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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구속과 증거인멸 우려

매미가 웃는 까닭 2017. 3. 30. 10:59


박근혜의 구속과 증거인멸 우려 -- 그럴 우려가 있다.



<1> 실질 심사 전


검찰이 박근혜의 구속영장 청구 이유로 증거인멸을 적시한 것을 두고 그녀의 변호사나 그녀를 지지하는 자들이 이를 반대하고 비난하는 주된 이유로는 두 가지가 있다.


 1. 더 이상 증거인멸이 있을 수 없다.

 2. 전직 대통령을 구태어 구속할 필요가 없다.




(1) 전직 대통령을 구태어 구속할 필요가 없다.


먼저 2에 대해 말해보자. 한 정치인은 박근혜의 구속을 궁에서 쫒겨난 여인에 사약 내리는 것, 다른 정치인은 국격으로 보아 그럴 필요가 넚는 것으로 말한다. 궁에서 쫒겨난 것은 논평할 가치도 없다. 그러나 국격이란 말에는 긴 논평이 필요하다. 국격이란 용어는 많이들 사용했고 내가 우연히 시청한 JTBC(?)의 토론에서 최진녕 변호사가 그 토론에 배석자로 참석한 한 대학생의 질의에서 아주 많이 사용했다. 국격을 위해 박근혜를 구속하지 않아야 했다고 하는 그 변호사가  주장에 대해 그 학생질의자가 국격이 무언지 그리고 그녀늬 구속이 왜 국격을 해치는지에 대한 추가 질문을 하지 않은 것(추가질문을 하긴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런 질문은 아님)을 보면  그러한 토론이 한국식 토론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동안 이곳 저곳에서 늘 보아 오던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위와 같이 그 변호사의 응답과 그 학생의 추가질의의 결여가 전형적 공자식 토론에 속한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그 변호사의 주장을 반박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토론질의에 대해 질적인 면을 먼저 좀  길게 논하고자 한다. 내가 중간에 듣기 시작해 어디선가 국격이 뭔지 서로 말하지 않고 그녀의 구속이 어떤 국격을 왜 해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토론했는지는 모른다.  혹시라도 그런 토론이 있었으면 여기서 논한 것을 사과한다. 이런 사과를 내세우고 그 토론과 질문위 질을 계속하자. 그러나 그 질의응답을 들어보니 그런 토론은 없었다고 추정된다. 그 변호사의 말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런 느낌을 주는 응답으로서 뭔가 몇 % 부족함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나라 토론을 보면 그런 토론과정이 없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의 토론은 그냥 국격이란 게 있고 그게 정의되고 있고 그걸 해치면 나라의 국격을 해친다는 가정 하에서 질문을 하고 답도 했다. 그런 가정의 어느 일부를 부정하면 최변호사의 말은 뭔가 허황된 주장에 지나지 않는데, 그 학생 질문자는 그의 응답에 반박하지도 않고 그 반박에 대한 설명할 줄을 몰랐다. 앞에서 말했듯, 그들의 질의응답의 방식은 전형적인 공자식 대충주의적인 것이었다. 왜 그런가? 논어를 읽어 보면 공자는 인(仁)을 말하면서도 인의 본질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하지 않고(아니 할 줄 몰라 못하고) 대충적으로 인을 논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논어 학이편 3번째인가 하는 글에서 이러면 인이 많고 저러면 없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그런 말은 인이 드러난 현상에 관한 것이지 인의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다. 공자의 내노라 하는 제자들도 공자의 그런 말에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게 전형적 공자식 문답이다. 제자들이 더 이상 묻지 않은 것은 그들이 공자도 그 제자들도 공자가 인의 본질과 현상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공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게 불경이라서인지도 모르겠다. 


