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시집) 제2부 그때 그 시절

은행나무 -피폐한 고향을 다녀와서-

매미가 웃는 까닭 2015. 12. 14. 23:03

 

 

은행나무

     -피폐한 고향을 다녀와서-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농촌마을 한 가운데에는

단오이면 동네 꼬마들이 그네로

공중을 날면서 꿈을 키우고

가을이면 장대로 은행 알을 털어

모닥불에 구워먹으며

그 아래서 우정을 다지던

열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서 있다.

 

그 꼬마들이 자라

하나 둘 마을을 떠날 때마다

그들이 돌아올 방향을 기억고자

떠나간 쪽으로 하나 둘 새 가지를 뻗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들이 돌아오지 않자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그들이 산다는

앞산 너머 저 먼 도시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고개를 뻗고 또 뻗어도 그 도시들은 보이지 않고

하늘 높이 웃자란 긴 목을 흔들며

대낮에도 엉엉 울곤 했다.

 

떠나갈 사람조차 없어진 어느 날부터는

더 이상 새 가지를 뻗지 않고

뻗었던 가지들이 하나 둘 말라가더니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노인들 수만큼의 가지에만 잎을 피우고

떠나고 나서 돌아오지 않는 자식들을 기다리며

손을 덜덜 떠는 그 노인들과 함께

잎이 띄엄띄엄 핀 가지를 떨면서

끙끙 중풍을 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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