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의 세상
(1)
내 일찍이 1945년 8월 15일에
2000년대가 되면 대한미국이
사기와 납치와 강도와 횡령과 살인과 자살이 판치는
타락한 지옥 중에서도 상지옥이 되리라 예측하여
한때 내노라 하며 이 세상을 주름잡다가
지금은 허공에 외로이 떠다니는 영혼들을
한창 팔팔하던 때의 모습 그대로 부활시켜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려는 연구소를 설립했다.
(2)
우매한 보통사람들을 사람답게 하기에는
성인들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고
그들의 수가 많을수록 상승효과가 있을 것 같아
야심에 찬 첫 영혼부활의 프로젝트로
4대 성인들을 한꺼번에 부활시켰다.
기대했던 대로 그들은 부활되자마자
너희는 불효이고 죄인이고 자신을 모르고
헛된 것에 매달리는 불쌍한 중생이라고 호통을 쳐댔다.
보통사람들은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매었다.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가 되려나 싶었다,
그게 아니란 것을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성인의 줄에 설까 우왕좌왕했던 보통 사람들이
저마다 줄을 정하더니 서 있던 줄에 따라
목사니 중이니 도덕군자니 철학자니 하는
호칭과 색깔을 이마, 가슴과 어깨에 훈장처럼 달고
성인군자들의 말을 흉내 내고 이름을 팔아
돈! 돈! 돈! 하며 보통사람들의 돈을 우려내고
다른 줄에 선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어
삿대질과 욕설과 발길질을 해대었고
같은 줄에 선 자들끼리도 주도권 다툼에
비난과 삿대질과 휘두르는 각목이 난무하였다.
성인 때문에 대한민국은 말세 중의 말세가 되었다.
(3)
우매한 보통사람들을 통솔하기에는 오히려
성인보다는 전쟁영웅들과 독재자들이 더 나을 것 같아
히틀러니 무쏠리니니 스탈린이니 하는 자들에게
이씨, 김씨, 박씨, 전씨, 노씨라는 성을 붙여 부활시켰다.
부활되자마자 기대한 대로 무리들의 대장이 되고
보통 사람들을 매료시켜 잘 통솔하였다.
그러나 옛 버릇은 죽어도 개 못 주는가
매료된 보통사람들은 총칼을 휘두르며 거리를 누비었다.
부활된 과학자는 병기와 체루탄을 만들어
동료와 이웃과 형제를 핍박하고
심리학자는 전쟁과 독재의 심리를 정당화하고
문학가는 전쟁영웅들과 독재를 예찬했다.
말이 총칼보다 더 강하다고 배워온 보통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만은 총칼이 말보다도
훨씬 더 강한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4)
그 후에도 여러 부류의 내노라 하는
영웅호걸들을 더 부활시켜 보았지만
내노라 하는 자의 부활 수가 늘어남에 따라
세상은 점점 더 아비규환이 될 뿐이다.
부활과 영혼으로 환원시키기를 반복하다가 최후 수단으로
임금이나 와이니 황제니 하는 성군들을 부활시켰다.
보통사람들은 배부르게 먹게 되고
거리에는 흥겹고 감미로운 노래가 울려 퍼지고
건물마다 안팎이 그림과 조각들로 가득했다.
아하, 이게 태평세대인가!
그러나 배고픈 자와 배부른 자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있게 마련이고
보통사람들이란 배가 고파도 불러도 문제인지라
배고픈 자들은 배부른 자를 배부르다는 이유만으로 납치하고
투기와 사기와 횡령과 부정축재로 배부른 자는
음악과 그림과 조각을 사서 즐기는 것은 시시하다며
어린 소녀를 돈으로 사서 영계보신탕을 해먹었다.
(5)
내노라고 하는 영웅의 부활만으로는 대한민국을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던 게 착각이란 깨달음과
미흡하더라도 우매한 보통사람들의 세상은
그들 스스로가 꾸려야 그런 대로 살만하리란 경험에
부활된 영혼들을 모두 영혼으로 환원시키고
2003년 2월 24일 자정을 기해 내 실험실을 폐쇄하였다.
그냥 그 전처럼 시끄러운 세상이겠지만
그렇더라도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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