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시집) 제1부 나는 학이다.

경춘선 기차를 타고

매미가 웃는 까닭 2015. 12. 12. 20:26

 

 

 

경춘선 기차를 타고

 

 

이른 아침 서울에서 춘천행 기차를 탑니다.

차창 밖을 바라보니 사람, 소, 나무, 꽃 모두가

내가 거쳐 온 길을 거슬러 서울로 내닫습니다.

서울에서는 금덩이가 된다는 풍문 탓인지

돌과 바위조차도 서울로 내닫습니다.

나만이 외로이 서울에서 점점 멀어감에 겁이 납니다.

춘천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서울행 기차를 탑니다.

차창 밖을 바라보니 사람, 소, 나무, 꽃 모두가

내 길을 거슬러 춘천으로 되돌아갑니다.

아뿔싸, 춘천에 그만 내 그림자를 두고 왔습니다.

밤에도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다니지 않으면

그림자 없는 귀신이 된다는 서울에서

나만이 귀신이 될까 두려워

어둠 속에 뜬눈으로 지센 꼭두새벽

그림자를 찾으러 다시 춘천행 기차를 탑니다.

종일 헤매어도 흐린 춘천 어디에도 그림자는 없고

거기에서조차 그림자 없는 귀신이 될까 두렵고

내 그림자를 잃은 곳은 서울인지도 모르겠기에

그 날 늦은 밤 서울행 기차를 다시 탑니다.

차창 밖에서는 어둠 속에서 나를 거슬러 가는

발자국 소리가 요란합니다.

그림자가 없는 것들은 창밖에만 있고

그림자가 있는 것들만 창안에 있는데도

창안에선 나만 왜 그림자가 없을까?

왜 창 밖에서는 모두 나를 거슬러 가고

창안에서는 모두 나와 동행하는 것일까?

첨부터 없을지도 모를 내 그림자를 찾으려

그림자 없는 사람들과 서울과 춘천 사이를

늘 이렇게 서울과 춘천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어쩌면 내가 거슬러 가지 못하는 운명인가 봅니다.

 

 

* 종전의 경춘선의 기차와 선로는 지금 없어지고 전철노선으로 바뀌었다.

  경춘선의 기억을 가진 분은 그 기차를 타는 기분으로 읽으시고

  전철만 아는 분은 전철을 타는 기분으로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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