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아들아 이렇게 글을 써보렴!

제1편 제3강 가슴으로 하는 대화 3: 단순한 아이디어로 시 만들기

매미가 웃는 까닭 2015. 12. 1. 18:06

 

3강 가슴으로 하는 대화 3 :

단순한 아이디어를 시로 만들기

 

이 책을 읽는 엄마와 아빠는 자기 딸이나 아들의 반 친구가 잘 쓴 동시를 볼 때. 어떻게 저렇게 잘 쓸까? 우리 딸, 우리 아들도 저런 글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감탄과 부러움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런데 여러분의 딸과 아들도 동시가 될 단순한 아이디어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동시로 만들 수 없을 뿐이리라. 여러분은 그런 단순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동시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봄직하다. 이 강에서 그걸 배워보자.


앞에서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두 개의 감성적 대화의 예를 보았다. 첫째 대화는 저자가 주도했고, 둘째 대화는 저자의 큰딸이 주도했다. 이들 두 예에서는 어떻게 동시를 지었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감성적 대화와 그 대화를 정리한 동시만 소개했다. 그 둘에서 동시 쓰는 과정을 전혀 설명하지는 않았다. 이 강에서는 감성적 대화법으로 단순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동시로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한 모든 과정을 자세하게 예시할 것이다. 감성적 대화법을 응용할 때 엄마와 아빠는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자기만의 것을 보태면 좋다. 이 강을 여러 번 읽으면 보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할 때 아이들의 지적 능력, 아이들과의 그동안의 감성적 교감의 빈도와 감도, 주어진 상황 등을 잘 반영해야 한다. 아이가 못따라 한다고 조급해하지 말기 바란다. 엄마 아빠도 어릴 때 그랬으니깐.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 나중에는 잘해낼 것이다.

 

 

낙엽이 춤춘다.♥♥♥

 

 

가을의 그맘때 치고는 상당히 훈훈한 어느 날, 작은딸과 나는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었다. 이 놀이터는 내가 사는 아파트 건물의 바로 앞에 남향으로 넓게 트인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나는 종종 혼자 또는 딸들과 이 놀이터에 와서 벤치나 그네에 걸터앉기도 하고 미끄럼틀에 기대서 있기도 했다. 이 놀이터는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가 아이가 되는 곳이다. 먼 산을 바라보고 하늘을 쳐다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저 멀리 날려 보내는 곳이다. 그날도 옆집의 아이들, 위층의 아이들, 아래층의 아이들, 옆 건물의 아이들이 그네를 타기도 하고, 미끄럼을 타기도 하고, 뛰어다니다 넘어져서는 일어나 다시 뛰어다니기도 하였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요새 지은 아파트단지와는 달리, 꽤 오래된 아파트라서 건물과 건물 사이가 넓고 화단과 놀이터도 커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또한 심은 지 오래된 크고 작은 나무들은 아파트 단지를 꽉 채웠고, 가을이라 저마다의 단풍 색깔로 아파트 단지를 아름다운 때때옷으로 갈아입혔다. 그 때때옷 위로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이 여기저기에 우뚝 서 있었다. 단풍이 없었으면 흉물이었을 텐데 단풍과 어울려 그런대로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단풍처럼 수많은 작은 아름다움을 모아 잘 꾸미기만 하면 요새 같은 우울한 세상도 아름답게 될 수 있으리라. 놀이터에 오면 저런 조화를 보면서 나의 추함을 어떻게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지도 배울 수 있다. 또한 순수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세파에 짓눌린 갑갑함 대신에 어떻게 깔깔거리며 살아 갈 수 있는지도 배울 수 있다. 놀이터는 내 가슴을 아름답고 향기 나게 하고, 또 세상도 그렇게 만들 수 있으리란 희망을 키우는 신비한 곳이다.


가끔 바람이 살랑살랑 불 때면 때때옷 조각들이 날아다녔다. 그 중 하나가 우리 앞으로 날아왔다. 미처 땅에 닿기 전에 작은딸이 그걸 붙잡았다.


예인아, 참 용케 잡았구나!”

히히. 근데 아빠…….”

?”

낙엽이 춤추며 떨어졌어.”

그밀 참 멋지구나.”

그래? 이 낙엽이 날아올 때 춤추는 것 같아 한 말인데 왜 멋져?”

그냥 떨어지는 낙엽보고 춤춘다니 멋지지?”

아빠, 근데 사실 오늘 선생님께서 다음 주 금요일까지 낙엽에 대한 동시를 지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어. 그래서 내가 이 낙엽을 보고 그런 말을 생각해본 거야. 그렇지만 어떻게 더 쓸 지 잘 모르겠어. 난 동시 쓰기가 좀 어려워.”

조금 전까지 밝았던 그 애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빠, 우리 반 친구 지희 알지?”

글쎄.”

얼마 전 우리 집에서 나와 숙제하다가 저녁을 먹고 간 친구 말이야. 아빠도 봤어.”

, 그 빨간 윗도리 입고 온 아이 말이니?”

. 기억하네. 그 애는 동시 짓기 숙제를 낼 때마다 참 잘 지어. 그래서 선생님께서 늘 칭찬하셔. 나도 그 애처럼 동시를 잘 짓고 싶어.”

숙제는 혼자 하는 건데.”

엄마나 아빠가 도와주셔도 좋다고 말씀하셨어.”

그래?”

.”


