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
-인왕산이 개방되던 날 1-
그 산에는 언제부터인가 춘삼월에도 진달래꽃이 피지 않습니다. 그 밑바닥 입구에 ‘여기서부터 안개지역’의 팻말이 장승처럼 서 있습니다. 본래는 옥황상제가 사시는 선경을 알리는 팻말이었다지만, 어제부터인가 그 상제자리가 공석이라는 소문이 있고부터는 한 수 한다는 온갖 강호인들이 몰려와 서로 삿대질과 핏대로 불상사가 멈출 적이 없는 우범지역의 경고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때로는 북두칠성의 영험을 받았다며 대머리에 금종이 은종이로 만든 별을 잔뜩 붙인 동키호테도 있었고, 황사바람 타고 그 산을 축지법으로 오르겠다는 출중한 도사도 있었고, 빈 뱃속을 채운 과욕을 왈칵 토하면 풍선처럼 두둥실 떠오른다는 경신술을 뽑내던 입신의 고수도 있었습니다. 큰소리치던 것들이 늘 그렇듯이, 그 밑바닥에서 꽤나 오래 머물던 자는 있었지만 진실로 정말 진실로 그 산에 올랐다는 자가 있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난세에는 흔히 족집게 점쟁이들이 판치지요. 그들 사이에도 그 산을 오른 자가 있다 없다에 대해 점괘가 엇갈립니다.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았을 뿐 누군가가 올랐다는 점괘가 있는가 하면, 안개 속에 백여우 한 마리가 도사리고 있다가, 육질이 워낙 좋은 강호인들을 모두 잡아먹어서 아무도 그 산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괘도 있습니다. 난세에는 겁을 내면서도 속인들이란 신비를 좋아하게 마련이고 강호인들이란 객기를 좋아하게 마련이지요. 그래 다들 아무도 못 올랐다는 점괘에 더 복채를 겁니다. 이에 고무된 점쟁이들에 의하면 그 백여우는 울긋불긋한 색깔로 강호인의 육질을 판단한답니다. 아무리 강호인이라지만 목숨에 대한 애착은 강하여 모두 무명도포를 입고 안개처럼 변장합니다. 강호인들이란 본래 소림파니 무당파니 상무파니 떼거리성이 강해서, 안개 속에서 대장을 놓치게 되면 즉시 다른 패거리로 가서 그 대장을 자기 대장으로 모시게 됩니다. 대장이란 권모술수와 칼자국이 많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장이 지척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도 자기 졸개들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유일한 표시로 권모술수와 칼자국을 귓밥이나 상투자락에 닭볏 같이 매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육질은 또한 권모술수와 칼자국에 비례하는지라, 이를 잘 아는 백여우가 손 안 대고 코 푸는 사냥을 하고자, 자신도 닭볏 장식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강호인 하나에게 귀띔해줍니다. 먹고 먹히는 그 산에는 귀 밝고 말 많은 산울림이 사는지라 이런 소문은 골과 골을 타고 이내 퍼집니다. 강호인들은 본시 저마다 백여우를 남보다 먼저 잡아서 화랑무공훈장 하나쯤 타려는 영웅심리가 강한 소인배라 이 소문을 들은 후 너도나도 안개 속에서 울긋불긋한 볏을 단 것이면 아무거나 마구 찔러댑니다. 그래서 밤새 아우성이 시끄럽고 칼이 맞부딪치는 날 밤 백여우를 잡았다는 소문이 분분하다가 날이 새면 으레 대장 하나가 살코기는 모두 뜯긴 채 뼈와 가죽만이 남아 그 산 밑바닥에 너저분히 흩어져 있습니다. 이때쯤엔 그 대장을 따르던 졸개들이 이미 안개 속에서도 용케 새 대장을 모시고 있습니다.
안개가 왜 생기었느냐는 소문도 다양합니다, 백여우가 안개를 피운다든가, 안개가 백여우라든가, 심지어 그 산 자체가 본래 안개라든가 그런 것입니다. 그 산이 백여우라든가 배고픈 옥황상제가 진달래꽃을 따먹다 보니 백여우가 된 후에도 울긋불긋한 색깔을 좋아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이런 소문을 듣다 보니 듣는 자도 자신이 안개가 되지 않을까 혼동됩니다. 배짱이 두둑하다지만 간담이 서늘하기는 마찬가지인 강호인들, 비어 있는 옥황상제 자리에 대한 유혹, 의협심이라는 명분, 떼거리 근성의 응집력 그리고 한 수 할 수 있다는 객기가 함께 발동하여 그 산 밑바닥에 몰리게 마련이고 그래서 앞으로도 그 산 밑바닥은 그들로 북적거릴 것입니다. 춘삼월에도 진달래를 피지 못할 만큼 안개가 자욱하는 한 늘 그럴 겁니다.
*김영상 전 대텅력의 서거(2015.11.22.000:22)에 애도를 표한다. 이 시는 김영삼과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상도동계, 동교동계 등으로 일컬어지는 가신의 정치(떼거리 정치)에 관한 글이다. 이들 두 분을 떼거리문화에 대한 시의 소재로 사용했을 뿐이고 이 분들을 비난할 목적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떼거리 정치는 근인으로 육사8기와 육시 11기가 주동이 되어 발생시킨 군부정치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보다 급본적인 문제는 기수 떼거리와 양김의 떼거리 모두 형님, 아우하고 선배, 후배하는 우리의 집단(떼거리)의 문화탓이리라. 이들 두 분 이후에도 친노계니, 친이계니, 친박계니, 이런 우스운 떼거리 정치는 여전히 존재하고, 또 단지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강화되는 게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