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변: 한국문화의 특성에 관하여 시리즈의 글을 쓰고자 한다. 여기서는 둘째(II)의 글로서 우리 문화와 집단의 정의를 내리고 집단을 형성하는 이유와 집단주의에 기초한 우리 문화의 전반적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 시리즈의 글은 주제를 위해 시간과 공간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것들이 하나의 가상 공간 및(또는) 시간으로 융합될 수도 있다. 이하 동일)
II. 문화와 집단
(1) 우리 문화의 전반적 특성 및 문제점
학교근처 삼겹살집에서 삼겹살 2인분을 시켜 굽고 맥주도 딱 한잔씩만 마셨다. 다시 연구실로 함께 돌아와 나는 다음 네 글씨로 된 단어를
집단주의
커다랗게 화이트보드에 쓰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교수: 집단주의는 우리나라 문화의 알파이고 오메가라네. 오늘날 우리의 정치적, 사회적, 가정적, 교육적 및 기타의 여러 상황 모두 이것의 산물이지. 집단주의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너무 많아 우리 문화에는 부정적 행태가 두드러지게 많이 보이네. 세월호 사건도 이 때문에 발생하였으며, 우리나라의 남북분단, 한일합병, 지역삼정, 정치집단의 계파싸움, 가정문제 등도 이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할 수 있다네.
지원: 집단주의가 그렇게나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나요?
교수: 그렇다네. 앞으로 문화에 대한 정의 등을 내리겠지만 그 전에 우리나라 문화의 문제점을 길게 이야기 하겠네.
위와 같이 말하고 나는 다음과 같은 긴 이야기를 하였다.
어느 문화에나 긍정적인 면이 있고 부정적인 면이 있다.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쓴 두 글이 기억난다. 그 하나는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지만 국어학자인 고 이희승이 쓴 '딸각발이'라는 수필이 아닌가 한다. 이 글은 남산에 사는 가난하여 늘 딸각발이(나막신)을 신고다닌 선비에 관한 것으로서, 그 선비의 고고한 정신, 즉 선비정신을 칭송하는 글이었다. 선비정신에 대한 글에서 말하는 선비정신은 한문이나 읽어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요소도 있는 일종의 위선적인 정신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 별루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선비란 공자의 글귀 좀 안다는 이른지은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선비는 공자의 글귀를 아는 서비가 아니라 물리학을 하는 선비, 수학을 하는 선비, 화학을 하는 선비, 논리학을 하는 선비, 그런 선비이다.
또 다른 글을 쓴 사람이 누군지는 잘 모르는데, 그 글에 의하면 우리 한국은 지형적으로 중국과 같은 대륙국가도 아니고 일본과 같은 해양국가도 아닌 반도라는 중간지역이다. 그래서 우리문화는 대륙문화와 해양문화 양쪽의 장점을 가진다고 한다. 이 주장은 그럴 듯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양쪽의 나쁜 것만 따온 느낌이다. 중국과 같은 독자적인 대륙문화도 형성하지도 못하고, 일본과 같이 독자적인 해양문화도 형성하지 못한 어정쩡한 문화가 반도문화이다. 강한 것에는 아부하고 약한 것에는 군림하여 요새 말로 갑질을 해온게 우리이다. 그래서 중국은 군신의 관계로 그들이 황제라 해도 우리는 왕이어야 했고 왕의 승계 등에도 그들의 재가를 받았다. 그 반면 일찍 문호를 개방해 발전해 가던 일본을 몰라보고 늘 미개인이라 무시했다. 그 결과 임진왜란을 당했고 종국엔 일본에 지배를 받은 치욕도 당했다. 내가 한국에 살 때는 위에 미회된 말을 믿덨지만, 내가 미국에 오래 살아보니 그 특성은 우리 문화는 다 허구인 위세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외국에 많이 살아본 내가 외국문화와 우리 문화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문화처럼 잘못된 문화를 찾기도 어렵다. 그처럼 우리나라 문화는 문제 투성이이다. 정치인이 계파를 형성해 매일 싸우는 파벌주의라든가, 여러분 대부분이 겪었거나 지금도 겪고 있듯, 직장에서의 지독한 연공서열주의가 모두 집단주의의 폐단이다. 외국에 살면서도 지역감정으로 끼리끼리 모이며 반목하는 게 우리이다. 국내에서 한 때 정치인들이 각목으로 싸움질 하였는데 미국에서도 그런 짓을 했다는 보도도 있지 않은가!
