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시집)제4부큐피드화살 을쏘다

녹차를 마시며

매미가 웃는 까닭 2016. 1. 5. 00:05

 

 

녹차를 마시며

 

석양이 비추는 창가에

탁자를 갖다놓고 마주앉아

그녀와 녹차를 마시고 싶다.

 

내가 그녀에게 뜨거운 사랑을 붓듯

뜨거운 물을 두 잔에 부으니

언제 왔는지 맞은편에 앉은 그녀가

내 마음에 자기 영혼을 담그고는

녹차봉지를 두 잔에 살짝 담근다.

내 사랑에 그녀의 순결이 풀리어 가고

녹차 향이 풀리어가고

그녀의 미소가 향긋하게 풍긴다.

 

녹차를 마시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치자

석양이 물든 건지 부끄러움이 물든 건지

그녀의 얼굴이 불그스레하고

까만 눈동자가 샛별처럼 아름답다.

“사랑해” 하고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그녀의 잔에

녹차봉지가 그대로 잠겨 있고

그녀가 간데온데없다.

 

사랑이란 녹차를 마시듯

아무런 말없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입맛을 다시며 느껴야 한다.

설탕처럼 달콤한 사랑을 즐기려고

사랑한다는 말을 섣불리 하는 순간

녹차가 너무 많이 녹은 그녀의 잔처럼

그녀의 맘을 씁쓸하게 만들고

다 마신 나의 빈 잔에는

다 우러나서 아무런 맛이 없는

칙칙한 녹차 부스러기 몇 개만 가라앉고

사랑을 다 쏟은 나의 마음에는

까만 기억 부스러기 몇 개만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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