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고르기
--지방자치선거일에--
서울시장을 뽑던 날 아침, 찬거리를 봐야 한다는 아내를 따라갔다. 이것저것 다 챙긴 후, 그녀가 드디어 수북이 쌓인 귤 더미에서 귤을 고르기 시작했다. 내 보기엔 엇비슷한 것들에서 보지도 않고 퇴짜를 놓는다든가, 때로는 한 번 퇴짜 놓은 것을 다시 집어 바구니에 담는다든가 하는, 솔직히 말해 좀 난해한 그녀의 심리를 읽는다는 것은 뜬구름 어디로 흐를지를 알아내는 것과 같은 것, 그게 서울시장 고르기라는 것. 아마 평생 살아도 영원히 알 수 없을 만큼 대단히 만족스러워 하는 그녀의 표정, 덩달아 나도 괜히 신이 났다.
투표소로 가는 길에 아내에게 귤 선택 기준을 물어보았다. 그녀가 말하기를 선택이란 늘 같은 것 중에서 다른 것을, 다른 것 중에서 같은 것을 고르는 것. 때로는 때깔 좋은 것을 미련 없이 버릴 줄 아는 지혜와 때깔 나쁜 것을 선뜻 집는 배짱과 버린 것을 다시 주워담는 건망증이 습관성으로 배인 또뽑기. 제기랄 누구면 어떨까, 그러면서도 신경 쓰이는 날, 그게 우리네 귤 고르기 아니던가. 나를 무시하는 아내, 그런 날은 남의 일로 괜히 의기소침 한다. 나는.
하고많은 서울시장 후보. 그 중에서 한 치라도 더 큰 귀를 가진 자를 고르고 싶었는데. 이미 투표를 하고 나오는 자신의 고르기에 대해 가타부타 않는 아내에게 돌아오면서 말을 건다. 당신은 큰 귀 고르기가 어땠느냐고. 귤에 귀가 있답디까! 아 그렇지! 큰 귀는 다 임금님 귀이고 임금님 귀는 다 당나귀이라 하잖아욧! 맞아! 부지런히 날 따라다니며 귤 고르기 연습이나 해욧!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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