집단주의에서는 경쟁도 건전한 것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병적으로 다투는 깡패문화가 우리 문화이다. 동창끼리, 지역사람끼리 등등 각종 관계에 따라 떼를 지어 부정을 저지르는 게 작게는 스폰스 검사이고 좀 더 크게는 각종 정경유착이고, 더 크게는 친노, 비노, 친박, 비박, 친문, 친이 등의 끼리끼리 모여 깡패 같은 싸움을 한다. 아주 더 크게는 전라도 경상도 사이의 지역감정이고, 가장 크게는 남북의 대립이다. 지금은 핵으로 북이 남을 위협해 우리 국가나 국민의 존재가 위기상황이기도 하다. 이런 분열과 죽기살기의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할 것이다. 과거의 역사에서도 국가 위기 상황인 임진왜란에서도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늘 죽기살기로 당파싸움을 해온 우리였다. 그런 결과 실제로 나라가 망한 조선말에서 두 인간 대원군과 민비(아래 <민비> 참조)간 싸우다가 나를라 말아먹은 역적들이었다.
<민비> 내가 명성왕후 대신 민비라 부르는 이유를 말하고 싶다. 민비라는 용어는 명성왕후를 비하시키기 위하여 일본이 불렀던 말임을 나도 안이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민비라 부른다. 그녀는 나라를 망하게 한 중요 장본인 중 하나이다. 그녀가 일본깡패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에 의해 죽었다고 그녀를 비극의 주인공이라 말하지 마라. 나라가 대한제국이 되고 고종이 황제로 불리게 된 이유도 건강한 나라로 융성해서가 스스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중국의 예속으로부터 벋어나 일본이 우리나라를 참탈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참탈을 위한 방법적인 편익을 수단이 되었을 뿐 그야 말로 허울 좋은 대한제국이고 황제일 뿐이었다. 그런 위기상황에서 체신머리 없고 무능력자인 고종과 그를 둘러싼 풍전등화에서도 당파싸움을 한 우리네 패거리 문화, 즉 계파분화로 나라가 망했다. 그런 패거리 문화의 중심에는 민비라는 그녀가 있었고 역적인 그녀에 대척한 또 하나의 역적인 시아버지 대원군이란 자가 있었다. 그들은 나라를 볼모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아서 나라가 일본에 먹히게 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황후는 무슨 황후, 그야말로 민비로도 오감한 명칭이다. 그냥 작게는 악녀였고 크게는 역적이었다. 이하응은 흥선선대원군이란 이름에 맞지 않고 망국대원군이다. 자기 개인의 권력욕을 위한 한풀이를 한 불한당을 넘어 나라를 농락하여 망하게 한 역적이다. 을사오척(이들이 누군지 인터넷에서 찾아보시라. 말하기도 싫다.)은 이미 망해버린 나라를 그냥 넘겨준 일본의 망나니일 뿐, 이들이 그 짓을 하지 않았으면 또 다른 기회주으자 망나니들이 그들을 대신했을 것이다. 이완용은 그 중 골목대장노릇을 한 망나니로서 민비와 대원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역적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역적은 대원군, 민비, 그리고 고종인데, 역사가들은 왜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지? 이제 역적이란 관점을 이완용 등에 고착하지 말고 대원군과 민비에게로 돌려 그들을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 을사오척은 기회주의자로서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으로, 어차피 망해가는 나라인데, 나만이라도 잘 살고보자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예측이 맞았다. 그들 자신이 잘 살았고 그들 후손 대부분은 지금 많은 부를 가지고 잘 살고 있다 하지 않는가! 그때 일본으로부터 받은 부의 소유권으로 재판에서 국가와 다툴 정도이다. 그들 외에도 친일파들은 잘 살지 않는가!
