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의 특성

III. 인간행동에 대한 문화의 중요성

매미가 웃는 까닭 2016. 8. 6. 12:14


이 글을 쓰는 변

: 한국문화의 특성에 관하여 시리즈의 글을 쓰고자 한다. 여기서는 셋째(III)의 글로서 

문화가 인간행동에 미치는 중요성에 관하여 알아본다.  (이 시리즈의 글은 주제를 위해 시간과 공간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것들이 하나의 가상 공간 및(또는) 시간으로 융합될 수도 있다. 이하 동일)





III. 인간행동에 대한 문화의 중요성

 

지원: 오늘은 문화가 왜 인간의 행동에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신다고 하셨어요,

교수: 그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세. 인간의 행동은 외부의 자극(stimulus)에 대한 반응(response)이라네. 외부의 자극이란 기분이 좋거나 나쁜 일의 발생, 걷는 길이 미끄럽다든가 깨끗하다든가 등과 같은 것을 말한다. 이런 자극은 인간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자연 내지 상황적과 같은  비인간적 자극일 수도 있지.

지원: 네.

교수: 자극에 대해 반응, 즉 인간의 행동은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결정된다네. 그 하나는 자극을 받은 사람의 내적 이네. 이는  주로유전적 요인으로서 타고난 성향을 말하며 타고난 성향은 차분하다든가, 다혈질이라든가 하는 것과 같이 성격적인 것이라네. 동일한 자극이라 하더라도 행동자의 이런 성격에 따라 반응이 다를 수 있다네. 이를 테면, 한일 축구경기에서 한국이 승리했을 때 날뛰며 기분을 만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차분하게 기뻐하는 사람도 있지.

지원: 네.

교수: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외적 요인으로서 행위자를 둘러싼 환경적 요인을 말한다네. 이를 테면, 어떤 가정환경에 놓였으며 그 환경에서 대처하는 가정교육은 어떠했느냐, 또한 그가 사는 사회적 환경에 어떠했으며 그에 대해  받은 사회적 교육은 어떠했느냐 등에 따라 주어진 자극에 대한 반응이 다를 수 있네. 개인의 과거 경험도 외적요인이 될 수 있지. 요컨대,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및 자연적 요인들에 따라 주어진 자극에 대한 반응이 결정된다는 말이네.

지원: 네. 저는 여자냐 남자냐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고 봐요. 성별(gender)은 어느 요인에 해당하나요?

교수: 좋은 질문이네, 남녀는 반응이 다를 수 있지. 사실 연구에 의하면 아주 모르는 사람이 위기에 처할 때 도와주는 것의 91%가 남성이라네. 여성은 아는 사람을 돕는 성향이 있다네. 7,000명의 표본을 이용해 조사한 연구애 의하면, 여성은 자기가 아는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성향이 남성보다 더 크다는 거야.

지원: 네, 그런 흥미로운 차이가 있군요.

교수: 이런 차이를 보이는 성별은 타고난 것이니 내적 요인이라 볼 수 있다네. 그리고 나이에 따른 성숙도도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게 외적요인인지 내적 요인인지 애매한 것일 수도 있네. 나이는 타고난 것은 아니기에 외적 요인이라 보아야 하지. 나이는 아무래도 시간이 들고 그가 그동안 받은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그 반응이 다르므로 외적 요인으로 보는 게 맞을 거네.

지원: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 단독으로도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들이 상호작용하여 행동에 나타나는 독특한 면도 있지 않을까요?

교수: 그 또한 좋은 지적이네. 이를 테면, 우리 유교적 한국 사회에서는 "너는 여자니까 차분해야 해."와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외부에서 가정 교육과 타고난 내적 요인인 성별에 따라 같은 자극이라도 서양과 동양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어 상호작용의 결과라 볼 수 있지. 그러나 논의를 간단히 하기 위해 상호작용 부분과 같은 것은 무시하기로 하자. 아니면 상호작용을 외적 요인으로 보세. 앞의 예를 든 “너는 여자이니 차분해라.”라는 것은 사회 내지 가정적 교육에 해당하니 외적 요인으로 취급해도 큰 무리는 없을 거야.

지원: 네, 그렇게 해요.

교수: 외적 요소 중에서 자연에 대한 것이 아닌 한 문화적 요인을 말한다고 해도 좋을 거야. 문화에 따라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교육 및 경험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네. 문화적 요인이 우리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네. 문화는 반복적 학습으로 습득한 것이지. 다시 말해, 가정교육이나 사회교육 등 우리의 행동 관련 교육의 내용과 방법 대부분이 우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말이네. 예컨대, 희로애락에 대해 자중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 사회적 및 가정적 교육을 하는 게 동양이고, 즐거운 것은 충분히 즐기라는 가정적 및 사회적 교육을 하는 경향이 강한게 서양이지. 그래서 동일한 희로애락에 대해 동양에서는 차분하게 행동하는 반면, 서양에서는 비교적 강렬한 반응을 보일 수 있지. 타고난 개인의 성향이 같아서 그가 처한 것이 동양이냐 서양이냐에 따라 반응에 차이가 있다는 말이네.

