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교육에 관해 I에서 XVI까지의 16개의 글로 된 시리즈를 쓴다. 이 글은 그 중 둘째(II)로서 내가 수행한 노력에 대해 쓰려 한다. 쓸 내용은 많지만 차차 다 쓰기로 하고 우선 몇 가지만 쓴다.
II. 노벨상교육: 올바른 교육을 위한 나의 조그만하지만 큰 노력
(1) 미국의 학생운동선수 출신인 변호사와의 만남
우선 운동선수라도 고학력과 실력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에 대한 미국의 한 멋진 경험담을 '전해라!' 하고 노래하고 싶다. 본인이 미국서 박사학위고장 중 후 신임교수 모집을 하는 대학에 지원하여 임용과정을 위한 논문 발표를 위하여 초대받고 그 발표 후 장 했다며 교수직 제의를 받았다. 그래서 미국서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H 비자를 신청할 때 내가 나온 대학교 정문 근처에 변호사 사무실이 보이기에 찾아갔다. 그 변호사는 내가 박사학위를 받는 그 대학의 학부 농구부 선수 출신이었다. 그는 자기가 운동할 때의 이런 저런 경험담을 이야기를 한 후 그 대학 학부를 졸업하고 곧 바로 인디아나 법대(로스쿨)에 입학하여 이민법을 전공하고 변호사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운동선수라면 그 운동을 시작한 중고대학에서 수업을 전혀 받지 않는다. 이런 생각에 어떻게 로스쿨에 갈 수 있었고 졸업하고 변화사가 될 수 있는지 궁급하여 그 점을 물어보았다. 다시 말해 공부 않는 한국의 대학 운동선수와 대비되어 법대는 고사하고 심하게 말하면 영어면 영어, 전공이면 전공에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를 만큼 학업과는 담을 쌓을 것인데 운동선수인 그가 법대에 가고 변호사가 된 데 대해 감탄도 하고 궁금도 하였다. 참 대단하다고 칭찬한 후 그런 질문을 하였다. 그의 말인 즉, 자기는 학부 성적이 아주 좋아 일반 학생 대부분을 제치고 우등졸업(dean's list) 중에서도 최우등 학생(distinguished student)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그래서 법대도 가고 공부도 쉬웠다고 하였다. 나의 반응은 그냥 감탄 그 자체일 뿐이었다. 그때 놀라 벌어진 입은 지금도 벌어져 있는 상태로 이렇게 헛소리 내뱉듯 진실을 여기에 뱉고 있다.
(2) 한국에서 운동선수 학생과의 상담
이제 멋진 한국에서 한 내 노력에 대한 하나의 경험을 '전해라!'라고 노래하고 싶다. 한국에 교수가 되어 돌아온지 몇 년 되던 때였다. 운동으로 특례입학한 기**라는 학생의 이야기이다. 그가 어떤 학기초에 내게 찾아와 운동선수라 수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말해주는 운동선수가 전에 없어서 인간이 되었구나 싶어 고마울 정도로 반가워 간단하지만 진지한 대화를 가질 수 있었다. 그의 말인 즉, 비인가 종목에다 올림픽에 갈 만큼은 못되는 선수지만 전축체전에 나가 좋은 성적을 낼 수준은 된다고 말했다. 우리의 대화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기억한다
나: 졸업후 뭐를 하며 살겠느냐?
기: 태권도 도장을 할 겁니다.
나: 도장에 가면 정숙(靜肅)이란 단어가 있는데 그런 한자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느냐?
(당시 한문으로 도장에 그렇게 써붙였다. 지금은 한글일 것이고 내용도 바뀌있으리라 본다.)
기: 저도 한자를 배우고 싶어요.
나: 그럼 내가 방법을 알려 줄 테니 하겠느냐?
기: 네.
나: 정말이냐?