그 대신 돈을 바치고 젊음을 바치고 가족과 자기 목숨까지 희생한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은 어떤가? 그들의 많은 가족이 만주나 중앙아시아 등에서 살다보니 공산주의 치하에서 고통 스럽게 살아 왔고 지금 한국말 대신 중국어, 러시아어, 카자스탄어 이런 말을 쓰야 하지 않는가? 국내에 사는 독립유공자 자손들도 지금 어렵게 살고 있다. 이런 후손만을 본다면, 을사오척들 선택이 백 번 옳지 않은가! 그러니 친일파니 뭐니 할 때 그 치하에 살아 남기 위해 그것도 좀 편하게 살려고 좀 고위직을 했을 뿐이라면 고위직 같은 형식적인 것은 따지지 말았으면 한다. 그 대신 우리 국민을 드러나게 괴롭힌 자들을 찾아내 그들로 친일파 범위를 좁혀야 할 것이다. 그때 농사짓고 공출(농산물을 바침)이란 것은 친일 행동이 아닌가? 저항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게 능력에 따라 크고 작은 살아남는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다시 말해, 고위직을 했으니 하지 않았느니 하는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중시하여 우리 국민에 의도적으로 위해를 한 사람들을 색출해 그들을 진정한 친일파로 이름지어야 할 것이다. 같
은 맥락으로 나는 박정희를 평가할 때 그를 친일파로 보지 않는다. 또한 그가 한때 공산활동을 한 자라 해서 그를 공산산주의자로도 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아버지가 부역했다 하여 그 어떤 사람을 연좌제로 묶어 버린 그가 자신이 친일파로 몰릴 일을 했고 공산주의자로 몰면 모릴 일을 했으면서 자기는 아니라고 남탓을 한 게 박정의의 잘못이라 말할 뿐이다. 더구나 쿠데타를 일으켜 장기간 군사독재정치를 하고 나아가 유신이란 참으로 암담한 짓을 한 것을 비난할 뿐이다. 그런 장기독재를 위해 역으로 남을 공산주의로 몰았던 게 문제라는 말이다. 그가 일으킨 경제발전을 상당히 인정을 하면서도 그가 유신까지 했어야 했는지를 문제 삼을 뿐이다. 그가 장기독재집권으로 일으키거나 악화시킨 지역감정, 대기업중심 경제정책의 결과로 중소기업이 겪는 교통, 부정부패, 계파정치 등등으로 나라 경제가 지금 말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말이 아닌 것을 넘어 그런 폐단으로 그가 일으킨 경제개발 효과를 앞으로 갉아 먹어 그가 5.16쿠데타를 아니 일어났음만도 못하게 그는 우리에게 장기적으로 볼 때 마이너스 효과를 줄 수 있는 장본인일 것이다.
빨갱이니 친일파니 하는 것보다는 스폰스검판사, 위장 전입 등 불법을 저지르고도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장관이 되고 국무총리를 하고 대법원장을 하고 심지어 대통령을 꿈꾸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또 IMF라는 어려운 시기에 기회를 잡아 집 몇 채를 사서 부를 챙긴 자들이 장관이 되거나 고위직에 임명되는 것을 막는 게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 나아가 친노니 친박이니 하는 계파주의자들이 대통령이나 기타 고위직 하려는 의도를 막는 게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 그런데 말이야 그런 사람 빼면 누가 대한민국에 남는가? 그런 사람 뺄 수 있는 일을 할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각계에서 그런 짓 하고 포진해 있으니 말이다. 국민이 선거라 한다고? 글쎄, 계파에서 뽑은 대통령 후보가 되는데, 이들 중 대통령을 뽑는 좁아진 선택에서 그리고 그것도 지역감정으로 대통령을 뽑는데…. 뽑히면 계파를 챙기고 제왕적 대통령으로 되는데 누군들 어떠랴? 달라지는 게 없는데 말이다. 내각제라고? 글쎄 힘겨루기로 매일 총리 물러나라고 하지 않을까? 장면과 같이 유한 성격이 국무총리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5.16도 그런 것을 노린 것일 테니 말이다. 강한 총리라고? 그 강함을 뒷받침할 계파가 없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역시 계파로 모든 게 귀결된다. 우리 문화 탓이다. 더러는 밀힌다. 대한민국에는 혹독한 장기독재를 하더라도 박정희가 최고야! 묵지막지한 권력을 휘두르던 전두환 시대가 좋은 거야. Alas!