엄마와 아빠가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는 것은 좋지만 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특히 글쓰기와 같은 창의력을 키우는 숙제는 더욱더 그렇다. 엄마와 아빠가 해주면 우선은 아이들의 성적이 좋아질지 모르지만, 창의력을 계발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애 숙제를 해주지 않는다. 글쓰기 숙제는 더욱 그렇다. 그 대신 평상시에 자주 두 딸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와 다른 재미난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내가 도와줄게.”

정말? 아이 좋아라.”

나는 윗도리 주머니에서 메모장 수첩과 연필을 꺼냈다. 나는 취미로 가끔 시를 짓는데, 좋은 표현이 생각나면 써두려고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었다.

예인아!”

, 아빠.”

조금 전에 네가 낙엽이 춤춘다고 말했지?”

.”

그걸 여기 써봐.”

그 애는 내가 건넨 메모장에 다음과 같이 썼다.

 

(A) 낙엽이 춤춘다.

 

예인아.”

.”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낙엽이 춤춘다.’는 생각을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란다.”

우선 칭찬부터 했다. 엄마와 아빠에게서 칭찬받는 것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것이 있을까! 그 애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피었다. 그 미소의 향기를 맡으며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참 좋은 출발을 하고 있단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남들이 이미 많이 사용했을 것 같구나.”

표현?”

표현이란 뭔가를 나타낸다는 말이다. 글로 나타내기도 하고 그림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노래로 나타내기도 한단다. 예를 들어, 글로 기쁨을 나타내면 글로 기쁨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그림으로도 기쁨을 표현하기도 하고 노래로도 기쁨을 표현하지.”

알았어. 그런데 남들이 많이 표현한 말이면 어때?”

어떻다가 보다는 내 것이라고 할 수 없지.”

내 것?”

그래. 내가 남달리 표현한 말이 아니라 좋은 표현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이란다.?

그렇구나.”

그처럼 많이 사용하여 흔한 표현을 진부한 표현이라고 한단다.”

 

나는 잠시 글짓기 이야기를 쉬고, ‘진부하다는 말뜻을 자세히 설명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표현의 예로, 여자의 둥글고 환한 얼굴을 보고 어른들은 흔히 달덩이 같은 얼굴이라고 하는데, 너무 자주 쓰기 때문에 이런 표현은 진부하다고 말해주었다. 또한 예쁜 여자를 보고 꽃같이 예쁘다.’라는 표현도 자주 쓰는 것이므로 진부하다고 말 해주었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 ‘진부하다와 같이 어렵지만 알기만 하면 의사전달에 아주 효과적인 어휘들이 있다. 그러나 많은 어른들은 그런 걸 아이들의 로 바꾼다. 예컨대, ‘진부한 표현이란 말 대신에 이미 남이 많이 써 흔한 말과 같이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그건 아이들의 어휘력 발달을 더디게 한다. ‘진부하다란 말도 표현이란 말도 늦게 배운다. 우리나라의 말은 순수한 우리말과 한자로 된 말의 이중구조로 되어있는데, 아이들의 말에는 순수한 우리말이 많고 어른들의 말에는 한자어로 된 것이 많다. 밥과 진지, 가르침과 교육, 글과 문장, 이름과 성명이 그런 예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우리나라의 어휘가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언어의 이중구조는 순수한 우리말에도 존재하는데, 먹다와 드신다가 그런 예이다. 먹다와 드신다와 같은 순수한 우리말의 이중구조의 한 원인은 사람과 사람의 서열을 너무 따지는 우리의 문화 탓이기도 하다. 옛날, 서열을 잘 지키는 우리나라를 중국에서 동방예의지국이라고도 했다지만,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서열을 따지다보면 예의가 없느니 버릇이 없느니 하니까, 그에 맞추려고 요구하는 형식에 얽매인 지나친 겸손 등은 톡톡 튀는 생각을 막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서열 탓에 생긴 이중구조는 한자어로 된 말에도 존재하는데 성명과 존함이 그 예이다. 부친과 춘부장(남의 아버지를 높이 부르는 말)도 그 예이다. 자기 아버지를 가친, 아버님, 아버지, 아빠, 아비 등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대충보아도 5가지로 부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중구조가 아니라 4중 어쩌면 5중 구조,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한자어로 된 말은 순수한 우리말보다 더 어렵다. 그래서 어른은 아이들에게 말할 때 어른 말과 아이들 말을 구분하여 어른에게는 한자어로 된 말을 많이 사용하고 아이들에게는 순수한 우리말을 많이 사용한다. 어차피 이중구조가 해결되기는 빠른 시일 내에 불가능하며,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릴 때부터 어려운 한자어로 된 말을 어느 정도 가르치는 것이 낫다. 위에서 진부하다란 말에서와 같이, 어려운 한자어로 된 말의 사용이 효과적일 때 그 사용을 피하지 말아야 하고 또한 그런 말을 사용할 때, 반드시 그 뜻을 충분히 설명해주어야 한다.

 

작은딸이 진부하다의 뜻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판단되어 동시에 관하여 하던 대화를 계속하기로 했다.

 

진부하다는 말의 반대말은 참신하다는 말이란다. 남이 사용하지 않은 색다른 말이면서도 참 좋은 말을 그렇게 말한단다.”

. 참 좋은 말이 무슨 뜻이야?”

좋은 질문이다. 뜻도 좋고 듣기도 좋아 기분 좋게 느껴지는 말이란다.”

그렇구나. ‘낙엽이 춤춘다.’와 같은 진부한 표현은 앞으로 사용하지 말고 참신한 말을 찾아야겠구나.”