기: 늘 배우고 싶었지만 배울 방법을 몰랐어요. 운동하면서 배우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나: 신문사설을 보면 가끔 한자 단어가 나온다. 그걸 찾아 누구에게나 묻고 그게 무슨 뜻인지를 알아봐
라. 그리고 거기 있는 한자 단어를 최소한 10번씩 공책에 써서 학기 수업종료일 1주일 전에 가져와
라. 학기 초에는 1주에 사설 수를 하나, 몇 주 지나면 둘 등 그 수는 너의 재량이란다. (지금은 한글
전용이지만 그 당시에는 신문사설에 중요한 사항이나 사람 이름은 한자로 표기했다.)
그는 정확히 학기 마지막 수업종료 1주 전 공책 한 보따리를 싸서 가지고 왔다. 공책에는 빽빽이 비뚤삐뚤한 한자가 그림으로 그리진듯 그러져 있었다.그런 글씨로 몇 주가 지난 후의 글씨는 그 글씨 모양이 제법 좋아졌고 나중에 상당히 좋아졌다. 그는 가장 낮은 성적인 D0도 좋다며 그것으로도 졸업에 충분하다고 했다. 그가 숙제를 해오면 본래는 C+를 주려했다. 나는 너무나 기쁘고 기뻤다. 그래서 비록 최고 성적인 A+를 주지는 못하였지만 그 다음인 A0를 주었다. 그리고 다음 대화를 했다.
나: 느낌이 어떠냐?
기: 기뻐요. 그리고 감사해요. 이제 한문이 눈에 들어와요. 대학을 다니는 내 동생보다 한문을 더 잘
할 수 있어요.
나: 대단하다.
기: 회전공공부도 해보고 싶어요.
나: 그럼 방학 중 전공공부를 하겠느냐?
기: 네.
그래서 나는 그의 전공분야의 개념도 다소 이야기를 했다. 그는 다음 학기 초에 또 찾아왔다. 그때 방학 때 한 그 전공공부에 대한 것도 공책에 적어왔다,
기: 또 교수님의 지도를 받고 싶어요.
나: 나도 너를 지도하는 게 기쁘단다 이번엔 어느 분야를 하고 싶으냐?
기: 전공은 아무래도 어렵고 살아가는 데 필요할 것 같아 영어를 하고 싶어요. 저는 중학교 1학년 영어책도
읽지 못해요. 너무 모르니까 동생에게 물어 보기도 창피해요.
나: 알파벹은 아느냐?
기: 네.
나: 그럼 중학교 1학년 영어책을 구해 동생에게 물어보아라. 한문을 네가 더 잘 한다니 부끄러울 게 없다.
너는 한자를 가르쳐주고 동생은 너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방법으로 영어를 배워라. 공부방법을 알았
으니 배우는 속도가 빠를 거야. 쓰기, 발음, 해석을 배우고 배운 문장을 최소한 10번 씩 써 오기 바란다.
배운 단어는 종이에 써 가지고 다니며 외우기 바란다.
기: 네.
그 학기 마지막 수업 1주일 전에 그가 전 학기에서처럼 또 그렇게 해왔다. 공책 부피가 배쯤 늘었다.
나: 영어가 보이냐?
기: 네. 읽을 수도 있고 쓸 줄도 알아요. 이건 제가 배운 것을 쓴 단어장이어요. 이제 더 이상 교수님께 배울
수 있는 과목이 없지만, 감사하며 살아갈 게요. 앞으로 스스로 다른 분야도 공부해 볼게요.
쓴 영어 중 읽기를 시켜보니 느리지만 잘 읽고 해석도 잘 하였다. 단어장 단어도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나: 어디를 가나 뭐든 잘하여 주위의 모범이 되리라고 본다.
기: 그러겠습니다.
