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기에
봄비가 온다.
깡마른 바람으로 헛배를 불리던 겨우살이
해빙이 되면 삭신이 쑤시고
헛기침을 할 때마다 옆구리가 결리어
헛배를 움켜쥐던 균열된 삶의 모서리에
상쾌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물기가 스며들어
쑥이랑 강아지풀이 뿌리를 내린다.
빗방울 한 움큼 떠 손바닥에 담아
지난날의 서럽던 일로 짭짤해진 눈물을
두어 방울 짜내어 떨군 후
약지로 휘휘 저어
땀이 짭짤히 밴 삼배 소맷자락으로 조금씩 찍어
실컷 운 후의 후련한 기분이 들 때까지
눈이랑 귀를 문지른다. 그러다 보면
건기에도 수시로 농무(濃霧)가 끼던 시야가
이제는 밤에 꿈을 꿀 만큼은 트일 것이고
가늘게 먹은 귀로서도 경구(經句) 한 구절쯤은
귀동냥할 수 있을 거야
개일 즈음
속옷마저 홀랑 벗어야지
치부마저 드러나면 오히려 당당한 알몸둥이
괜스레 늘 농무 속에 감추다 보니
통풍이 안된 탓에 가슴팍엔 한(恨)만 끼었고
그걸 삭이느라 속쓰림에 창자가 비틀리었지.
이제 그 비틀린 결 따라
하나 둘 셋 ... 일곱 구덩이를 파
속 썩혀 만든 두엄을 채우고
야무진 사랑을 한 구덩이에 한 톨씩 심어야지
어머님 약손으로 가슴을 쓸어 달래
따뜻한 체온으로 도톰히 덮고서
별빛 타고 흘러내리는 정갈한 은하를 받아
밤마다 한 국자씩 듬뿍 뿌려주고
아침마다 한 구덩이에 한 빛깔씩
일곱 빛깔로 무지개 받침대를 세워줘야지
사랑은 덩굴손을 뻗으며
깡마른 등줄기를 따라
시린 계절 마디마디를 감싸 오르며
무지개 받침대가 끝날 즈음
깨어 있는 눈빛마다
하나 둘 셋 ...
북두칠성으로 떠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