그렇지. 그러나 너의 그 표현도 동시를 쓰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단다.”

진부한 표현인데 왜 좋은 출발점이야?”

진부한 표현도 참신한 내용을 보태주면 좋아지기도 해. 또한 참신할 말을 찾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단다.”

알았어, 아빠. 그런데, ‘낙엽이 춤춘다.’는 그 표현은 생각해냈지만, 그 다음이 잘 안 돼.”

오늘 그게 잘되도록 해보자.”

, 아빠. 그걸 가르쳐줘.”

그래. 우선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볼래? 낙엽이 무엇을 한다고 했니?”

춤춘다고 했어.”

맞다. 그럼 무엇이 춤을 춰?”

낙엽.”

그래. 참 잘 한다.”

 

그 애는 자기 얼굴보다 더 크게 웃고 있었다. 쉬운 질문에 답했을 뿐인데도 아빠가 칭찬을 해주니까 참 좋은가보다. 웃을 때 그 애의 얼굴에서도 언니의 얼굴에서처럼 두 볼에 볼우물이 옴폭 들어갔다. 내 친가 쪽에서는 이런 볼우물을 가진 사람이 없다. 두 딸의 엄마가 볼우물을 가지고 있어 외가 쪽에서 물려받은 선물이다. 어쩌면 그럴까 할 정도로 두 딸과 그 애들 엄마 이렇게 셋이서 거의 같은 모양으로 거의 같은 위치에 좌우가 약간 비대칭적으로 옴폭 들어간 볼우물을 양쪽 볼에 가지고 있다. 셋이 함께 있으면 웃을 때 여섯 개가 한꺼번에 옴폭 들어간다. 그걸 보는 것은 나의 크나큰 기쁨이다. 그래서 네 식구가 모였을 때 나는 일부러 농담을 하곤 한다.

 

예인아, ‘낙엽이 춤춘다.’는 말에는 낙엽과 춤이라는 두 말이 있단다.”

.”

먼저, 낙엽이란 말을 이용해 어떻게 동시로 쓸 수 있는지 알아보자. 그런 다음에 춤이란 말을 이용해 멋진 동시로 만들어보자.”

 

초롱초롱해지는 작은딸의 눈망울. 그 눈망울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를 쭉 둘러보았다. 단지에는 은행나무를 비롯해 여러 가지 나무들이 많았다.

 

나무종류.

그렇다. 이건 글쓰기의 좋은 소재이다. 글을 쓸 때 글쓰기 소재를 찾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다. 주위에는 글쓰기 소재로 가득 차있다. 또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아도 글쓰기의 소재를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주위와 과거를 뒤돌아보다가 나중에는 주위를 벗어난 저 바깥에서 또한 자신의 내부에서 소재를 찾을 수 있고, 먼 미래를 내다보며 그런 것을 찾을 수도 있다. 또한 언젠가는 눈을 감아도 좋은 소재를 찾을 수 있다. 어느 순간엔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소재도 볼 수 있는 능력도 생기게 된다. 그 소재로부터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칠 때 그걸 잡으면 뛰어난 글을 쓸 수 있다. 예컨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그렇게 잡은 독창적 아이디어의 소설이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그렇게 잡은 아이디어의 소설이다. 다시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니 아파트를 뒤덮고 있는 화려한 단풍이 눈에 들어왔다.

 

단풍색깔.

그렇지, 나무이름과 더불어 단풍색깔도 춤과 엮어보자. 무심코 보아 넘기던 아파트 단지. 아무 것도 없을 것 같던 아파트 단지. 이런 곳에서도 글로 쓸 아름다운 것들이 숨어있다. 아니, 저것들이 숨은 게 아니라 내가 늘 보였음에도 못 보았다는 게 맞다. 눈에 보인다고 보는 게 아니므로 보이는 걸 진짜로 볼 수 있도록 눈을 떠야 하나보다. 좋은 글을 쓰려면 보이는 걸 제대로 볼 수 있는 눈뜨기 연습부터 많이 해야 하나보다.


이제 나무종류와 단풍색깔을 이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이디어란 본래 다른 아이디어를 꼬리에 달고 나오는 속성이 있기에 앞의 나무종류가 단풍색깔의 아이디어를 꼬리에 달고 나왔던 것이다. 먼저, 나무종류를 이용하려고 그 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인아, 낙엽은 어디서 떨어지니?”

나무.”

그렇지. 그럼 저 주위를 들러봐라. 어떤 나무들이 있니?”

은행나무, 감나무, 단풍나무…….”

그래, 그런 나무들이 보인다. 이들 나무이름을 사용해 낙엽이 춤추다.’의 다음에 은행나무 낙엽이 춤춘다.’를 쓰면 좋겠다. 또 감나무와 단풍나무의 이름도 사용해서 그렇게 써보면 좋겠구나.”

. 그럴 게.”

그 애가 내민 메모 수첩에는 다음 글이 적혀 있었다.

 

(B) 낙엽이 춤춘다.

     은행나무 낙엽이 춤춘다.

     감나무 낙엽이 춤춘다.

     단풍나무 낙엽이 춤춘다.

 

예인아, 이제 낙엽이 춤춘다.’는 한 줄보다는 더 많아졌지?”

. 네 줄이 되었어.”

그렇지. 아직은 동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동시 맛이 조금은 나는구나.”

. 나도 그렇게 느껴져. 근데, 아빠. 은행나무는 노랗잖아. ‘노랑 은행나무 낙엽이 춤춘다.’로 고치면 안 될까?”