그 당시 나는 두과목을 가르쳐서 그를 더 이상 그가 등록할 과목이 없었지만 그는 어디를 가서 뭐를 하든 잘 하며 살아 가리라 본다. 그 다음 학기부터 다른 운동선수학생에게 그 학생의 예를 들어주고 같은 것을 시도해보았지만 약속을 해도 지켜지지 않았다. 아무도 그런 학생을 만나지 못했고 그렇게 하리라고 찾아오는 학생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 학생에게 F라는 낙제 점수를 주었지만, 졸업시점에 그들은 모두 졸업했다고 들었다.
위 사례에서 기라는 성씨를 ㄱ사진 학생은 내가 가르친 과목에서 A0를 받을 수 있는 실력이 있어서 그걸 받은 건 아니다. 그때는 A는 몇 % 이내에 주어야 하는 규정이 없어 교수에게 재량이 있어 그에게 A0를 줄 수 있었다. 최근에는 A, B, ..., 등 등급별로 줄 수 있는 %가 제한되어 있어 한 학생을 희생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 후 좀 있다가 체육특기생은 모두 체육학부 소속으로 바뀌어 그들은 그것을 전공으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내 과목을 신청할 필요가 없었다. 기라는 학생은 내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고학력자이다. 이건 분명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불량신호이다. 그렇지만 양심의 가책은 조금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한데 양심의 가책은 없다. 내가 운동선수에게 F를 주어도 모두 졸업하던 시대였다. 어차피 졸업하는 학생이라면 하나의 인간다운 살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최소한 역도선수 금메달리스트인 사*와 같이 후배운동선수를 구타하는 갑질 운동선수는 아니리라 본다. 다시 말해 그는 건실한 사회구성원으로 잘 살아가리라 믿는다. 그 후 그를 만난 적은 없다.
(3) 한국에서 일반학생과의 상담
한국 대학생들은 교수들과 상담하는 경우가 미국에서보다는 별로 없다. 그러나 나는 비교적 많은 학생들이 상담하려 찾아오는 편이다. 상담매용은 수업에서 가르친 것을 몰라서 묻기, 앞으로의 나아갈 진로 방향, 영어공부, 해외 연수 등 다양하다. 나는 넥타이를 매고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이웃집 아저씨라 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Pathfinder라는 학교의 프로그램으로 5명의 학생을 데리고 동남아 몇 개국을 가 국제화의 교육을 시킨 적이 있었다. 외국에 가서 그들에게 외국어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그들의 진로를 이야기하고 등등 현장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비용은 학교에서 하는데 그때 동년배인 내 맏딸을 데리고 갔다. 물론 내 비용으로였다. 맏딸은 한국어와 영어는 둘 다 모국어인 셈이고 일본어와 중국어가 상당했다. 그래서 마카오에 가니 중국어를 모르면 한발자국도 가기 힘들 때 그 애의 중국어로 무사히 가고자 하는 곳을 쉽게 갔다 왔다. 그런 여행 중 맏딸이 아빠인 나에 대해 물어봤던 모양이었다. 각자 자기 시간을 가지는 시간에 나와 내 딸은 그 애와 내 학생들과 사이에 나눈 대화를 이야기했다.
나: 그 애들이 뭐라 하던?
딸: 첨엔 다른 교수와 달라 교수라는 이미지가 확 바꾸었다 해.
나 : 어떻게?
딸: 권위도 없고 마치 이웃 아저씨라고 생각되었대.
나: 그래서?
딸: 일단 상담을 하고 나면 모든 학생이 참 재미 있는 교수라고들 한대.
나: 그 애들 말이 내가 좋다는 말이야 나쁘다는 말이야?
딸: 내 생각에는 좋다는 이야기 같아. 그들 모두 편하고 뭐든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해.
나: 사실 난 상담하는 학생이 아주 많아.
딸: 그 애들도 그렇게 말했어.