상기 두 이유 중 어느 것이든, 학문에 대한 대충주의적 태도는 공자의 사후 2천 하고도 수백년이나 지나는 동안(지금도 진행 중) 이어온 동양의 학문적 접근법이 되었고 토론방식이 되었다. 이런 방식을 좋게 말하여 소위 총제적 사고(holistic thinking)이라 한다. 나쁘게 말하면 대충주위라 할 수 있다. 노자도 이런 방식을 채택했고(그의 학문에서는 도(道)가 기본인데 도의 본질이 도덕경에 존려 논의 안 됨), 우리나라 이황과 이익의 학문에서 그 중심은 이(理)와 기(氣)라는 개념인데 이에도 그런 태도였다. 한국 유학자의  이 두 거두는 이가 뭔지 기가 뭔지, 이들의 본질에 대해 서양의 학문방법으로 사용한 분석적 사고(anlytic thinking)으로 논한 적이 없다. 나아가 한의학에서도 뭐를 먹으면 몸에 좋다는 식이지 무슨 이유로 그런지는  말하지 않는 의약학서가 바로 허준의 동의보감이다. 서양의학처럼 무슨 성분이 있던 무슨 작용으로 그리된다는 말이 없다. 그래서 지금의 한의학은 허준의 수준에서 그다지 진전이 없다. 서양의학의 접근법이 아니었으면 그나마  이룬 진척마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대충주의적 방식이 동양학문이 가진 민낯이고 한계이다.


오늘날에도 그런 한계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한의사가 TV에 나와 기껏해야 이 음식은 차서 또는 따뜻해서 몸에 이렇다 저렇다는 식이다. 차다 따듯하다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게 의학 용어로 적합한지도 모르겠다. 또한 최변호사와 그 학생 사이의 질의응답에서 보듯이, 그런 대충적 토론이 우리나라 토론의 전형이다. 그 토론의 진행자에서도 이런 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국격이 뭐며 그녀의 구속이 왜 국격을 어떻게 해치는지를 그리고 그 왜와 어떻게로 해친 국격이 지킬만한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하고 토론을 진행해야 했다. 다른 토론 주제로 다른 방속을 보아도 이런 틀을 별로 벗어나지 못한다. 학자이든, 전문가이든, 일반이든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수준으로 우리나라 교육이 되어 왔고 지금도 하고 그렇게 교육을 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모르는 게 교육자이고 교육당국이라 보면 된다. 그래서 우리 교육이 나아갈 길이 멀고 멀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길을 모르니 아무리 가도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전공한 분야에서도 이런 게 아주 심하다. 토론이나 교재가 그렇고 연구논문이 그렇다. 이런 것을 지적하면 왜 그런 것으로 창피를 주느냐 하고 나중에 뒤에서 다른 사람에게질문자를 모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위에서 말한 토론에서 그 질문자는 학생이니까 배우는 과정에 있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변호사조차도 그러하다는 것은 매우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도 그 정도라면 곤란하다고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대학생이면 그 정도는 파고들  능력은 이미 개발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니 그 학생은 지금까지 배우기를 잘한 것이 아니다. 그게 오늘날 우리나라의 전반적 현상이니 그 학생이 자기의 문제점으 알리 없고 그걸 깨우칠 교육자도 없을 것이다. 일반인에게도 그런 예를 볼 수 있다. 거리에서 시비라도 붙으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논리나 사실보다 감정과 물리력을 앞에우는 사회이라는 말이다.


이제 국격을 말해보자. 국격이란 국가의 체면, 다른 말하면 국가의 이미지일 것이다. 이게 정의라 하자. 더 좋은 정으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 논의를 위해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이처럼 정의는 별 것 아니라 위의 변호사와 학생도 이 정도는 서로 묵시적 합의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질의응답의 문제는 국격의 정의 문제보다는 그녀의 구속이 왜 국격의 훼손인지를 갑론을박하는 게 더 중요하다. 내 판단에는 그들이 말하는 국격문제는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아무리 잘못해도 구속하면 국가가 창피하다고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구속이 왜 창피이냐? 그걸 그 학생은 따졌어야 했다. 그리고 잘못하면 그게 대통령이든 아면 그 대통령이 여아이든 수사를 해야 하고 구속하는 게 맞다면  구속해야 한다. 그녀가 대통령이라서 그녀의 구속이 국격을 떨어뜨릴 정도로 세계에 대해 우리나라에 창피 게 아니라(대통령직의 위엄을 훼손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참으로 발전된 민주주의 나라라는 것을 보이는 일이 아닌가? 오히려 그게 국격을 높이는 일이지 않는가? 