지원: 네. 저도 문화가 인간 행동에 그처럼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그 점을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어요.

교수: 그런가? 다행이네. 어제 언급한 집단주의라든다 나중에 설명할 개인주의는 모두 문화적 요인에 근거하는 행동방식을 말하는 것이지. 이처럼 문화가 인간행동에 참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지원: 어느 사회에나 집단주의와 개인지의에 근거한 행동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교수: 당연하지. 사실 연구에 의하면 서양에서도 비소속집단(out-groups)보다는 소속집단(in-groups)을 더 선호하지.

지원: 그런 차이가 있군요?

교수: 그렇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는 스펙트럼과 같이 연속선(continum)이라 봐. 그래서 어디서 어디까지 집단주의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개인주의인지가 분명하지 않아. 다만 양 극단으로 갈수록 그 특성이 분명할 뿐이야.

지원: 다 그런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보수와 진보도 그렇지 않나요?

교수: 잘 봤어. 바로 그래. 보수와 진보 이야기를 좀 하면,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에서는 대체로 그 경계선인 중앙을 중심으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 있고 그 양 끝으로 가면서 서서히 사람  수가 줄어들어 양 끝에는 아주 적은 수의 사람이 몰리지. 이런 분포는 소위 종모양(bell-shape)을 가진 정규분포(통계학 용어 정규분포, normal distribution)로 보수와 진보가 분포되어 있지. 그러나 집단주의가 강한 동양에서, 특히 한국에서는 양 극단에 사람이 많이 모여 마치 아령과 같은 구조의 이념에 관한 분포를 보이지. 그것도 보수 지역 아령의 튀어나온 부분이 진보의 것도다 좀 더 큰 비대칭적 아령 모양이네.  

지원: 네, 그렇군요. 왜 그럴까요?

교수: 아령 모양 분포는 중간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말인데, 집단주의에서는 진보든 보수든 어느 집단에 속해야 해. 그렇지 않고 소속집단이 없다는 건 왕따가 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돼. 그래서 두 소속집단에 대부분 모이다 보니 아령모양의 분포가 되지. 아무래도 진보는 현 체제의 개선 내지 타파에는 모험이 따르니 위험성 내지 불확실성이 있어. 사람은 본래 그런 위험회피형(risk-averse)이라 기존 체제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하여 그런 사람들이 보수로 흡입도어 보수 지향적 비대칭 아령이 되었겠지.

지원: 네. 저도 그에 동의해요.

교수: 거기까지는 좋아. 문제는 집단주의문화에서는 이 두 집단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운다는 점이야. 

지원: 왜 그럴까요?

교수: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의 대장(리더)이 강력한 권력, 즉 힘을 독점해. 그래서 구성원은 그에게 잘 보여야 자기의 안위가 확보되고 떡고물도 부상으로 받아 먹는 경향이 있어서 그럴 거야.

지원: 네, 이해가 되네요. 같은 자극이라도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행동이 다른 이유를요. 개인주의에서는 대장에 눈치볼 일이 적으니 소신껏 행동할 수 있고 집단주의에서는 맹목적 충성이라 할 만큼 집단의 대장에 충성 이상으로 충성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히틀러의 나치졸개들이 그랬고. 스탈린의 공산당졸개들이 그랬고 북한의에서는 백투혈통이란 김일성과 그 자손에게 공산주위졸개들이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지요.

교수: 빙고(Bingo)! 잘 봤어. 더 예를 들면, 우리나라 보수가 박정희에 그랬고 보수가 지금 정부 수장에게도 그러는 것 같네. 또 상도동계가 김영삼에 그랬고, 동교동계가 김대중에게 그랬고, 친노계가  노무현에 그랬고 지금은 친문계가 문재인에 그러는 것 같아. 그들은 자기들 보스에 대해 조금도 비판을 하지 않아. 그게 맹목적이란 거야.

지원: 저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전에 히틀러와 박정희를 비교한다고 비난 받은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차마 그 말을 못했어요. 그들이 공격한다면 맞설 용기가 없어요. 교수님도 그런 비난 대상일 수도 있을까 두려워요.

교수: 걱정 말게나. 우리나라가 언론 자유에 세계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기는 하지. 이처럼 아무리 우리가 아직 민주주의라고 보기는 갈길이 멀지만 이런 정도의 비판을 수용하지 못할 정도라고는 보지 않아. 그래도 문민정부 이후 이 정도까지는 용인될 수 있는 나아진 세상이 되었다고 봐.


(나중에 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