 

단풍색깔은 나무종류 다음에 이야기할 참이 아니던가! 나무종류를 말하자 단풍색깔을 생각해내는 작은딸은 생각과 글쓰기에서 내가 바라던 방향으로 잘 진척되고 있음을 보이고 있었다. 조금만 도우면 나중에는 아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나의 조그만 진척은 다른 큰 진척을 낳는다. , 수필 등의 글쓰기에도 그렇고, 과학에도 그렇고, 예술에서도 그렇다. 그렇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까, 미국의 닐 암스트롱(Neil A Armstrong)이 아폴로(Apollo)라는 우주선을 타고 가서 달에 인류의 첫 발걸음을 내디디고 한 말이 떠오른다.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한 인간을 위해서는 작은 한 걸음마이고 인류를 위해서는 큰 도약)

 

그 애가 아까 쓴 글에 색깔이란 말을 넣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메모장에서 다음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C) 낙엽이 춤춘다.

노랑 은행나무 낙엽이 춤춘다.

갈색 감나무 낙엽이 춤춘다.

빨강 단풍나무 낙엽이 춤춘다.

 

예인아, 색깔을 넣으니 울긋불긋한 단풍이 눈에 훤하게 보이는 것 같구나.”

. 나도 그래.”

 

위의 글을 어떤 글이 되도록 가르칠까를 잠시 생각하였다. 낙엽이 가끔씩 하나 떨어지는 여유롭고 낭만적인 글이 되도록 가르칠 수도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온갖 낙엽이 저마다의 춤을 추며 무수히 떨어지는 박진감 있고 역동감이 있는 글이 되도록 가르칠 수도 있었다. 그때 마침 바람이 약간 세게 불자 낙엽이 여러 개 떨어졌다. 이 분위기에 맞게 박진감과 역동감이 있는 글이 되도록 가르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결정하니 위의 글이 느슨하게 느껴졌다. 그런 느낌을 주는 이유는 나무이름이 들어가 글이 좀 길어진 탓이라고 판단했다. 나무이름들을 빼서 글이 짧아지면 템포가 빠르게 느껴져 박진감과 역동감이 더해지리라. 또한 나무이름이 꼭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노랑 춤, 갈색 춤, 빨강 춤. 그런 색깔 춤으로 충분하다.

 

예인아, 나무이름을 버리면 어떨까?”

?”

나무이름이 들어가니 글이 느슨한 느낌이 든다.”

느슨하다는 말은 무슨 말이야?”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없는 말이 들어가 글이 길어져 읽기에 느린 느낌을 준다는 말이다.”

.”

지금, 저기 봐라. 이 낙엽 저 낙엽 많은 낙엽이 신나게 춤을 추잖니?”

.”

이렇게 빠르게 그리고 많이 떨어지는 것에 맞추려면 나무이름을 빼는 게 좋아. 글이 좀 짧아지면 아주 빠르게 춤추는 느낌이 들 거야.”

그럼, 나무이름을 빼고 다시 쓸게.”

 

그 애가 다시 쓴 글은 아래와 같았다.


(D) 낙엽이 춤추다.

     노랑 낙엽이 춤춘다.

     갈색 낙엽이 춤춘다.

     빨강 낙엽이 춤춘다.


아까 것과 지금 것을 다시 읽어봐라. 나무이름을 빼니까 빨리 움직이는 느낌이 들지 않니?”

아빠 설명 듣고 보니 글 길이에 따라 빠른 느낌도 들고 느린 느낌도 드네. 글 길이가 그렇게 중요한 줄 처음 알았어.”

더구나 나무이름은 이 글에서 중요하지도 않아. 그냥 노랑 춤, 갈색 춤, 빨강 춤, 이처럼 색깔이 춤추는 것이면 충분해.”

. 색깔이 춤춘다 하니 더 좋은 것 같아. 그게 아까 아빠가 말한 참신한 표현인 것 같아.”

와우! 그걸 알아내다니 우리 예인이 대단하구나.”

 

위의 나무이름처럼 글을 쓰다보면 처음에는 멋져 보이던 표현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질 수도 있다. 그걸 것을 버려야 한다. 그러고 나면 부각되는 것은 색깔이다. 많고도 많은 색깔이 있는데, 왜 그 세 가지 색깔만의 춤이냐? 그럼 어떤 색깔을 더할까? 아이가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다면, 동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잘 쓸 수 있는 문장력을 가진 아이다. 무지개 색깔이면 더 낫지 않을까? 다시 말해, , , , , , , 보의 낙엽을 글에 포함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순발력까지 갖춘 아이다. 파랑 낙엽이 있다고? 이런 의문까지 할 수 있는 아이라면 대단한 사고력까지 갖춘 아이다. 그런 아이라면 파랑 낙엽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가 글쓰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 수 있는 아이다. 왜냐하면 그런 의문을 가진 아이라면 틀에 박힌 생각만 할 아이가 아닌 창의력을 갖춘 아이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아이에게 그런 문장력, 순발력과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는 지도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런 지도는 엄마, 아빠, 선생님, 언니, , 오빠, 누나, 삼촌의 몫이다.


