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시집) 제3부 어머님이여!

파종기에

매미가 웃는 까닭 2015. 12. 25. 10:51

 

 

파종기에

 

봄비가 온다.

깡마른 바람으로 헛배를 불리던 겨우살이

해빙이 되면 삭신이 쑤시고

헛기침을 할 때마다 옆구리가 결리어

헛배를 움켜쥐던 균열된 삶의 모서리에

상쾌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물기가 스며들어

쑥이랑 강아지풀이 뿌리를 내린다.

 

빗방울 한 움큼 떠 손바닥에 담아

지난날의 서럽던 일로 짭짤해진 눈물을

두어 방울 짜내어 떨군 후

약지로 휘휘 저어

땀이 짭짤히 밴 삼배 소맷자락으로 조금씩 찍어

실컷 운 후의 후련한 기분이 들 때까지

눈이랑 귀를 문지른다. 그러다 보면

건기에도 수시로 농무(濃霧)가 끼던 시야가

이제는 밤에 꿈을 꿀 만큼은 트일 것이고

가늘게 먹은 귀로서도 경구(經句) 한 구절쯤은

귀동냥할 수 있을 거야

 

개일 즈음

속옷마저 홀랑 벗어야지

치부마저 드러나면 오히려 당당한 알몸둥이

괜스레 늘 농무 속에 감추다 보니

통풍이 안된 탓에 가슴팍엔 한(恨)만 끼었고

그걸 삭이느라 속쓰림에 창자가 비틀리었지.

이제 그 비틀린 결 따라

하나 둘 셋 ... 일곱 구덩이를 파

속 썩혀 만든 두엄을 채우고

야무진 사랑을 한 구덩이에 한 톨씩 심어야지

어머님 약손으로 가슴을 쓸어 달래

따뜻한 체온으로 도톰히 덮고서

별빛 타고 흘러내리는 정갈한 은하를 받아

밤마다 한 국자씩 듬뿍 뿌려주고

아침마다 한 구덩이에 한 빛깔씩

일곱 빛깔로 무지개 받침대를 세워줘야지

 

사랑은 덩굴손을 뻗으며

깡마른 등줄기를 따라

시린 계절 마디마디를 감싸 오르며

무지개 받침대가 끝날 즈음

깨어 있는 눈빛마다

하나 둘 셋 ...

북두칠성으로 떠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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