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시집)제4부큐피드화살 을쏘다

계곡에서

매미가 웃는 까닭 2016. 1. 5. 00:01

 

 

계곡에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며

물은 계곡의 굴곡을 더듬는다.

마중 나온 돌이 감지되자 온몸을 내던져

부둥켜안고 산산이 부서진다.

흩어진 하얀 살점들을 추슬러

한 치 높이로 일어섰다가

한숨처럼 다시 자지러지면서도

즐거운 듯 웃으며 이별노래를 부른다.

계곡 특유의 오랜 외로움에 굳어버린

돌의 몸에 스며들 수 있는 것은

울음소리가 아니라 웃음노래란 것을

물은 진작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서진 살점을 대충 추스른 물은

잘 있어라 잘 있어라 말하곤

돌의 등을 가벼이 두드리고

딱딱한 돌의 몸에도 노래가 스며든다.

스며든 노래가 푸른 피로 돌기 시작하고

피가 마음을 녹여 텅 빈 가슴에

웃음이 가득 차오르면서

어렴풋한 울음처럼 들린다.

웃음이 울음이란 것을 깨닫고

돌이 마침내 울기 시작한다.

 

한 발자국도 움직여본 적 없던 돌이

고개를 돌려 저 아래를 바라본다.

계곡 모퉁이를 돌아 막 사라지며

울음과 웃음이 뒤엉킨 하얀 살점들을

손수건처럼 흔들며 갈 길을 재촉하는

물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순간의 만남이나마 다시 만날 그날까지

물의 살점이 남긴 노래를 되새김질하며

이 자리에서 적셔진 모습 이대로 서서

천년만년 기다리겠나이다. 돌은

웃음 반 눈물 반으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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