이외에도 부정부패, 갑을논란 등 문제가 많은 집단주의 문화, 나아가 여느 집단문화보다 더 폐해가 많은 우리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타파할 방법(타파가 아주 어렵지만)을 제시해보고자 시리즈의 글을 쓴다. 그래서 이 글은우리 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특성이 강조될 것이다. 무엇이나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성에 대해서는 그렇게 보는 게 올바른 길이다. 별로 좋지 않은 국민성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 국민성에는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한다. 그건 국내에서나 외국에서나 마찬가지이다. 외국에서의 우리 국민성에 대한 예로서 미국에 있을 때 관찰한 것을 예로 들자. 오래 전 미국에 유학 갔을 때 세탁소, 채소가게 등과 같은 힘들고 궂은 일을 마다 않고 도맡아 하는 우리 국민이 너무 좋았다. 그때 느낀 것은 바로 우리 국민성의 특성은 은근과 끝기라는 그 어느 분의 말이 맞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일을 열심히 하며 사는 한국인의 모습에 자부심까지 느꼈다.
그러나 미국에 좀 오래 살다보니 그런 자부심은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궂은 일, 힘든 일에 관련 된 세탁소, 과일가게, 운동화가게, 옷가게 등을 차린 지역은 주로 흑인지역이었다. 그 지역에서 돈을 벌면서도 흑인을 무시하는 인종차별의 짓을 해댔다. 흑인을 무시하는 영어 용어는 nigger인데, 이 말로 번역할 수 있는 한국말은 깜둥이이다. 한국인은 흑인에게 깜둥이라는 호칭을 쓰는 경향이 있다. 내가 어떤 흑인에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한국 사람은 자기들 보고 깜둥이라 한다고 했고 그는 그런 한국인을 아주 나쁘게 평가하였다. 그 사람의 말을 좀 더 하면, 그는 한국에 좀 살아서 깜둥이라는 그 말을 잘 안다고 했다. 그러나 그에 의하면 그가 살았던 LA(Los Angeles)의 흑인들 중 한국에 살아보지도 않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이 자기들을 비하시키는 한국말인 것쯤은 안다고 했다. 나는 LA에 산 적이 없어 그의 말에 대한 진실을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한국인의 특성으로 보아 충분히 그러리라고 본다. 이처럼 인종차별이 심하다. 그런 버릇은 국내에서의 지역감정, 갑질문제 등의 우리 문화의 병폐와 맥을 같이 한다.
인종차별을 지칭하는 용어에 대해 좀 알아보자. 미국인은 흑인을 의미하는 black people이란 용어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이는 nigger만큼은 아니지만 검은 피부색깔을 가지고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라 인종차별에 기인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런 black이란 말을 피해 한 동안 colored를 써서 colored peeople이란 말을 사용했다. 이 말은 유색인종이란 말로 백인을 제외한 인종, 동양인인 우리도 포함하는 용어였다. 이것도 피부색에 기인한 말이라 지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흑인들은 자신들이 온 지역을 지칭하는 Africa라는 말을 써 자기들을 African American이라 부른다. 이는 동양인을 Asian American, 백인을 European American이라 하듯이 출신지역을 가르키는 말로서 피부색이 여기에는 없다.
승자독식을 하는 게 우리 민족이다. 동업이 안되고 혼자 독차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국민성을 가진게 우리이다. 외국에서도 이런 문화병이 만연하다. 집에서 샌 박은 밖에서도 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내가 관찰한 것을 좀 기술해보자. 미국인들은 가게를 열어 돈을 벌게 해준 지역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익을 환원하는 방법으로 기부를 많이 한다. African American 지역에서 장사하는 미국인들은 해당 지역의 African American 단체에 직접 하든지 아니면 병원 등 복지시설에 하든지 이익 중 일부를 기부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African American 거주지역에서 돈을 버는데도 기부를 하지 않고 독식한다. 