대통령의 구속이 국격을 높이는 예를 들자. 몇 년 전에 튀니지에서 시작한 쟈스민 혁명인으로 튀니지 대통령은 물론 이웃인 이집트는 장기집권 독재자 무라라크를 구속하였다. 세계 어느 나라도 그게 이들 나라의 국격을 떨어뜨렸다고 보는가? 이 글을 읽는 독자도 그렇게 보는가? 최변호사와 그 학생 그리고 그 사회지 나아가 모든 시청자 중 어느 하나 그렇게 보는가? 그 대신 그들의 구속이 그 나라들의 국격을 높였다고 보지 않는가?  아랍에도더 이상  독재자의 천국이 아니란 세계만방에 보였으니 말이다. 오히려 그런 류의 국격을 높일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권령에 연연한 시리아 장기집권 독재자(2대 세습자이던가?)는 내전이 일어났고 그래서 국격훼손 정도가 아나리 내전이 일어나고 강대국들이 개입하여 지금 나라를 망치고 있지 않는가? 박근혜 지지자들 중 일부가 계엄령을 선포하라고 쓴 피켓도 보였는데 그게 국격을 높이는 건가? 그런 피켓 드는 일에 조금이나마 정당화하여  힘을 보태는 게 최변호사의 국격지키기인지도 모른다. 그 동안 하던 행태로 보아 박정희 시대라면 박근혜는 할 수만 있었다면 그 지지자들의 피캣대로 하고도 남을  국격지키기의 여왕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보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격은 올라가 있다. 최변호사는 그 가 지켰으면 바랐던 국격은 대통령이란 개인이나 대통령직이란 직책에 무게를 둔 것이지 나라에 무게를 둔 게 아니라고 본다.


요컨대, 박근혜의 구속은 세계에 대해 우리의 국격을 높이는 일, 즉 나라의 이미지 개선뿐 아니라 우리 후세에 역사적 교훈 남기고 후세에 중대한 교육을 하는 참된 길이다. 앞의 질의응답은에서 국격지키기라는 것은  큰 것을 못보고 대의를 모르고 작은 것을 보고 소의만 보는 관점의 발로다. 그렇다고 국가를높이기 위해 개인의 인격을  희생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잘못한 그녀 개인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은 그녀의 인격을 높이는 것도 아니다. 지은 죄는 처벌을 받고 그 과정에서 속죄하고 거듭나는 게 그녀의 인격을 높이는 길이다. 잘못한 전직 대통령이라서 구속하지 않아야 국격을 지키는 게 아니라 전직 대통령이든 죄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국격이 지켜진다. 그게 형평성 관점에도 맞고 정의의 관점에서도 맞다.  잘못해 쫒겨난 대통령이라서 그 쫒겨남으로써 충분하다는 논리는 비논리이다. 국격 운운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비논리는 어디까지나 비논리다.



 (2) 더 이상 증거인멸이 발생할 수 없다.


이제 1은 설명을 하고자 한다. 이는 색다른 이야기로 시작하자. 내가 기업법인가 하는 것을 미국에서 수강한 적이 있다. 교수는 어떤 문구(지금은 기억 안 남)는 전혀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없애지 못하고 반드시 쓴다. 미국 법조계에서도 그 불필요성을 인지하지만 제거하지 못한다. 그 교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문구를 없애면 나중에 무슨 잘못된 상황이 발생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위의 말은 불확실성(uncertainty)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쉬운 일상용어로 바꾼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바꾸지 않는데 그 이유는 위와 같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바꾸면 무슨 문제가 발생하지 아무도 모른다. 이를 박근혜의 구속 여부에 적용하면, 증거인멸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보아 그걸 막거나 최대한 줄여야 한다. 불확실성의 대처에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여기서는 구속이 그 중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증거가 있을지 모르고 있다면 그 증거의 인멸을 은밀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건데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누가 확신하는가? 그런 가능성이 있을 때 구속하지 않는 방법으로 그럴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을 누가 장담하고 보장까지 하겠는가?  지금까지도 증거인멸을 위해 청와대의 압수수색을 방해하는 등 수사에 전혀 비협조적이었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따라서 지금도 다 인멸하지 못한 증거가 있을 수 있고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 예측된다. 그녀의 구속이 겉보기에는 괘씸죄 같지만 사실은 불확실성을 제거 목적으로 검찰이 구속을 청구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보는 게 맞다. 지금과 같이 있는 모든 증거를 보고도 자기의 잘못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증거인멸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 가능성을 제거하는 최선의 방법을 검찰과 법원이 선택했다.


나아가 언론이나 친박들이 놓친 것으로 구속하는 게 맞을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노무현의 사건에서 보듯, 박근혜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 외향적 성격의 노무현도 그런 선택을 했는데 내성적 성격의 그녀가 그렇게 할 가능성이 낮다고 말할 수 없다.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때는 검찰에 비난이 쏟아질  게 아닌가? 왜 구속하지 않았느냐고. 그 공을 법원에 떠넘기는 검찰의 구속영장청구는 잘 한 일이다. 이 공을 넘겨받은 법원도 위에서 지적한 증거인멸과 박근혜의 극단적 선택을 방지하도록 하는 초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유에 속한다. 검찰이 이런 극단적 선택 가능성을 청구사유로 못할 뿐 이런 것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한다. 후일담에서 이런 이야기가 사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한다.