(4) 정부와 학교 주도의 잘못된 교육관 수정에 대한 나의 견해와 노력
대학은 한 한기를 16주로 하는데, 내가 재직하던 학교는 학기의 길이가 15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그 15주의 수업도 못하는 수가 다반사이다. 그 이유는 다른 활동을 주로 하고 교육을 부로 삼는 탓이다. 이런 잘못된 교육관에는 정부기관이나 대학교에게 책임이 아주 많이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생을 결석으로 처리하지 말고 공결(공적활동 때문에 결석으로 처리하지 않는 결적)로 처리할 것을 요구하는 일이 꽤 많다. 공결이든 사결이든 결석은 결석이다. 이 말은 수업을 못하면 못한 것인데 공결이라고 그게 자동으로 보충되는 것이 아니다. 공결처리한다면 그 보충수업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계획도 세워야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그렇다면 공결도 결석으로 봐야 한다. 그런 공결처리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예비군 훈련에 의해서 심각한 수업방해가 벌어진다는 점이다. 수업이 있는 주중에 예비군 훈련을 하기 때문이다. 학과별로 또는 대학별로 예비군 훈련을 주중에 하면 그 날은 수업을 할 수 없다. 예비군 훈련은 이 하루이지만, 그게 하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왜냐하면 여러 학과가 동일 수업에 참여하면 그 하루가 이틀도 되고 3일도 도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친 과목은 취업에 크게 도움이 되어 여러 학과의 학생들이 많이 복수전공으로 선택하기도 하고, 부전공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 학과에 예비군훈련이 있으면 우리 학과 학생 다수가 수업에 참여 못하므로 휴강해야 한다. 다른 학과나 대학에 예비군 훈련이 있으면 그날도 수업을 할 수 없다. 수업을 못들은 학생들에게 성적에 대한 상대적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런 보충수업은 하여야 한다. 학생마다 아르바이트나 기타문제로 보충수업의 여율이 낮다. 이런 보충수업은 교수가 아니라 대학당국이 계획하여 교육의 충실성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도 대학은 물론 국방부도 수업은 부이고 예비군 훈련이 주인 것처럼 부실한 수업을 하게 조장하는 방법으로 예비군 훈련을 막무가네 식으로 수행한다.
요컨대, 정부에서는 이처럼 예비군 훈련이 주이고 교육은 부인 셈이다. 아울러 학생들도 학생활동이 주이고 교육은 부로 생각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안보가 중요하지만 비상시가 아니라면 학생에게는 어디까지나 교육이 주여야 한다. 그래야 건전한 국민을 기르는 교육이 되어 나라가 건전해진다. 예비군 훈련을 달리하는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예비군 훈련은 주말이나 방학 중에 선택하여 참여하도록 하면 된다. 그래야 교육이 주이고 예비군 훈련이 부라는 올바른 교육관을 갖게 된다. 이런 문제는 국방부 장관과 교육부장관이 나서서 시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장을 모르는 관련 장관들과 그들 부서의 시스템 누구도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탓이리라. 내가 예비군 담당자를 찾아가려 생각했지만 그래 봐야 별 효과가 없어 포기했다. 그 대신, 빠진 수업을 보충하려고 방과후 보강하려 노력했다.
교수들이 학에서 교육이 부이고 다른 활동을 보루하는 예를 위해 아래 <사례 1>을 보자.
<사례 1> 교수들에게 내가 교육릐 중요성을 가르친 사례: 대학의 총장을 교수들의 선거로 뽑던 시데의 일이다. 투표장에 가니 공정선거라는 구실로 ROTC 학생 상당수가 투표현장에 경비를 선 일이 있었다. 그들이 교수들이 부정선거를 할까봐 감시하는 것 같았다. 교수들을 못믿고 투표 감시자로 학생을 이용하는 게 마음에 걸리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는 그 학생들이 수업에 빠지고 총장선거에 경비를 서게 한 게 말이 도지 않는다는 점이다. 총장선거 집행부 교수들에게 총장선거가 주이고 교육이 부인 것으로 보는데 이게 잘못이란 점이다. 그래서 한 ROTC 간부 학생(R)과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그 집행부가 들을 수 있도록 점잖지만 목소리를 좀 높였다.