그렇게 한 결과 1991년 3월 3일에 Rodney King이라는 African American 택시기사를 European American(백인) 경찰관이 부당하게 구타하여 이에 항의하는 폭동이 LA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African American들이 보복한 것은 European American이 아니라 한국인이었다. 그들은 거의 모든 한국가게를 습격해 약탈해 갔다. 그 당시 많은 식료품이나 기타 생필품 가게를 하는 게 한국인이니 한국 가게가 약탈대상인 것은 식료품 등 생필품을 가진 가게이지 특별히 한국인에 대한 반감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인종의 가게는 별로 습격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 당시 지역 사회에 도움을 많이 준 한국인 가게에는 African American들이 자발적으로 총을 들고 보호해주었다는 점 등은 그 동안 African American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가 문제라 그런 습격의 원인이었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 근거를 보이는 한국인의 태도를 좀 자세히 살펴보자. 한국인은 돈을 벌면 그 돈을 번 지역에 기부 등 감사를 표시하는 대신 돈이 있음을 과시하는 먼저 행동을 한다. 웬만은 미국인도 별로 사지 않는 독일제 고급승용차를 사서 가게 앞에 떡 세워놓는 게 하나의 그런 예이다. 부를 상징하는 다른 하나는 골프채를 사서 그 승용차에 실어놓고 장사를 한다. 돈을 벌면 여유를 즐기는 건 이해지만 지역사회의 눈에 그슬릴 정도가 문제이다. 그리고 몇년 전 미국에 가 어떤 대도시를 가서 살펴본 적이 있다. 한국인은 그들이 주로 하던 힘든 일. 세탁소, 과일가게, 주유소 등에서 거의 모두 손을 떼고 인도인이나 테국 등 동남아사아 출신사람들이 그런 일을 주로 하였다. 궂은일을 마다 않던 우리의 은근과 끈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은극과 끈기가 우리 국민의 특성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국내로 눈을 돌리면, 우리 민족의 부정적인 문화는 더 두드러진다. 앞에서 말했듯이 약자를 무시하거나 깔보거나 아예 무개어버리는 갑질논란의 국민성이 우리 국민성이다. 장애인을 병신이란 우리 전통처럼,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무조건 비하하는 게 그런 맥락에 속하는 우리 국민성이다. 우리는 돈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운전기사에 갑질하는 몽고간장, 비슷한 갑질을 해대는 정주영의 손자, 경비원에 갑질한 미스터 피자, 대리점에 갑질하는 남양유업과 백세주의 배상면주정업 등의 갑질행태는 우리 문화에 부정적인 면이 많다는 주장을 설득하기에 충분하다. 친노, 친박, 친이, 친문, 진박 등 파당적인 것은 사색당파가 아니라 백색당파를 연상케 하는 파벌주의가 우리의 중증 문화병의 극치에 해당한다. 국회선진화법이 있을 정도로 물리적 싸움질이나 하는 국회, 경제민주화의 선거홍보의 단골메뉴가 되고 있을 정도로 대기업 횡포가 심한 점 등등 집단 히스테리성 병을 앓는 게 우리이다.
작게는 가정인데, 개인 성장의 근거인 그런 가정에서는 어떤가? 거의 모든 계모가 전처의 어린 자녀를 학대하거나 죽이기까지 하는 사태가 우리의 문화인데 장화홍련전의 재판이 진행형이 여인들이 계모만 되면 갑질 부리는 국민성이이다. 이혼이 일반화되는 우리 사회인데, 이제 가정은 성장의 근거가 되기는 커녕 싹을 싹둑 잘라버리는 폐망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 장화홍련전에서는 그래도 죽이지는 않았다. Sleeping beauty(잠자는 미녀)라는 서양 동화에서도 계모의 횡포는 있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문화를 미국에서 살아보니 거의 모두 사라졌다. 없기야 하겠냐마는 거의 사라졌다는 게 중요하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으면 가정은 더 이상 가정이 아닌 살육장이다.
크게는 한반도를 보자. 세계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공산주의가 우리 한반도 북쪽에만 떡하니 버티고 있다. 왜 우리 한민족에게만 이런 일이 있는가? 아참. 북쪽에 있는 정권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김씨를 섬기는 사이비종교단체이다. 이 점을 놓치고 공산주의라 부른 내 불찰을 용서하소서...하하하하. 독자 여러분 내가 왜 이러는지 아시죠? 미친 대한민국에 살다보니 나도 미쳐서 그래요. 미안.
