물의 표정을 잘 보지 못한 탓이지.
지원: 놀라운 차이이네요.
교수: 같은 맥락에서 하나 더 예를 들면,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의 우승소감에서 서양이면 자기의 기쁨을 주로 말하지. 그러나 우리는 코치와 체육회에게 먼저 감사 표시를 하지. 심지어 전의 군사독재시대에는 국가에 그 공을 돌리지. 그래야 다음에 다시 대표선수에 뽑히는데 유력해서일 거야. 그런 식이 반복되니 문화가 되었지. 북한에서 모든 좋은 일에 국가원수에게 먼저 감사표시를 하는 것은 그런 문화의 극단이지. 아마 어릴 때부터 그런 세뇌를 받은 사람이 어른이 되어도 그런 습관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거야. 통일 후 그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겠지.
지원: 네, 북한은 세외수준이지요. 자유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선수가 감독이나 구단에 공을 돌리는 말을 주로 한다는 보도를 저도 많이 접해왔어요. 우린 그게 잘못인지도 모르고요. 이것도 일종의 세뇌네요.
교수: 후후, 일종의 세뇌지. 문화엔 그런 세외요소로 형성되지. 북한과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야.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는 이 사진 설험에서처럼 많은 것에서 아주 달라. 심지어 예술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져. 산수화에도 주목되는 부분을 작게 차지하고 그 대신 주위 환경에 공간을 아주 많이 할애하는 게 우리네 예술이라네. 초상화는 그런 현상이 더욱 심해. 서양에서는 당사자의 얼굴을 부각시켜 초상화를 그리는데 반해, 동양에서는 주위를 많이 부각시켜서 그린다네. 예컨대, 왕의 초상화에는 왕의 얼굴보다는 왕관, 곤룡포(왕의 옷), 왕의 의자 등 그 신분을 나타내는 배경 묘사에 많은 공간을 할애해. 고관대작의 초상화에서도 갓, 옷 등의 배경묘사에 많은 공간을 허용해. 그만큼 얼굴이 작아지는 경향을 나타낸다네. 집단문화에 사는 사람은 이처럼 하다보다 사진을 볼 때도 배경을 먼저 살피고 정작 봐야 할 핵심 얼굴은 나중에 봐서 짧은 시간에 그 핵심인물을 살필 수 없다네, 그게 앞에서 설명한 사진 실험의 결과로 나타난 거야.
지원: 예술 분야도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그처럼 차이가 나네요.
교수: 그렇지. 이런 주위에 대한 지나친 의식은 나중에 말하지만 총체적 사고(holistic thinking)라는 것으로 진전돼서 학문도 집단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지.
지원: 총체적 사고요?
교수: 총체적 사고에 대해서 나중에 자세히 말하겠네. 그때 가서 공자 이야기와 한의학 이야기에 대한 설명과 비판을 많이 하기로 하세.지금은 총체적 사고라는 개념만 간단히 소개하겠네. 총제적 사고의 반대말은 분석적 사고(analytic thinking)라 하네. 총체적 사고는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사고방식이고 분석적 사고는 어떤 대상물을 세부적으로 분석하여 생각하는 사고라네. 공자의 논어에도 총체적 사고방식이 주로 사용되고 한의학에도 그러하네. 예를 들면, 분석적 사고에서는 무슨 성분이 있어서 대추가 어디에 좋아 그 성분을 뽑아내 약으로 만들지. 그러나 총체적 사고의 한의학에서는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대추가 좋다느니 아니라느니 하는 알 듯 모를 듯한 내용 또는 수준으로 통째로 탕약으로 끓여 먹게 하지. 왜 무슨 성분이 잇어 좋다는 말은 안해. 요새 한의사들도 무슨 성분이 대추에 있어 좋다고 하지만 그건 서양 의학의 연구방법을 가미하였기 때문이지 본래의 한의학 내용은 아니라네. 총체적 사고에도 장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허점이 너무 많아.
지원: 네, 교수님. 동서양이 사고방식이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도 결국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문화의 차이군요.
교수: 그렇지. 나아가 사람의 외모, 옷차림,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브랜드, 소속회사 명성, 학위 논문을 표절하여서라도 명함에 표시하기 위한 박사 학위를 받지. 이런 형식적인 타이틀, 명성 등에 근거해 그 사람을 평가하고 그 형식적인 것에 따라 그 사람을 대하는 예의범절이 달라지고 그 결과 그 형식적인 것을 과시하기 위해 형식에 투자하지. 그래서 실질은 도외시하는 경향이 많지. 공무원, 회사원 등에 박사학위가 많은 게 그 이유야. 교사가 석박사 학위가 있으면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주는 것으로 아네, 그러다 보니 학위를 위한 학위를 따려 하지. 그런 학위가 나중에 그 소유자를 교수로 둔갑시켜주는 일도 있었어. 전두환시대에 서사만 있으면 교수가 되게 핟하도록 대학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다 보니 그런 불실학위자가 교수가 되었어. 내가 귀국하려 보니 내가 임용된 대학에 상당한 수가 그런 학귀자이고 그 당시에 석사로도 그냥 교수를 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어. 그런 낮은 수준의 학문을 한 교수이 교수를 뽑다보니 자기보다 똑똫나 사람은 피하고 지연고 학연이 뽑는 암묵적 기준이었다.
