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야간열차
-성수대교 무너지던 날-
부산행 야간 새마을호를 탔다.
기차가 철교를 지나는 요란한 소리에
그만 잠이 깼다. 옆자리의 아가씨는 벌써
내 쪽으로 고개를 젖히고 곤히 잠들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을 내다보는 체하며
힐끔 그녀를 훔쳐보았다.
“참 예쁘기도 해라.”
곳곳에 금간 철길이 많아
늘 불안한 우리네 여정(旅程)이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창 밖을 보는 체하며
간간이 곁눈질하여 보면 짜릿짜릿
참 즐거움도 많은 세상이지.
특히 남이 잠들 때를 노려
은밀한 치부를 상상하면 더욱 그렇지.
그 때 요란한 바퀴소리에 덜컥 겁이 났다.
서 있는 것이라면 아무거나
시도 때도 없이 무너지는 이 땅에선
오늘 살아 있는 사람 치고
그 동안 훔쳐보며 재미보던 아름다운 것들을
여차하면 방충(防衝) 삼아 떨어진 후
피투성이 된 팔다리를 분질러 내어 휘두르며
무너진 시멘트 더미와 엉킨 철근을 헤치고
살아 나오지 않은 자가 있던가!
유일한 기적의 생존자로 신문에 대서특필되면
텔레비전이랑 라디오에서 인터뷰하고
제법 명사가 되어 돈도 짭짤히 벌곤 했지.
그럼 나도?
아무렴
이 교각이 무너지면
저 아가씨를 방충 삼아 떨어져야지.
피투성이가 될 그녀의 팔다리 분질러서
창문을 부수고 나가면 그만이지 뭐.
인터뷰할 때 저 아가씨를 애도하는 눈물을 흘려야지.
아마 사랑이 넘치는 남자라고
돈 많은 아가씨들의 청혼이 쇄도할거야.
기차는 이미 철길을 벗어난 듯하다.
예쁜 코를 훔쳐보며
그녀의 은밀한 치부를 상상한다.
그녀가 곤히 잠들은 채
빙그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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