우리 문화는 위에서 말한 문제점으로 수백년간 문화병을 앓아오고 있다. 병은 자랑해야 낫는다고 하지 않던가? 쉬쉬하고 자꾸 미화하면 영구적인 문화병을 앓게 될 것이기에 자람삼아 이를 여기에 노출시킬 것이다. 이 글이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승만은 국부가 아니라 역적이며, 박정희도 단군이래 먹고 살게 만든 그것으로 인해 지역감정, 갑질문화, 부정부패 등으로 영구히 구제 불능 상태로 우리를 이끈 용서해서는 안 될 독재로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김대중은 지여감정을 해결하라는 시대적 사명을 버린 또 다른 역적이며 그 후 이명박 박근혜도 역사적으로 잘못된 선택, 즉 역선택(adverse selection)으로 대통령이란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될 사람들이라고 나는 본다. 어느 정도 어느 깊이라 할지는 글을 쓰면서 결정할 것이다. 나는 이들을 의도적으로 모욕을 주려는 의도는 없다. 그들 당사자들이나 그들의 맹목족 지지자들도 이 글을 읽고 나를 비난하는데 소중한 에너지를 쓰지 말고 이 글의 지적을 겸허이 수용할 것을 제의한다. 그 수용하면 그 시점부터 이 글의 목적인 좋은 나라 만드는 길을 찾아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그 길이 보일 것이다.
(2) 문화의 정의
지원: 하신 말씀을 들으니 고쳐야 할 게 많은 게 우리 문화이고 반성할 게 많은 게 우리의 행동이네요.
교수: 그렇지. 그러나 문화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니까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게 문제라네. 그건 그렇고 앞으로 할 설명을 위에 먼저 문화라는 개념부터 알아보기로 하고 집단주의의 집단의 개념도 알아보기로 하세.
지원: 네, 교수님.
교수: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나라 문화에는 장점이 많겠지만 단점이 더 많아. 그래서 내 설명의 대부분은 우리 문화에 대해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네. 나를 부정만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비판을 들을 귀와 그걸 생산적으로 생각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나?
지원: 그럼요. 듣고보니 공감이 가서 저도 비판을 함께 할지도 몰라요. 우리나라에 대한 염려에서 온 비판이라 그걸 생산적으로 쓸 자세도 가지고 있어요.
지원: 내 뜻을 이해해 주어 고맙네. 생산적으로 쓰는 자세라... 참 좋군. 비판 없이는 발전이 없지.
나는 문화에 대한 나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문화는 그 정의가 책마다 다를 정도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문화(culture)란 일정한 집단에 존재하며 그 집단의 구성원이 사회학습을 통해 습득하여 공유하는 생활방식이다.
이는 정교하지 않은 정의이지만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에 별 불편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문화란 반복적 학습(learning)을 통하여 형성되므로 생물학적으로 태어날 때 가지고 나타나는 본능(instinct)과는 다르다. 다른 동물에서도 문화로 볼 수 있는 것이 관찰된다. 예컨대, 일본원숭이 한 마리가 어느 날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어느 원숭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른 원숭이들이 그걸 따라해 나중에는 다 그렇게 고구마를 씻어먹었다. 이런 행동도 학습을 통해 원숭이 집단이 공유하는 것이므로 문화로 볼 수 있는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는 인간 외의 동물에도 문화란 게 있느냐의 문제이다. 일본 원숭이에 보듯 동물에게도 문화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문화가 인간에게 가장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문화에 관하여 또 다른 문제는 어느 정도의 공유가 되어야 문화로 볼 수 있는지의 문제도 있다. 이래서 문화의 정의는 내리기가 만만찮다. 이런 문화의 정의와 그 범위에 관한 논의는 여기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우리의 논의는 앞에서 내린 정도의 문화에 대한 정의에 근거하기로 하고 또한 문화는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임을 전제로 한다.
(3) 집단의 정의와 형성
교수: 문화는 집단이 공유하는 것이니 집단이 무엇이고 집단이 왜 발생하는지를 알아보는 게 먼저해야 할 일인 것 같네. 먼저 집단의 정의를 알아보세. 어떤 목적이나 욕구에 의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서로 접촉하고 의존하는 3인 이상으로 구성되는 것을 집단(group)이라 하네. 2인이 모인 것은 흔히 쌍(pair)이란 말을 쓰지.
지원: 네. 그럼 집단은 왜 생기는지요?
교수: 그게 내가 하고픈 다음 이야기이네. 잡단을 형성하는 이유는 아마도 홀로 생존하기에는 인간이 너무 약하기 때문일 거야. 약한 것은 뭉쳐 살게 마련이거든, 벌이나 개미처럼 말이야. 진화론적으로도 과거에 인간은 뭉쳐서 살아왔는데, 그렇게 하면 살아가기에 여러 가지 이점이 있었다는 말이지. 인간은 약점이 잇어서 그걸 보완하려고 지금까지 인간은 집단을 형성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각종 이권집단과 동호회 등도 모두 뭉치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어 형성하는 집단이지.