나아가 구속하지 않으면 그녀의 지지자들은 "거봐라 그녀는 죄가 없다."고 떠들 수 있다. 이제까지의 검찰이나 특검의 발표를 보면 그녀는 처벌 받을  죄를 지었다. 예컨대, 2심에서 무죄라고 대법원에서 마치 유죄이 듯 대선후보로 나서고 말하는 목소리도 뭐랄까 하이톤의 모드로 변한 홍준표의 같이 변했다. 그런데 그녀가 불구속 되면 그녀와 그녀의 지지자들이 이런 모드로 무죄까지 주장하면서 들고 일어날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촛불과 태극기의 싸움으로 엉망으로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건 도로 박정희 시대로 갈 것이다. 이것도 구속영장 청구의 숨은 이야기일지조 모른다. 이건 정치적 이우만은 아니다. 올바른 법원의 판단을 위한 추가 증거수집의 가능성을 포함해 가능한 한 수사자체를 방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점은 정치적인 이유로 들려 구속영장청구의 이유로 쓰지 못할 뿐이리라.


추가로 한 가지 뇌물죄 부정에 대해 한 마디 해보자, 박근혜가 내 계좌를 보면 한 푼도 받은 게 없지 않느냐는 취지로 항변한다고 하는구나. 이런 발언은 그녀의 지능을 의심스럽게 하는 항변이다. 도대체 증거가 되기에 아주 뻔한 통장에 입금시키는 방식으로 뇌물을 받는 사람이 있을까? 보이스피싱도 차명계좌를 사용하는데 말이다. 그럼 차명계좌도 뒤져봐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차명계좌를 찾아볼 필요가 없다. 삼성동 집도 사준 게 최순실 가족이 있지 않는가? 자기 가족보다 더 믿는 최순실보다 더 나은 차명인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특검에서 경제공동체이니 하는 말이 나온 게 아닌가. 박근혜가 경제개념이 없고 모든 것을 최순실을 통해 했다면 경제공동체가 맞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좀 지능이 있다면 경제공동체를  부정하는 논지를 펴고 가능하면 그걸 입증할 증거를 제출해야지. 검찰이 그에 대한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데 그 참고 넘치는 증거가 잘못된 것이라는 증거를 내놓는 방법으로 효과적으로 반박해야지. 문제는 있는 것은 증명 가능한데 없는 것은 증명불가능이란 한게가 박근혜 측에 있다는 게 그녀의 문제점이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박근혜의 말을 들으면 내가 마치 30년 전의 언어세계에 살고 있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어거지로 엮었다'에서의 어거지라는 말은 아주 오래 전에 들어본 느낌이 든다. "손톱만큼도 없다.'라고 하는데 이런 표현도 요새 잘 쓰지 않는 언어가 아닌가 한다. 그녀가 소통 없이 살다보니 용어도 요새 것을 습득할 기회가 적지 않았나 생각한다. 언어 감각이 부족에서 오는 나 자신의 문제이기를 바란다. 또 하나 신년 기자간담회인가 하는 데서 그녀가 흰 옷을 입고 구구절절이 자기 변명하던 모습이 초라한 아낙네로 보이던데 그게 나만의 느낌일까? 구구절절한 변명 탓인지 흰 옷 입은 그녀가 초라해 보였다.  키가 큰 젊은 기자들에게 둘러쌓인 탓인지 흰 온은 그녀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 같았다. 그 보다는 붉거나 곤색 하다 못해 흑과 같이 색깔이 진하거나 아주 어둔 옷이 더 잘 어울린다. 진하여 색깔의 옷은 축소의 느낌이지만, 구속청구 전 검찰에 가거나 법원에 출두하려 갈 때 보듯, 그런 색깔의 옷이 그녀에게는 더 잘 어울린다. 그녀도 자기의 지난 업무수행에 그에게 어울리는 어둔 색깔이 있었고 검은 점까지 있었음을 인정했다면, 그녀는 지금도 청와대에서 이 색깔 저 색깔의 옷 입기를 계속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머지 않아 수의라는 한 가지 색깔의 옷만 입을 것 같다. 구치소 옷은 연두색이라는데 그게 그냐의 위상으로나 신체에나 어울리기 힘들지조 모른다. 그녀가 색깔 옷을 자기 의지로 정하지 못하는 운명에 슬픔을 느끼 듯,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오는 슬픔과 우리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그녀에 대한 분노가 합쳐 또 다른 어둔 역사의 이 순간에 대해 지금 우리나라 사람 모두를 슬프게도 하고 있다. 


