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시집) 제5부 아 뉴욕이여!

맨허턴의 하루

매미가 웃는 까닭 2016. 3. 23. 16:56



맨허턴의 하루

 

나의 몽유병은 꼭두새벽

플러슁발1) 맨허턴행 만원 지하철

키 큰 금발 여자의 큰 콧구멍 밑에 서면

버터 냄새나는 콧김에 취하면서 시작된다.

일 달러(dollar)만 지불하고 맨허턴에 가면

달러는 어디에나 낙엽처럼 흩날린다지

월가(Wall Street)의2) 장세는 늘 상승세라고 했던가

다만 긁어모을 날카로운 손톱이 필요하다고들 하기에

내내 junk food을3) 먹으며 오기처럼 길러온 손톱으로

오늘은 틀림없이 달러를 낙엽처럼 잔뜩 긁어모을 거야

그래서 빌리(Billy) 목사가 설립한 (주)천당의 지분(持分)을 살 거야

 

일진이 나쁜 탓인가

오늘은 달러 한 장 날리지 않고

월가 장세는 종일 하향세이다.

속만 타 홧김에

꼬깃꼬깃 속주머니에 감추어둔

마지막 자존심을 털어 자동판매기에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마시고 하늘보다 웃자랐다는

코카콜라 한 캔과 맞바꾸어 마셔버렸다.

빈털터리가 되고서

하늘이 콜라보다 더 새까만 줄

처음 알았다.

 

돌아가야지,

짐스러운 몸뚱이를 간신히

플러슁행 지하철에 무임으로 싣고 나니

차가 떨리는 대로 오한을 앓으며

몽유병 말기에 흔히 나타나는 헛소리를 한다.

“깨어나야지

깨어나야지”

 

 

1) 플러슁(Flushing): 미국 뉴욕시의 퀸즈구(Queens Borough)에 있으며 한인이 많이 사는 지역

2) 월가(Wall Street): 뉴욕시의 맨허턴 남부의 동서 방향의 거리로서 세계 금융의 중심지

3) junk food: 콜레스테롤이 많은 햄버거 등의 fast food. 쓰레기 음식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