지원: 그렇군요. 그럼 인간도 생물학적으로 강하다면 호랑이나 곰처럼 단독생활을 할 것이란 말씀이군요.
교수: 그렇다고 봐야지. 그런데 강하고 약함은 절대적이지 않아서 단지 생물학적 조건만을 의미하지를 않고 먹이를 구하는 용이성과 외부로부터의 생존위험에 대한 방어력의 강약 등 상대적이고 상황적이라네. 예를 들면, 사자는 생물학적으로 강해 혼자서도 안전을 위한 방어력이 상당히 있지만, 평원에서 빨리 달리는 동물을 단독으로 잡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생존이 용이하지 않아 집단생활을 하는 거야. 사람이나 사자나 모두 생존에 문제가 없다면 단독생활을 하도록 진화해 왔을 거야.
지원: 네, 교수님.
교수: 인간이 집단을 만드는 원인을 좀 더 짚고 넘어가보세.
그리고 내 설명은 이랬다.
인간이 왜 어떤 특정의 행동을 하는가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타고난 본성(nature) 때문이란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학습을 통한 양육(nurture) 때문이란 견해이다. 집단형성에 관하여 전자의 견해 집단형성을 위한 본성을 유전인자에 가지고 인간이 태어난다는 주장으로서 사상적으로 보면 자유주의(liberalism)의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견해이다. 자유주의는 집단을 개인에 우선하였던 봉건주의(feudalism) 사회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자는 생각에서 비롯된 사상이다. 이 사상은 인간에게는 인간이게 하는 자연권(천부인권)이 있는데, 이는 어떤 이유로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론적 기반은 자연과학, 특히 생물학에 있으며, 다윈(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1959)에 그 뿌리를 박고 있다.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말했듯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은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에 따라 주어진 환경에 적합하도록 유전인자의 변형을 통한 진화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집단형성을 하는 성향도 유전변형을 거쳐 형성된 본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 사자, 벌과 개미 등도 먹이, 안전 등의 환경에 맞게 집단생활을 하도록 진화해 왔고 그래서 집단형성은 본성에 의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한편, 인간의 행동이 양육된 결과라는 견해도 있다. 이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유연(flexible)한 것으로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환경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이론을 위한 두 극단적 예를 들면, 여성해방운동(feminism)과 유물론(materialism이다. 여성해방운동자들은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하게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유물론에 의하면, 사회가 물질적 생활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물질적 환경, 즉 경제제도가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생활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런 견해를 집단형성에 적용하면, 인간이 집단을 형성하는 성향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 그런 본성을 가지고 타고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에 미치는 각종 사회제도, 사고방식 등을 문화라 하므로 이 견해에서는 문화가 집단형성에 간여한다고 본다.
지원: 교수님의 생각은 둘 중 어느 것이 맞을 거라 보세요?
교수: 집단형성에는 본능적 요소도 문화적 요소도 모두 있다고 봐. 다만, 집단의 유형에 따라 어느 요인이 더 강하게 간여하는지가 다를 거야. 가족과 같이 혈연관계로 맺어진 집단은 모성애 등의 본능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봐. 그 이유는 학습효과보다는 본능에 의하여 강하게 영향 받는 다른 동물에도 가족이 있기 때문이야. 그러나 문화에 따라 서구처럼 소가족일 수도 있고 전근대적인 동양의 대가족일 수도 있듯, 가족형태에는 문화적 요소가 강하게 영향을 미치지. 가족형성 자체에도 문화가 영향을 미친다고 봐. 왜냐하면 우리 전통문화에 의하면 이혼을 하면 비난을 받기 때문에 서양 같으면 깨어질 가정도 형식적으로는 가정이 깨지지 않고 그럭저럭 꾸려가는 예가 지금도 많을 것이네. 한편, 동창회, 교회, 장학회, 친구집단, 이런 것은 아무래도 본능에서라기보다는 인위적인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 문화적 요소가 강하지 않나 생각하네.
지원: 동창회와 같은 것의 형성에는 본능이 간여하지 않고 문화적 요소에 의해서만 형성되지 않을까요?
