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시집)제7부 어른들 뽀뽀동시

봄잔치

매미가 웃는 까닭 2016. 7. 2. 02:13



봄잔치

 

황량한 들판에 바람이 따스한 귓속말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얘들아! 우리 저 들판에서 봄잔치를 벌이자.

너도나도 잔칫상을 꾸밀 색깔을 조금씩 가지고 나와라.

아카시아야, 연초록을 팔다리에 주렁주렁 매달고 저쪽 도랑가에 서있어라.

개나리야, 노랑 한 다발을 손에 쥐고 이쪽 논두렁에 누워있어라.

진달래야, 빨강 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그쪽 언덕 위에 앉아있어라.

잡풀들아, 각자의 취향대로 색깔을 한 줌씩 들고 땅속 여기저기에 숨어 기다려라.

여분의 색깔도 한두 가지씩 준비하고

그 색깔들에 어울리는 향기도 한 모금씩 물고 와야 한다.

 

바람이 촉촉이 뿌리는 봄비를 신호로 하여

일제히 색깔 보따리를 풀어헤쳐 들판에 확확 뿌린다.

알록달록한 깜짝잔치가 벌어지고

각자 입에 물고 온 향기를 푸푸 뿜어댄다.

손님으로 초대된 벌과 나비가 덩실덩실 춤추다가 흥분해

헤헤 웃는 꽃들의 입만 보면 끌어안고 사랑의 입맞춤을 한다.

하늘 높이 춤추던 종달새 한 쌍도 눈이 맞아

몰래 사랑을 나눌 곳을 찾나보다.

아지랑이가 요염한 엉덩이춤을 추는 곳에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빙 둘러서 가려준다.

 

매일 잔칫상을 조금씩 푸짐하게 부풀려간다.

아카시아는 초록색 사이사이에 하얀색을 듬성듬성 뿌리고

개나리와 진달래는 각각 노랑과 빨강 사이사이에 초록색을 뿌린다.

잡풀들은 각자의 뿌린 색깔이 더 진하도록 덧칠을 한다.

알에서 갓 깨어난 아기 종달새가 맨살 날개를 퍼덕인다.

밤마다 누군가가 종달새에 깃털 하나씩을 달아주나 보다.

깃털 달기가 끝날 즈음 바람이 그걸 흔들어 공중에 띄운다.

하늘높이 떠오른 아기 종달새가 신나게 삐삐거린다.

잔치 열기로 들판이 확확 달아오른다.

도랑이 졸졸졸 귓속말 반주를 치자

바람이 보이지 않게 흔들어주는 손짓에 따라

너도나도 머리와 팔다리가 알록달록한 만국기가 되어

전후좌우로 나부끼며 봄 잔치 축가를 들리지 않게 합창한다.

 

누군가가 방금 비가 내린 하늘에

7색 찬란한 무지개를 걸치자 또 다른 누군가가

만국기를 부순 색종이 조각들을 훌훌 뿌린다.

모두들 일어나 일제히 만세를 부르면서

쭉쭉 하늘로 뻗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