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 짜리 행복
택시요금이 5,000원이라 10,000원 짜리를 주고
“나머지를 그냥 가지세요.” 라고 하니
“감사합니다.”라고만 말하면서도 웃지 않던 그 택시기사
오늘 우연히 그 기사의 택시를 또 탔다.
5,000원의 요금을 준 후
100원 짜리 주화 하나를 덤으로 주며
“이 100원으로 하루 종일 행복하세요.”라 하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는다.
나도 씩 웃어주니 그가 손을 흔들며
택시를 몰고 유유히 사라진다.
단돈 100원으로 저처럼 행복할 수 있다면
50억 원을 가진 졸부가 맘만 먹으면
한국인구 5,000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고
전직 쿠데타 군부 출신 대통령을 감옥에 답아 넣어도
내놓지 않던 그들의 훔친 돈 중 6,000억 원만
눈 딱 감고 내놓으면 세계인구 60억을
하루 종일 행복하게 할텐데.
그런데 말이야
택시요금 만큼의 거스름돈을 가지래도 웃지 않던
그 택시기사가 단돈 100원에 웃는 걸 보니
주고받는 돈은 작아야
주는 쪽과 받는 쪽이 다 같이 웃게 되나봐.
택시요금만큼의 거스름돈을 주어도 웃지 않은 그에게
내가 10만원을 주었다면 그가 웃었을까?
“별 웃기는 놈 다 봤네.” 라고 생각했겠지.
내게 없는 돈이지만 어찌 어찌 마련해
1억 원을 주면 그가 행복했을까?
그걸로 집을 사러 갔을까?
아마 그날은 하던 일을 집어치우고
술 한 잔 하고 나면 허파에바람이 들어
또 다른 행운을 찾아 이떤 이성을 꼬드겨
강원도 고한도 아닌
마카오나 라스베이거스로 갔겠지
호텔방을 잡고 또 한잔하고 나서
술김에 블랙잭을 하거나
슬롯머신 손잡이를 힘껏 당기었겠지.
결국 따지고 보면
사람을 하루 동안 행복하게 만드는 돈은
단돈 100원임에 틀림없다.
그것도 택시기사에게 주는 일인 것 같다.
그가 받을 때의 행복한 웃음을 승객에게 웃어주면
그 승객은 그의 친구에게 그의 친구는 그의 이웃에게
그렇게 그 택시기사의 웃음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것이고
너도나도 감연된 행복 바이라스
세상이 모두 행복할 것이다.
하루 세상을 행복하게 해주는 건 단돈 100원이니
1년에 36,500원이면 충분하고
내가 넉넉잡아 100년을 더 산다하더라도
3,650,000원만 있으면 세상이 모두
내 평생 세상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까짓 얼마 안 되는 돈이니
어서 벌어 쾌히 적선하여야겠다.
그러나 매일 택시를 탈 요금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돈이라 내 능력에 비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는구나.
그래서 혹시나 계산착오가 아닌가?
다시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역시나 계산착오다.
내 평생 세상을 영원히 기쁘게 하기에는
3,650,000원이 드는 게 아니고
일인당 100원이 더는 것도 아니고
매일 택시 타는 일은 더더욱 아니고
단 한번 택시를 타고 요금을 주고 난 후
단돈 100원을 주면 충분하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미 그 기사에게 지불했으니
앞으로는 더 이상 한 푼도 더 들지 않겠네.
그 택시기사는 지금쯤 한 승객에게 웃어줄 것이고
그 승객은 길가며 마주치는 사람에게 웃어줄 것이고
그 길 가는 사람은 또 옷깃을 스치는 또 다른 사람에게 웃어줄 것이고
그들 각각이 집에 가서 그 이웃에게 웃어 줄 것이고
그 이웃은 그 자신의 이숭에 웃어줄 것이고
너무 웃으면 잠자면서도 웃는다는데
웃다가 잠든 그를 본 그의 서쪽 이웃이 따라 웃을 것이고
그 서쪽 이웃이 잠들기 전 그 자신의 서쪽 이웃이 웃을 것이다.
내가 웃긴 택시기사님의 웃음은
그렇게 둥근 지구를 도는 태양을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매일 매일 지구를 돌고 돌 것이다.
웃는 바이러스를 아들딸들에게 감염시키고
또 그 아들딸은 자신의 아들딸에게 감염시켜
세세대대로 영원히 웃음 띠가 되어 지구를 돌고 돌 것이다.
그 택시기사가 평생 웃다가 죽는 날
그의 웃다 죽은 모습의 영정을 보고
조문객도 등달아 웃을 것이고
자꾸 웃다보면 죽은 후 영혼까지 웃는다는데
그의 웃는 영혼을 보고 천국에서도
덩달아 모두 웃게 될 것이고
미친 녀석이 와서 천국이 어수선하다 느낀
하느님이 그를 지옥으로 쫓아버리겠지
웃는 버릇 개 못주는지라
지옥에 가서도 그가 웃으니
늘 얼굴 찌푸린 지옥 영혼들이 모두 웃겠구나.
지옥이 온통 웃음바다가 되겠구나.
지옥과 사바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로
늘 수심에 차 있던 천국의 하느님도
영문은 모르면서도 그만
하~하~하~하~하~
입을 다물지 못하고
영원히 웃을 것이다.
그러자
극락의 부처도 하~하~
지옥의 악마도 하~하~
사바세계 중생도 하~하~
부처와 하느님조차도 해내지 못했던
이 웃는 일을 택시기사가 해 낼 것이다
아니 내 단돈 100원이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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