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시집) 제1부 나는 학이다.

남자를 위한 돼지 찌개 요리법

매미가 웃는 까닭 2015. 12. 12. 20:13

 

 

남자를 위한 돼지 찌개 요리법


무를 자른다.

바람 든 부분을 도려낸다.

진작 도려냈어야 할

바람 안 든 부분이 없는

몸 곳곳이 쑤셔온다.

 

돼지비계를 자른다.

밤새 부석부석 살찌는

기실은 부황든 푸석살도

자른다 자른다 하면서도

차마 자르지 못한

내 목숨의 일부

우둔한 살기로 으깨듯 자르기에는

욕된 삶도 참 질김을

새삼 깨닫는다.

 

상식에 뿌리내린

밋밋한 일상의 속잎파리

뿌리째 뽑아

마늘 두어 쪽 다지고

파 몇 줄기 잘라 버무린다.

느끼하거나 매스꺼운 인습은

생강 한 조각 빚어 삭이련다.

매운 아주 매운 고추도 네댓

대충대충 잘라 넣어야지

어차피 헛물만 켤 세상일지라도

입이라도 얼얼하여야 들이키겠지

 

마련된 모든 것을

울화통에 쓸어 넣는다.

적당히 물을 부으면

욕된 것일수록 더욱

몸을 사려 가라앉는다.

바람들었다 버린 무도 아까워

되주워다 넣는다.

짠 말씀을 한 숟갈 쳐

간을 맞춘 후

인고의 나날로 닳은 마음에

묵직한 침묵 한 덩이 얹어

울화통 뚜껑을 눌러 놓는다..

 

허허 웃어 어깨 위로 털어 버렸던

지금에야 가장 수모스런 것이 무엇인가

곰곰 생각해 낸다.

독설이 헉헉 뿜어 나온다.

세 치의 혓바닥이 활활 타오른다.

삭이지 못한 아픔은 여전히 건더기로 남고

녹은 것들은 내 육수를 뿜으며

분통해한다.

 

잠시 후

독설이 바닥날 즈음

나는 시장기를 느낄 것이고

늘 나물뿐인 저녁상에 모처럼

기름기 둥둥 뜨는 돼지비계 찌개가

참 먹음직할 것이다.

 

소주 한 잔도 미리

따루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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