그런 아이는 글쓰기에서만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생각을 하지 않고, 과학에서도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아이다. 누가 알랴, 그가 한국의 미래 아인슈타인이 될지를! 그 이전에는 우리가 사는 공간이 종이처럼 구겨진다는 독창적인 생각 중에서도 독창적인 생각을 해냈다. 선이나 면은 구겨진다고 하지만 공간이 구겨진다는 생각을 해본 사람은 없었다. 그런 창의적 생각으로 아인슈타인은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이 생기는 원인도 설명할 수 있었다. 틀에 박힌 생각을 하는 사람은 구겨질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이 구겨진다고 생각을 할 수 없다. 또한 그는 물질을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고 하는 생각, 당시 최고의 과학자에게도 충격적인 그런 기상천외한 생각까지 해냈다. 그 충격이 과학의 방향을 바꾸었고 인류의 역사도 바꾸었다. 창의적인 글쓰기를 잘하면 그런 과학적인 창의력 계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래의 아인슈타인을 키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도 글을 잘 쓰지 않았을까?


, , , , , , 보의 무지개 색깔의 낙엽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멋진 착상인가? 그러나 작은딸은 아직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방향으로 위 글을 써가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예인아. 더 많은 색깔이 춤추는 것으로 쓰면 어떨까?

더 많은 색깔?”

그래.”

…….”

잘 생각해 보아라.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색깔이 모인 것. 비온 후에 나타나는 하늘의 아름다운 구름다리 말이다. 그 다리를 걷고 싶구나.”

아하, 무지개. 아빠 잠깐만.”

 

나는 어릴 때 무지개가 큰 우물에 뿌리를 박고 우물물이 하늘로 올라갈 때 내뿜는 색깔이라고 들었다. 더러는 뱀이 용이 되어 하늘을 올라가는 길이라고도 들었다. 비가 온 후 어느 오후 건너 무지개가 마을에 뿌리를 박는 것 같아 그 뿌리를 보기 위해 그 마을까지 가본 적이 있었다. 그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무지개는 그 건너 마을의 건너 마을에 가있었다. 프로스트라는 미국 시인이 쓴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서처럼, 가보지 못한 길일수록 더 아름다움이 가슴에 남듯, 그때 보지 못한 무지개 뿌리라 지금도 더 없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으로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문학의 길도 내게는 가지 않은 길이다. 나는 이따금씩 시를 쓰는데, 이걸 아는 문학계의 지인 두어 분이 나보고 시인으로 등단하라 권했다. 나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문학에 웬 자격증이 필요한가? 글의 우수성의 판단은 독자 몫인데, 한두 사람이 올해는 이런 기준에서 내년에는 저런 기준에서 자기 구미에 맞는 작품을 뽑아 너는 이제부터 시인이야.’ 하는 건 나의 생활철학과는 맞지 않다. 박 모라는 우리나라 소설가는 신춘문예의 예비심사에서 낙방했는데 담당 기자가 버려진 그의 원고지를 설그머니 최종심에 올려 종국에는 당선까지 되어 유명한 소설가로 되었다 하지 않는가! 등단이란 그런 로또다. 나는 그런 사행심의 로또를 사기 싫어 시인 대접을 받지 못하더라도 혼자 쓰면서 혼자 즐기기로 결정했다. 다빈치 코드를 쓴 댄 브라운, 해리포터를 쓴 조언 롤링, 그리고 단테, 섹스피어, 괴테, 톨스토이, 모파상, 릴케, 헤밍웨이 등 그 많고 많은 서양의 대문호들은 그런 자격증 없는 풍토에서 활동해 훌륭한 작품을 쓴 게 아닌가!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가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어 다행이다. 그런 다행스런 풍조를 타고 나도 가지 않는 그 길이 아쉽도록 아름다워 이 책을 쓴다.

 

작은딸은 다음과 같이 다시 써 내게 보였다.

 

(E) 낙엽이 춤추다.

     빨강 낙엽이 춤춘다.

    주황 낙엽이 춤춘다.

    노랑 낙엽이 춤춘다.

    초록 낙엽이 춤춘다.

    파랑 낙엽이 춤춘다.

    남색 낙엽이 춤춘다.

    보라 낙엽이 춤춘다.


예인아. 이 글이 어떻다고 보니?”

아빠. 내 생각에는 색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와우, 그걸 알아내다니 내 딸 대단하다.”

자기가 써놓고 멋지다고 말할 줄 알았던 딸이 오히려 무지개 색깔이 글을 산만하게 만들었음을 알아냈다. 그렇다. 위 글은 비슷한 문장이 너무 많이 반복된다. 그래서 산만하다. 박진감이 모두 사라졌다.

예인아. 이번에도 버리기 연습을 해야겠구나. 그럼, 어떤 색깔을 버릴까?”

내가 좋아하는 빨강, 노랑, 파랑만 남기고 다 버리고 싶어.”

좋은 생각이다. 네가 색의 3원색을 좋아하는구나.”

“3원색, 그게 뭔데?”

색의 3원색이란 빨강, 노랑, 파랑을 말하는데, 모든 색의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색이란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 세 가지 색깔을 잘 섞으면 이 세상 모든 색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로 모든 색의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색이 색의 3원색이란다.”

정말로 그 세 가지로 이 세상 모든 색을 만들 수 있어?”

그렇단다. 예를 들면, 노랑과 파랑을 절반씩 섞으면 초록이 된다. 이때 파랑보다 노랑이 좀 더 많이 들어가면 밝고 연한 초록이 되는데, 이런 초록을 연초록이라 한단다. 파랑이 좀 더 들어가면 어둡고 진한 초록이 되는데, 이런 초록을 진초록이라 한단다.”

