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피폐한 고향을 다녀와서-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농촌마을 한 가운데에는
단오이면 동네 꼬마들이 그네로
공중을 날면서 꿈을 키우고
가을이면 장대로 은행 알을 털어
모닥불에 구워먹으며
그 아래서 우정을 다지던
열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서 있다.
그 꼬마들이 자라
하나 둘 마을을 떠날 때마다
그들이 돌아올 방향을 기억고자
떠나간 쪽으로 하나 둘 새 가지를 뻗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들이 돌아오지 않자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그들이 산다는
앞산 너머 저 먼 도시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고개를 뻗고 또 뻗어도 그 도시들은 보이지 않고
하늘 높이 웃자란 긴 목을 흔들며
대낮에도 엉엉 울곤 했다.
떠나갈 사람조차 없어진 어느 날부터는
더 이상 새 가지를 뻗지 않고
뻗었던 가지들이 하나 둘 말라가더니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노인들 수만큼의 가지에만 잎을 피우고
떠나고 나서 돌아오지 않는 자식들을 기다리며
손을 덜덜 떠는 그 노인들과 함께
잎이 띄엄띄엄 핀 가지를 떨면서
끙끙 중풍을 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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