교수: 본능이 다소 간여할 수도 있어. 동양에는 동창회, 향우회 등의 친목집단이 많은데 비해, 서양에서는 동창회, 향우회라는 게 별로 없지. 따라서 얼핏 보기에 이런 집단의 형성에는 본능이 아니라 문화만 간여하는 것 같아. 그러나 서양에서도 대학에서 기금을 모금할 때, 주로 자기학교 출신자를 접촉하여 호소하는 것을 보면 형태와 강도가 다르지만 우리의 동창회 개념이 거기서도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 같아. 이처럼 서양에나 동양에나 유사한 조직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본능도 이런 집단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네.
지원: 네. 교수님. 그렇게 볼 수도 있네요.
교수: 그런데 인간은 집단을 만드는 욕구도 있지만, 그 집단으로부터 자신을 구분하고 싶다는 욕구도 강하다네. 그런 경우, 취미, 공동이익 및 기타의 공통관심사를 중심으로 소규모 집단을 만들게 되는데, 대학에서 보면, 대학 전체 내에 여러 소규모 클럽이 있고, 사회에서 보면, 종교도 다양할 뿐 아니라 동일 종교에도 종파가 많고 같은 종교집단에도 소규모 집단이 있지. 사회에도 각종 친목단체, 각종 이익단체 등이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그동안 여러 가지 집단을 만들어 왔고 지금도 만들고 있고 앞으로도 만들 거야.
지원: 네, 요새 아주 많은 이익단체가 생기죠. 그런데 집단을 형성하면 생존에 어떤 점에서 유리할까요?
교수: 집단은 개인보다는 물리적 힘, 정신적 힘, 정보 수집 능력 등이 개선되어 생존이나 번영을 위한 먹이 구하기와 안전 확보가 용이하지. 집단을 형성하는 성향은 때로는 문제를 일으켜. 어떤 집단은 그 구성원에게는 더 나은 삶을 제공할지 몰라도 외부에게는 더 나쁜 삶을 제공하는 깡패조직과 기타의 범죄집단이 생겨나는 수도 있지.
지원: 하하 그러네요, 부작용이 늘 기생충처럼 따라 다니게 마련이지요. 요새 도둑이 너무 많고 사기꾼이 너무 많지요. 종교를 빙자해 치부하는 종교인도 많아요, 가족이라는 집단 내에서도 계모가 전처의 자식에 대한 학대, 자식이 부모의 재산을 노리는 범죄와 형제자매간 유산다툼, 대기업 가족의 경영권 승계와 재산다툼 등이 많아요. 북한에서 보면 형제간 권력승계에서 패배해서 살기 위해 북한이 미치는 범위를 피해 도망다니는 소위 ‘백두혈통’ 자녀들도 있지요. 근래에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갑을문제도 있고, 노사분규도 많아요. 공식적 비공식적 이권단체와 그 청탁으로 물든 일부 국회의원, 경찰, 검찰 등 모두 집단을 형성해 암투하고. 아이들에게도 왕따문제부터 이미 그런 폐단을 일으킬 행동을 연습하면서 살아가요. 아이들 세대가 어찌될까 두렵고 걱정스러워요.
교수: 그런 문제는 어느 나라에나 있겠지만, 정도가 문제이지. 우리나라가 그 점에서 가장 심한 나라일 수도 있어. 어쨌건 그런 문제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집단주의일 거네. 집단에 관한 이 정도의 이해라면 앞으로 하게 될 이야기를 이해하기에 충분할 것이네.
지원: 네, 교수님, 문화란 무엇인가도 이제 좀 알았어요. 집단형성의 동인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어요. 우리문화의 문제점이 집단주의일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들기 시작해요.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저기 교수님이 화이트보드에 쓰신 집단주의에 대해 많은 말씀 듣고 싶어요.
교수: 그래. 오늘은 이만 여기서 끝내고 내일 그 얘기를 시작하자.
지원: 내일 언제가 좋아요?.
교수: 이만하고, 내일 만나세, 내일은 문화가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중요성에 관하여 말하고자 하네.
지원: 그 시간 좋아요. 내일 주제가 중요한 내용 같아요. 문화를 연구하고 배우는 건 우리 행동을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을 것 같아요,
교수: 바로 보았네. 내일 오전 10시경이면 되겠는가?
지원: 네, 교수님. 내일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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