참 신기하네. 아빠, 난 나뭇잎을 그릴 때 초록색의 크레파스를 다 쓰면 친구에게 빌려 쓰거나 새 크레파스를 사곤 했어. 앞으로는 그렇게 섞어 사용할 거야.”

그래, 하나만 더 말하자. 빨강과 노랑을 적절히 섞으면 주황색, 즉 오렌지 색깔이 돼. 이때 빨간색이 노랑보다 많이 들어가면 주홍색이 되고.”

재미있어, 아빠. 모르는 것을 알게 되면 늘 기뻐.”

그렇지, 뭐를 알게 되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지. 나중에 색깔에 대해서 더 가르쳐줄게. 오늘은 글쓰기에 대해서만 말하자. 네가 좋아하는 3원색을 남기고 나머지 색에 대한 글은 모두 버리고 다시 써봐라.”

 

그 애가 메모장에 다시 쓴 글은 다음과 같았다.


(F) 낙엽이 춤추다.

    빨강 낙엽이 춤춘다.

    노랑 낙엽이 춤춘다.

    파랑 낙엽이 춤춘다.

 

이렇게 고치고보니 무지개 색을 사용하기 전과 거의 같은 글로 되돌아갔다. 글을 쓸 때 이렇게 되는 수가 흔히 있다. 실컷 쓴 것이 나중에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여 지워버리면 이처럼 제자리로 돌아간다. 제자리걸음을 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좋은 글쓰기는 종종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배운다. 제자리걸음은 도약을 위한 준비라 흔히 말하지 않던가!

 

예인아, 아까는 나무이름을 버리고 지금은 색깔을 많이 버렸단다. 글을 쓸 때는 이처럼 버리기를 자주 하게 된다. 그러면 지금처럼 제자리로 돌아갈 수도 있단다.”

.”

잘 썼다고 생각한 것을 나중에 보면 별 건 아닐 때가 그런 때란다.”

.”

어떤 표현은 너무 멋져 버리기 아까울 때가 있단다. 그런 것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단다. 그게 글쓰기란다.”

 

위에서 글의 늘이기와 버리기의 예를 두 개 보았다. 나무이름을 넣어 글을 늘였다가 버렸고, 무지개 색깔을 넣었다가 3원색만 남기고 버렸다. 글쓰기는 짧은 글을 길게 늘이는 작업일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들어간 글을 버리고 다시 늘이고 다시 버리는 작업의 끝없는 반복이다. 시는 더욱 그렇다. 특히 독특한 표현을 찾아 늘이기도 어렵지만 아주 아까운 표현을 버리기도 어려운 것이 시 쓰기이다.


어떤 것을 버릴 때는 버리기 기준이 필요하다. 나무 이름을 버릴 때는 박진감과 역동감이 기준이어서 글의 길이를 줄였다. 반면, 위의 글에서는 색깔이 너무 많아 문제다. 그럼 색을 버릴 때 어떤 기준으로 버릴 것인가? 작은딸이 사용한 색깔 버리기의 기준은 자기가 좋아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흔히 이처럼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하는 감정적 기준을 사용할 것이다. 다행히 작은딸이 좋아하는 색깔이 3원색과 일치했다. 아이들과는 달리 어른들은 흔히 논리나 지식을 버리기 기준으로 사용한다. 어른들이라면 위의 글에서 첨부터 3원색을 버리기 기준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작은딸도 3원색을 배웠다면 ‘3원색을 남기고 지우고 싶어.’라고 했을지 모른다.


색의 3원색은 어른에게는 상식수준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지식에 속한다. 글을 쓸 때 지식은 큰 도움이 된다. 지식은 단순히 좋아하다.’또는 좋아하지 않다.’와 같은 감성적 표현보다는 더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지식은 글을 풍부하게 만든다. 예컨대, 시를 쓸 때 만유인력의 지식이 필요할 수도 있고, DNA 지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 지식이 있어야 그런 말이 들어가는 표현을 생각해낼 수 있다.


지식은 경험에서 얻을 수 있다. 그림을 그리다가 어떤 색깔의 물감을 섞어보니 다른 색깔이 되더라는 것을 알게 되고, 노랑과 파랑을 적절히 섞으면 다양한 초록이 되는 것을 터득하게 된다. 이처럼 색을 만들어 내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지식이 된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경험을 쌓게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방학 때 외국에 나가 눈을 띄울 필요도 있다. 이 책에서 나의 대화상대로 나오는 큰딸은, 이 책을 쓸 때, 미국에서 대학교 4학년이다. 그 애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중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였다. 이 책을 쓸 때, 작은딸은 미국에서 고등하교 졸업반인데, 몽고를 갔다 왔다. 이번 학기 말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여름방학과 대학입학일 사이에 시간이 많아 작은딸이 동남아, 유럽 또는 아프리카 중 하나를 택해 여행하고 싶다 하여, 10일이나 보름 정도 나와 함께 배낭여행을 할 계획이다. 여행중에 그곳의 대학을 방문하여 내 분야에 관한 연구동향도 살펴볼 계획이다.