지원: 듣고보니 그렇네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교수들은 다 높은 수준의 학문을 가지는 것으로 착각했어요. 그리고 가르치는 것만 잘하면 교수가 되는 게 정상이라 봤어요.
교수: 후후, 그런 사회에서 살다보니 그럴 수밖에. 그리고 얼마 전 세월호 유족회 간부와 대리기사와의 폭행사건이 발생했을 때 모 국회의원이 자기 신분을 내세웠다 하잖아. 그랬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신분이 내세우기가 집단주의에서 나타내는 전형적인 병폐 중 하나야.
지원: 네. 신분이 있을수록 조심해야 하는데.
교수: 신분이 특권의식을 주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지. 그런데 타이틀 문제는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 가정 내지 혈연 차원에서 보면 같은 아저씨인데, 이 타이틀은 삼촌, 오촌. 외삼촌 등 다양한 사람에 해당되어. 굳이 삼촌과 외삼촌을 차별화하는지? 아무튼 가족 간에도 집단을 차별적 구분하는 데도 타이틀이 끼어들지. 학생집단에서도 친구일 법한 한 살 차이임에도 친구가 못되고, 형, 오빠, 누나 또는 언니라고 불러야 하지. 다 형식적인 타이틀이 중요한 형식주의 사회 탓이야. 어떤 은행에 가보면 계장. 대리, 과장, 차장, 부장대우, 부장, 지역총괄국장, 이사, 상무, 전무, 사장 부회장, 회장 등등 타이틀이 너무나 많고도 많다네.
지원: 또 외국의 짜가대학에서 짜가박사학위증을 돈 주고 산 대학교수와 목사 등 사회지도층이 많다는 신문보도가 더러 있었다고 해요.
교수: 그런 많은 보도가 있었어. 내 동료 교수중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었어. 또 가 부임 전에 가짜미국박사 학위로 파직당한 사람도 있었어. 놀랍게도 그 파직 사람이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더군. 명함용 박사로서 짜가박사, 저급수준의 엉터리 박사가 서울에 넘치고 대한민국에 넘치지. 학문수준이 말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교육받고 박사 학위를 받아도 다 같은 박사라 교수임용에도 사용되어 악순환이 반복되는 사회지. 목사도 짜가 박사, 교수도 짜가 박사 등등. 그리고 사장이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일 거야. 웬만하면 상대방을 사장님이라 부르지. 한국은 그야말로 한국은 박사천국, 사장천국, 타이틀 천국이라네.
지원: 타이틀 천국, 하하. 그 말 자체가 한국 사회에 대한 적절한 타이틀, 그 맣고 많은 타이틀의 하나네요.
교수: 하하. Michael Crichton이 쓴 소설 Rising Sun(떠오르는 태양)을 읽어보면 세계에서 가장 박사가 많은 도시가 대한민국 서울라이라 했어. 어떤 모임에서 이 소설 이야기를 했더니 한 사람이 분당에 박사가 가장 많다는 거야. 그래 그 소설이 틀렸다고 모두들 웃었다네.
지원: 그 소설 영화화되었어요.
교수: 그랬어. 슬픈 일이지.
지원: 한국은 유행도 그래요. 맹목적 유행천국이지. 주위를 너무 의식하다보니 남이 하는 것, 동료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수가 많아요. 이것도 집단주의 때문이라 보이네요.
교수: 와, 대단한 관찰력이야. 집단주의에서는 개인주의 사회에서보다 유행이 더 격렬하다네. 딱쥐라는 땅 속에만 살아 눈이 퇴화된 쥐과 동물이 있다네. 땅속에서 살다보니 눈이 퇴화해서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 나들이를 갈 때 한 새끼가 어미의 꼬리를 물고 다른 새끼가 앞선 새끼의 꼬리를 물고…. 앞도 보지 않고 굴속을 여행하고 되돌아오지. 딱쥐가 그렇게 입으로 꼬리를 물지 않으면 길을 잃기 때문이야. 이처럼 한국인에게는 이 딱쥐처럼 유행을 따르는 경향이 있어. 앞 사람의 노랑머리를 입으로 물고 그 뒤는 그 앞사람의 노랑머리를 무는 형국이지. 한국인은 서로 모습이 다르면 다르게 평가하는 특성 때문에 꼬리물기 유행을 따라하지 않으면 길을 잃고 남의 구설수에 홀로 처지는 왕따가 되기 쉽지. 갈 길을 잃은 딱쥐인 셈이지. 그게 바로 집단주의에서 유행이 강렬하게 번져가는 이유야. 중학생이나 초등학생이 휴대폰을 가지지 않으면 친구들에 왕따가 된다지 않나, 뭐 그런.