먼 훗날 이번 슬픔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환골탈퇴하여 오히려 잘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될지 의심스럽다. 친박에서 친노(친문)로 가는 느낌이란 말이다. 계파 없는 나라가 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집권이 높은 예비후보자가 당수까지 하겠다는 보도가 있으니.... 다시 당론이 어떻고 국회의원 선거에 공천에서 계파수장의 의중이 저떻고 할 것이다..... 그런 것으로 박근혜가 탄생했고 자멸하다시피 했는데도 또....아아아아..,, 어찌 그런 발상이... 그런 발상이 부메랑이 되기를 바란다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보여준 엄연한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또 그런 일이 또 발생할지도 모른다. 모든 증거조차 부인만 하다가 돌아온 부메랑 돌아온 박근혜가의 아둔함함과 철판 깔은 얼굴이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돌아와 지금과 같은 촛불과 태극기를 마구 흔들고 나아가 무궁화꽃마저 흔들어 대지 않을까? 내 생각이 잘못일가? 시대가 잘못 가고 있는 걸가? 아나 모르겠다. 내가 agnostic(불가지론자)이고 nihilist(허무주의자)인가?



<2> 실질 심사 후


인양된 세월호가 슬픔을 가득 싣고 목포로 향하기 몇  시간 전, 미결수로 구속되는 박근혜를 태운 차가 서울구치소로 향하였다. 세울호가 목포에 도착하기 훨씬 앞서, 그 배보다 늦게 출발한 그녀가 훨씬 앞서 서울구치소에 도착하였다. 세월호가 침몰한 것보다 늦게 시작한 그녀의 탄핵이 먼저 인용 되듯이, 먼저 침몰한 그배가 그녀가 내려가는 것보다 늦게 인양되었듯이 말이다. 그만큼 영혼의 무게는 산 자의 오만하고 거짓스럽고 우리석은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이다. 갈 길도 멀고 험한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혼이 억울하고 슬프고 고통스런 무게로 구천에 아직도 떠돌고 극락이든 천당이든 서서히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먼저 침몰한 게 늦게 떠오르고 목포에 도착시간도 더 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수습자를 빨리 수습해 그것만이라도 박근혜의 유죄 판결보다 앞섰으면 한다. 그러나 그들 가족과 그들 지인들이 느끼는 슬픔은 그들은 물론 그 후대까지 후유증을 남긴다. 부모와 어린 두 형제가 타고 가다 구명조끼 입은 막내 아들만 살아난 경우가 있다. 그 애가 살아나갈 창창한 길이 험할 것이고 고아를 차별하는 우리나라의 갑질과 왕따 문화는 그 애를 일생동안 슬프게 할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무기징역을 받아도 길어야 20년이면 나올 박근혜일 것이다. 어쩌면 차기 대통령이 국민화합이라는 명분을 들고나와 그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자발적 이유로, 또는 그녀의 극렬 지지자들의 극성스런 요구에 여론까지 우호적 기미가 보이면 정치적 부담을 줄이고자 그녀를 특사로 내보낼지 모른다. 정치인이란 그런 것이고 여론이란 게 그런 것이니까. 그처럼 여론과 정치라는 묘한 조합으로 산 자는  다시 빛을 볼 수 있겠지만, 죽은 자는 영원히 빛을 못볼지도 모른다. 산자라 하지만 위에 설명한 아이는 고아가 되어 차별로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자가 되어 빛을 잘 볼 수 기회조차 없을지 모른다. 


세월호와 박근혜 사이의 명멸에 대한 묘한 대조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중 세월호에 탔던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이 속아 처절하게 죽어가던 절망의 모습을 상상하면 우리를 너무나 슬프고도 슬프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산 자인 박근혜는 그 살았어도 산 게 아니라 그녀가 우리 역사의 Nemesis(니메시스라 읽음. 어떤 남자를 망치는 그리스 여신) 같은 역할을 하여 우리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아 우리 모두 슬프다.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