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시(cynical poetry)

영혼부활 프로젝트

매미가 웃는 까닭 2015. 8. 30. 12:33

 

 

영혼부활 프로젝트

 

(1)

 

내 일찍이 1945년 8월 15일에

2000년대가 되면 한반도는

사기, 납치, 강도, 횡령, 살인, 자살 및 부패가 판치는

타락한 지옥 중에서도 상지옥이 되리라 예측하였다.

그래서 한때 내노라 하며 이 세상을 주름잡다가

지금은 허공에 외로이 떠다니는 영혼들을

한창 팔팔하던 때의 모습 그대로 부활시켜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려는 연구소를 설립했다.

 

(2)

 

우매한 보통사람들을 사람답게 하기에는

성인들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고

그들의 수가 많을수록 상승효과가 있을 것 같아

야심에 찬 첫 영혼부활의 프로젝트로

4대 성인들을 한꺼번에 부활시켰다.

기대했던 대로 그들은 부활되자마자

너희는 불효이고 죄인이고 자신을 모르고

헛된 것에 매달리는 불쌍한 중생이라느니

하느님의 길잃은 양이라느니 호통을 쳐댔다.

보통사람들은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매었다.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가 되려나 싶었다,

그게 아니란 것을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성인의 줄을 설까 우왕좌왕했던 보통 사람들이

저마다 줄을 정하더니 서 있던 줄에 따라

중이니 목사니 도덕군자니 철학자니 하는

호칭과 색깔을 이마, 가슴과 어깨에  훈장처럼 달고

성인군자들의 말을 흉내 내고 이름을 팔아

돈! 돈! 돈! 여자! 여자! 여자! 하였다.

보통사람들의 돈을 우려내고 여자를 욕보이고

다른 줄에 선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어

삿대질과 욕설과 발길질을 해대었다.

같은 줄에 선 자들끼리도 비난과 삿대질과

휘두르는 각목 소리와 설교대를 두드리고

빽빽 지르는 소리가 난무하였다.

성인 때문에 대한민국은 말세 중의 말세가 되었다.

 

(3)

 

우매한 보통사람들을 통솔하기에는 오히려

성인보다는 전쟁영웅들과 독재자들이 더 나을 것 같아

히틀러니 무쏠리니니 스탈린이니 하는 영혼들에게

이씨, 김씨, 박씨, 전씨, 노씨라는 성을 붙여 부활시켰다.

부활되자마자 기대한 대로 무리들의 대장이 되고

보통 사람들을 매료시켜 잘 통솔하였다.

그러나 옛 버릇은 죽어도 개 못 주는가

매료된 보통사람들은 총칼을 휘둘러 거리를 누비었다.

과학자는 체루탄을 만들고

심리학자는 전쟁과 독재를 정당화하고

문학가는 군인정치와 독재를 위한 송가를 읊조렸다.

말이 총칼보다 더 강하다고 배워온 보통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만은 총칼이 말보다도

훨씬 더 강한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4)

 

그 후에도 여러 부류의 내노라 하는

영웅호걸들을 더 부활시켜 보았다.

그러나 부활자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세상은 점점 더 아비규환이 될 뿐

부활과 다시 영혼으로 환원시키기를 반복하다가

최후 프로젝트로 준비된 성군들을 부활시켰다.

보통사람들은 배부르게 먹게 되고

거리에는 흥겹고 감미로운 노래가 울려 퍼지고

건물마다 안팎이 그림과 조각들로 가득했다.

아하, 이게 태평세대인가!

그러나 배고픈 자와 배부른 자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있게 마련이고

보통사람들이란 배가 고파도 불러도 문제라

배고프면 배부른 자를 배부르다는 이유로 납치하고

배부르면 음악, 그림과 조각 등을 사서

즐기는 것은 시시하다며

영계 보신탕집에 북적거렸다.

 

(5)

 

내노라고 하는 자의 부활만으로는 한반도를

좋은 땅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은 우매한 보통사람들 스스로가 꾸려가야

미흡하지만 살만하리라는 보고서를 쓴다.

저희끼리 다투다가 칼로 즉든 핵으로 죽든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이라

부활된 영웅들을 모두 영혼으로 환원시키고

2007년 11월 어느 날 내 실험실을 폐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