지원: 네. 슬픈 초상화네요.
교수: 한국이 성형공화국이 된 것도 집단주의 때문일 거야. 내부적이고 실질적인 것은 별 의미가 없고 외부적이고 형식적인 것을 중시하는 문화 탓이지. 나는 이런 문화현상을 형식주의문화라고 이름 짓는데. 나중에 이 문제를 더 다루기로 하겠네.
지원: 형식주의, 서열사회, 타이틀 천국 등 이번에 찾아뵈어서 조어력도 배우고, 같은 것을 봐도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는 사고력도 개발하고 있어요. 제가 친정에 머무는 시간을 연장해서라도 더 많이 배우고 싶어요.
교수: 배움이 된다니 다행이네. 이런 걸 다 들으려면 한 달은 족히 걸릴 걸. 나도 가르칠 준비를 많이 해야겠네. 다만, 맘에 걸리는 건, 오늘 처음 대화에서도 말했듯, 집단주의 현상의 대부분은 우리네 병폐라 지금 우리 이야기가 모두 비판적이라네.
지원: 사실이 그런 비판을 받을만 한 걸요. 우리국민도 새로운 눈으로 스스로를 새로 바라봐야 해요. 그래야 우리의 다음 세대에는 우리가 앓는 병폐를 덜 앓을 거예요. 그런데 교수님, 요새 젊은 세대는 개인주위 현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남의 일에 상관 않고, 근무시간이 지나면 칼퇴근 하는 등이 일어나잖아요.
교수: 그런 경향이 있지. 그러나 난 그들의 행동에서 개인주의라기보다는 이기적인 현상이 더 심해지는 걸 느껴. 다는 아니지만 자기에게 유리한 권리를 찾는 것은 강하게 주장하고 의무는 가급적 피하는 그런 현상이 심해. 개인주의라기보다는 이기주의라는 게 맞다는 말이네.
지원: 요새 보면 젊은이들에게는 어른들 보다 이기주의가 강해요. 그게 걱정이에요. 미래가 그런 방향으로 보여서요.
교수: 나도 그게 걱정되어. 아마 앛 세대가 집단주의를 강조하여 그에 대한 반발로 그럴 거야. 너무 어떤 것을 강요하면 그 반발로 비뚤어지게 마련가지. 말하자면, 집단주의에 염증이 나니 바람직한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로 흐른단 말이지.
지원: 네. 반발로 그렇게 흐르게 한다는 데 저도 동의해요.
교수: 국가 정책에도 집단주의를 너무 강조한 것들도 많아.
지원: 어떤 것이요?
교수: 반상회가 그에 속해. 그거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정책이라고 봐. 그런 것을 강조해봐야 불편하니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아. 그 반발과 개인주의가 맞물려 이웃에 무관심을 넘어 아주 서먹하기도 해. 우리의 농촌 현대화에 공을 세운 새마을운동도 아마 집단주의 관점에서 국가 정책으로 추진한 것이라 그런지 지금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지원: 저도 그렇게 느껴져요. 그러고 보니 정책만 아니라 친척관계에서도 서먹서먹해져 가요. 우리 친척만 봐도 4촌까지는 어울려도 그 이상은 만나게 되면 인사하는 정도뿐이고 평소 전화도 서로 안 하고 남처럼 지내요. 그래서 제사도 더 이상 모여 지내지 않아요.
교수: 그럴 거야. 법이나 제도가 그에 못 따라가. 누가 죽으면 그 상속권을 가진 자가 4촌 이내 없으면 그 이상으로 가는 것 같아. 이런 것도 정비해야지. 그리고 이기주의로 형제 간에도 유산가지고 싸우고 심지어 부모의 재산을 자신이 노리면서 부모를 모시지 않는데도 민법은 아직도 상속법이 집단주의에 묶여 있지.
지원: 고칠 게 너무 많네요. 구성원간에 집단 주의가 무너지니까요. 그렇다고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로 흐르니 걱정되 되어요.
교수: 그렇지. 고칠게 아주 많지. 그리고 개인주의로 흐르는 데 대해 나도 걱정이 많네. 너무 강조된 집단주의의 문화에 대한 반발로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봐야지,
지원: 네. 그 혼란이 수습되어 내 아이가 살 때는 진정한 개인주의가 정책했으면 해요.
교수: 그렇게 되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지.
지원: 그래요. 그런 노력이 정말 필요해요.
교수: 오늘은 이만 하세. 내일은 서열문화에 대해 말하겠네. 내일 오전 10시에 다시 만나세. 그러겠는가?
지원: 그럼요, 교수님. 내일 뵐 게요.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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