다양한 것을 좋아하고 색다른 경험을 높이 평가하는 미국사회와 미국대학은 해외여행을 많이 권장한다. 그래서 두 딸의 여행은 앞으로 어디에 살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적 자산이 될 것이다. 큰딸은 영어, 한국어, 일본어와 중국어를 잘 구사한다. 그 애가 외국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디서 들었는지 클레오파트라가 7개 언어를 구사하였다며 자기도 그러고 싶다는 꿈꾸기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어려서는 해외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는 꿈을 꾸었고, 어느 정도 자라서는 아시아와 관련된 국제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꿈꾸기 여행은 돈이 많아야만 가능한 건 아니다. 배낭여행은 그다지 돈이 들지 않으며 그만한 돈으로 얻는 게 더 많아 투자할 가치가 있다. 불요불급한 생활비를 조금 줄이면서 차근차근히 준비하면 값지고 살아있는 교육인 해외여행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지식은 체계적인 학교교육을 통해 얻어진다. 예컨대, 빨강, 노랑 및 파랑이 색의 3원색이고 그것을 왜 그렇게 부르는지를 학교에서 배운다. 나아가 지식은 책읽기를 통해서 스스로 얻을 수도 있다. 책읽기는 학교공부로나 경험으로 얻지 못하는 지식을 얻게 해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특정의 글쓰기는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겠지만, 대부분의 글쓰기는 상식 수준의 지식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상식 수준의 지식을 얻는 데는 책읽기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 도서관과 서점은 높거나 낮은 지식의 저장소이다. 그래서 나는 두 딸이 어려서 한국에 있을 때 그 애들을 도서관과 서점에 자주 데려갔고 또한 책도 많이 사주었다.


창의력(creativity)은 무슨 일에나 필요하며 글쓰기에도 그렇다. 창의력은 기존의 틀을 훨훨 넘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계발된다. 경우에 따라 지식은 생각을 어떤 틀에 가두는 우물이 될 수 있다. 또한 지식은 생각이 딛고 날아오를 수 있는 받침대가 되기도 하는 양면성을 가진다. 따라서 아이들이 되도록 지식을 많이 얻도록 도와주되, 그 지식을 딛고 날아갈 수 있는 창의력을 기르게 도와주어야 한다. 이 세상의 과학은 관련 지식을 쌓다가 그 지식을 뛰어넘는 창의력으로 크게 발전하여 왔다. 뉴턴의 만유인력이 그러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그러했다. 글쓰기, 특히 시 쓰기는 톡톡 튀는 생각을 가능하게 하므로 창의력 계발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지식을 독특하게 사용하는데, 이 같은 사용법이 지식의 다른 일을 할 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글쓰기의 창의력은 글쓰기에 머물지 않고 다른 분야에서도 창의적 생각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딸이 말을 걸었다.

 

아빠, 뭐 해?”

이런저런 생각을 좀 했단다.”

그 애가 메모장을 넘기며 말했다.

아빠, 그렇게 색깔을 버리니까 색깔 수가 너무 작아, 또 무지개 색깔을 쓰기 전으로 되돌아갔어.”

그 애의 괄목할 만한 관찰력이 돋보였다. 동시 쓰기에 큰 진척을 보이는 증거였다.

대단하다, 우리 예인이. 그런 것까지 느낄 줄 아네. 나도 같은 느낌이다.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그 아빠에 그 딸. 붕어빵 딸에 붕어빵 아빠야.”

히히히.”

하하하.”

근데, 아빠 잠깐만.”

 

한참 뭔가를 메모장에 쓰더니 그 애가 다음 글을 보여주었다.


(G) 낙엽이 춤추다.

     노랑 낙엽이 춤춘다.

     파랑 낙엽이 춤춘다.

     빨강 낙엽이 춤춘다.

     빨, , , , , ,

     무지개 춤을 춘다.

  

와우!

나는 한참 말을 잃었다. 버린 색깔을 되찾아 다시 글에 써넣어 색깔의 수가 너무 작은 단점을 재치있게 보완하다니!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작은딸은 기특하게도 그걸 해냈다. 그 애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나서 한쪽 볼에 그리고 다른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어릴 때는 10개의 발가락 하나하나에 뽀뽀를 해주던 사랑스런 작은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발에 하던 뽀뽀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닐 만큼 제법 커서 발냄새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후에도 오랫동안 한쪽 볼에 뽀뽀해주면 다른 볼을 내밀며 뽀뽀해 달라던 작은딸이었다. 이 또한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작은딸이 나의 품을 떠날 것이고 나도 또한 그에 익숙해지도록 알게 모르게 조금씩 연습할 것이리라. 그런 작은딸에게 오랜만에 두 볼에 해주는 뽀뽀였다. 그리곤 흐뭇한 웃음을 그 애에게 보냈다. 그 애도 나를 보고 쌩긋 웃었다. 행복하면 웃게 되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함에 틀림없으리라. 웃음과 행복은 같은 말이리라. 이런 행복한 기억으로 작은딸이 내 품을 떠나 세상으로 훨훨 날아간 후에도 나와 그 애는 늘 행복할 수 있으리라.

 

예인아.”

, 아빠.”

너무 멋지다. 예인이가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줄 몰랐다. 근데 하나만 더 고쳐볼까?”

어디를?”

, , , , , , 보의 무지개 춤을 춘다는 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어떻게 고쳐?”

지금 가을이고 나무가 많은 들판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것으로 하는 다음 글로 고치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고 내가 다음과 같이 고쳐 보여주었다.

 

(H) 낙엽이 춤춘다.

     노랑 낙엽이 춤춘다.

     파랑 낙엽이 춤춘다.

     빨강 낙엽이 춤춘다.

     빨, , , , , ,

     가을들판은 무지개 춤마당

 

아빠, 참 좋다.”

위 글을 읽고 또 읽더니 그 애가 입을 열었다.

