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시집) 제3부 어머님이여!

안개(1)

매미가 웃는 까닭 2015. 12. 25. 09:53

 

 

  안개(1)

 

색깔을 허공으로 다 뿌려버리고

형체를 스스로 허물어뜨리면

모든 부위들이 제각각 자유롭다.

 

다가오는 것으로부터는 물러서고

멀어지는 것에게는 다가가면서

무엇에도 정을 두지 않고

훨훨 가벼이 떠다닌다.

 

골짜기와 산등성을 훨훨 날아다니다가

누구인가 사랑하고 싶을 때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면서

아무나 가슴속에 품을 수 있고

품은 것을 마음 편히 풀어주면서

산하의 풍만한 몸매를 어루만진다.

 

산 좋고 물 맑은 강기슭을

잠시 머물다 가고 싶다.

머무는 곳에선 뿌리가 내리게 마련이고

뿌리가 내리면 정이 들고

정이 들면 서로 엉키게 된다.

엉킨 것들은 휘지 못하여

거센 바람이라도 불면

상처받은 부위에서 그만 뚝 부러진다.

부러진 부위에서 검붉은 아픔이 흘러나와

상처 위에 누덕누덕 쌓인다.

그렇게 대충 상처를 눈가림하듯 형체가 갖추어지면

다시 색깔로 울긋불긋 치장하게 되어

색깔과 형체에 따라

품을 것을 골라 품기 시작하고

품은 것들과 상처를 주고받는다.

 

형체를 완전히 버리지 않는 한

제 각각인 부위들이 어울려 쏘다니게 되고

색깔을 버리지 않는 한

주고받은 상처를 아름답게 눈가림하게 되어

새벽만 되면 아픔으로 도지곤 한다.


이젠 뭐를 품다가가 생긴 아픔

그 아픔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아침햇살에 아픈 붓기가 가라앉으면

한 줄기 수증기로 승화하련다.

품은 것을 그 자리 그 모습대로 내려놓고

색깔과 형체가 없는 곳으로

홀연히 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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