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낚시
낮은 내가 낚이는 시간이다.
그 누군가가
내가 가는 골목골목에
때로는 63 빌딩이나 남산 꼭대기에
투명한 낚싯줄을 드리우고
꿈을 매달아 흔들어댄다.
코끝을 간질이는 향기에 때론
잠시 황홀해 보기도 하지만
내 코를 꿰려는 짜릿짜릿한 살기가
낚싯줄 저 끝에서 물살을 타고 오면
문득 정신이 들어
“비열하게 숨어 그러하지 말고 썩 나오시오”
고함치고 싶다가도
저 금단의 꿈마저 없다면
무엇에 입질할 것인가
꿈 하나 따먹던 날 한 잔 산 동료가
침을 탁탁 튀기며 열을 올렸지
퇴근길에서만도 꿈이 세 번 보이기에
땅거미가 내리자마자
물고기를 잡으러 갔었다고. 그래서 나도
낮에 눈살미로 익혀둔 대로 모조꿈을 빚어
미끼통에 가득 채우고
질긴 목숨을 꼬아 만든 줄낚시를 어깨에 걸치고
지금 밤바다 낚시를 간다.
무턱대고 터를 잡아
모조꿈을 낚시 끝에 매달아
깜깜한 물 속 아무 데나 던진다.
나를 낚으려는 자를 위해
내가 종종 받던 그런 충동으로
덥석 물어주고 싶은 녀석이 있을지 모르지
대개는 쬐끄만 성실 급한 녀석들이라든가
덩치 큰 얼간이라든가 그런 것들이겠지
오늘도 터가 나쁜가
자리를 옮겨가며
낚싯줄을 감고 푸느라
미끼도 나도 동날 새벽녘
코를 꿰인 채
마지막으로 매단 모조꿈을 입에 물고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축 늘어져 있는
나의 시체
찌가 떨려 엉겁결에 줄을 당기고 말았지.
순간
버티는 힘으로 보아 꽤나 큰 녀석인가 본데
역시 덩치 큰 녀석이 엉큼하구나
모래판에 냅다 떡을 쳐야지
뼈 마디마디에 경련을 일으키며
살기가 돋아난다
바야흐로 녀석을 물위로 들어올렸다
어쭈 요것 좀 보게
허리춤께를 왼쪽으로 꼬지 않는가
쯧쯧 불쌍한지고
일단 코가 꿰이면 발버둥칠수록
언청이가 된다는 소리도 못 들었나
그런데 녀석이 이번에는
꼬리를 오른쪽으로 휘는가 싶더니, 아뿔싸
검은 바다 속으로
첨벙
.......부글.......
.......부글.......
꿈을 두 개나 따먹던 날 특진한 그 밉살스런 과장이
목에 힘을 주며 거드름을 피웠지
물고기를 잡다가 놓친 날
물고기가 되어 과장으로 승진했다고
그래, 나를 낚겠다고 떼거리로 기다리는 낚시터로 어서 가
물고기가 되는 거야
그런데, 그 놓친 녀석이 발가숭이였었지
맞아, 울긋불긋 걸치고
꿈을 따먹어 본 자 없다잖는가
일단 체면일랑 홀랑 벗으면
낚는 자 낚고도 낚지 못하고
낚일 자 낚일 줄 알면서도 아무거나 덥석 물 만큼
눈뜨고도 눈먼 세상이 된다지, 혹시라도
코가 꿰이면 좀 찢어지기야 하겠지만
즉시 허리춤께를 왼쪽으로 꼬고
닳아빠진 꼬리가 아직도 간질거리는 엉덩이를
오른쪽으로 휙 비트는 순간, 그냥
인해(人海) 속으로 첨버덩
뛰어든다 이거야
어쩌면 죽을지도 모를 신나는 출근길
콧노래 흥얼거리며
상쾌한 새벽 공기 물살을 헤쳐가니
지느러미가 돋아나는가
온 몸이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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