아빠, 이제까지 낙엽의 색깔에 대해서만 말했잖아. 이제 춤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어.”

그래, 그 이야기를 하자. 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네가 말해볼래.”

작은딸이 먼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창의력의 계발에는 아이들이 먼저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말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생각이 느리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 나의 여유는 아이의 여유이다. 빨리, 빨리, 빨리. 이렇게 말하는 우리네 빨리문화를 조금은 느림보문화로 바꾸어야 한다.

아빠, 춤에는 여러 가지가 있잖아.”

그렇지, 어떤 춤인지 말해볼래?”

디스코와 강강술래.”

그리고 또?”

힙합이란 춤도 있어.”

그것도 있지.”

그 세 가지면 충분하다고 봐. 아까 색깔에서처럼 너무 많으면 좀 그래.”

우리 예인이 그것까지 생각할 수 있구나.”

색깔이 너무 많아 버린 것이 생각나서야.”

응용능력이 돋보이는 작은딸이었다.

그렇구나. 배우는 학생을 제자라고 한단다. 제자 중에서 가장 잘 배우는 학생을 수제자라고 한다. 내 예쁜 딸 예인은 이 아빠의 수제자.”

히히히. 그럼 붕어빵 수제자.”

하하하.”

근데, 아빠. 강강술래를 출 때 예쁜 색깔의 옷을 입잖아.”

그렇지. 춤과 색깔을 합치자는 말이니?”

. 그러면 좋을 것 같아.”

네가 해볼래?”

.”

 

그 애가 잠시 후 내민 종이에는 다음 글이 적혀 있었다.

 

(I)  낙엽이 춤춘다.

     노랑 낙엽이 디스코를 춘다.

     파랑 낙엽이 강강술래를 춘다.

     빨강 낙엽이 힙합을 춘다.

     빨, , , , , ,

     가을 들판은 울긋불긋

     무지개 춤마당

 

색깔과 춤의 조합을 울긋불긋하다는 단 한 마디로 처리하는 재치와 절제의 솜씨. 그건 보통 솜씨가 아니다. 감성의 폭발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그것을 재치있게 절제할 줄 아는 능력이 시 쓰기에 아주 중요하다.

 

예인아. 아주 멋지다.”

아빠, 고마워.”

그래. 그런데 첫줄의 낙엽이 춤춘다.’가 좀 맘에 안 든다. 더 좋은 표현으로 고칠 수 있을 것 같다.”

왜 맘에 안 들어?”

뒤에 춤춘다라는 말이 많이 나와 중복되어서 그렇다.”

그럼 어떻게 고쳐?”

낙엽이 왜 춤을 추며 떨어지는가를 생각해보아라.”

아빠, 알았어. 잠깐 기다려 봐.”

 

그 애가 첫줄을 고치고 제목까지 붙여 다음의 글을 내게 보였다.

 

(J) 낙엽

 

바람이 살짝 불자

노랑 낙엽이 디스코를 춘다.

파랑 낙엽이 강강술래를 춘다.

빨강 낙엽이 힙합을 춘다.

, , , , , ,

가을 들판은 울긋불긋

무지개 춤마당

   

예인아. 바람이 살짝 불자라고 하기보다는 춤추라고 낙엽의 등을 떠미는 건 어떨까

아빠, 그게 좋아 보여. 지금 그렇게 고칠게.”

 

그 애가 내민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K) 낙 엽

 

바람이 살짝 등을 떠밀자

노랑 낙엽이 날아오르며

공중에서 디스코를 춘다.

파랑 낙엽은 강강술래를 춘다.

빨강 낙엽은 힙합을 춘다.

, , , , , ,

가을 들판은 울긋불긋

무지개 춤마당

   

첫 줄을 춤춰봐, 싫어, 춤춰봐, 싫어, 이렇게 바람이 권하고 낙엽이 주저하는 모습으로 고칠 수 있다. 또한 둘째 줄부터 넷째 줄에서는 노랑 낙엽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춤추자, 파랑 낙엽과 빨강 낙엽도 나도, 나도말하면서 앞 다투어 공중에 뛰어 나르는 것으로 고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그렇게 고치기를 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작은딸이 쓴 동시로는 이만하면 잘 지었다고 보았다. 앞에서 말했듯, 아이들이 쓴 미완의 동시가 참다운 동시 맛을 내는 완성의 동시이다. 더 복잡한 표현이나 표현기교는 자라가면서 스스로 깨우쳐갈 수 있으리라.

 

 

<어른을 위한 시>


그녀와 나

 

그녀와 나는 서로 사랑하였지요.

그녀가 내게 느끼는 사랑을 느끼고 싶어

나는 여자가 되어보고 싶었지요.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사랑을 느끼고 싶어

그녀도 남자가 되어보고 싶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바지와 치마를 바꿔 입었지요.

깔깔거리다 그만 그대로 잠들고 말았지요.

장난기 많은 하늘의 신선이 내려와

나의 턱수염을 뽑아 그녀의 턱에 달아주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벗겨내 내 얼굴에 발라주었지요.

신선이 깜박 잊고 남근과 자궁을 바꿔주지 않아

그날부터 우리는 남자 반 여자 반으로 살게 되었지요.

먼 훗날 아이를 낳는지를 보고서야

누가 남자이고 누가 여자인지 알게 되겠지요.

그때까지 그녀는 남자의 고통을 알아가고

나는 여자의 고통을 알아가겠지요.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고통이 바로

사랑이란 것도 알아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