나: 자네 왜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여기 있나?
R: 교수님, 저희들은총장선거 경비로 왔습니다.
나: 그래? 학생이면 공부를 해야지.
R: ROTC 대원 자격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나: 그래도 학생이니 공부를 우선으로 해야 하지 않나?.
R: 저희는 학생이기도 하지만 ROTC 부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휘관의 지시에 따른 것입니다.
나: 그래? 지휘관의 지시에 충실하니 좋은 대원이겠구나. 그런 지시를 한 지휘관도 문제이다. 그리고
그런 지시에 따르는 자네도 는 좋은 학생일 수는 없고 훌륭한 ROTC 대원일 수도 없구나.지휘관
과 자네 둘 모두 학생의 본분이 먼저이고, ROTC로 본분이 그 다음이란 걸 모르고 있다는 말이네.
R: 저는 그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 그래? 그럼 이렇게 알아 듣게 말해보자꾸자. 자네가 어떤 이유로 자퇴하거나 또는 징계를 받아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자네는 더 이상 ROTC 대원이 될 수 없단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ROTC에서 탈퇴하더라도 학생신분은 유지된다. 그렇지? 그러면 뭐가 주이고 뭐가
부인지는 명백하지 않나?
그 말에 그 학생은 조용해졌다. 근처에서 보고 있던 교수들이 우리의 대화를 경청하며 내 말ㅇ레 모순이 있으면 한 마디 하려던 눈치더니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나는 투표를 하고 그 자리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이에 대해 두 가지 효과가 나타났다. 첫째는 긍정적인 것으로서 그 후 그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다. 둘째는 부정적인 것으로 나에 대한 것인데. 이는 설명이 좀 필요하다. 그 날 몇 시간 후 우리 단과대학 교수 휴게실에 있었는데 같은 단과대학 내 다른 학과의 어떤 교수(L)가 나를 보자마자 말을 걸었다.
L: 교수님이 투표장에서 한 마디 하셨다죠?
그 말투는 그런 것을 그냥 지나치지 왜 문제 삼느냐는 듯하였다.그래서 나는 ROTC 학생과의 대화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 교수들 투표에 학생을 감시자로 사용하는 건 옳지 않아요. 그건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해요. 그보
다 더 중요한 것은 집행부 교수와 ROTC학생들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죠.
교육이 부이고 다른 활동이 주인 것으로 아는 그들에게 그 역이 맞다는 것을 누군가가 가르쳐야
하는데 그걸 내가 했을 뿐이지요.
그는 할말을 잃은 것 같았다. 사족을 한 마디 하면, 그 교수는 내가 재직하던 대학 출신으로 여라 가지 보직을 맡으며 학과나 대학 발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가 대학 발전을 위해 그런 보직에 있을 때 뭔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해도 그건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그의 대답이었다.
이처럼 학교는 교육이 부로 알고 다른 활동을 부로 잘못 하는 건 교수들뿐만 아니라 항생들도 그러하다. 그 예로 아래의 <사례 2>을 들어보자.
<사래 2> 학생들의 의식문제: 내가 탬프스가 없이 현대 미디어를 사용하는 대학 중 하나의 강의를 맡은 일이 더러 있었다. 가르치다 보니 내가 강의하라고 하는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소위 부실한 교육을 하는 느낌을 주었다. 미디얼호 강의 듣는 중 교육관에서 직접 강의를 받는 부분이 30%인가가 성적에 반영되며 그 성적을 어떤 점수는 몇 %로 주는 할당제도 같은 게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기억한다는 말을 하난 이유는 몇 번 담당하고는 그런 교육을 하 수 없어 스스로 그런 강의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기억이 감감해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그만 두게 된 것은 어떤 일이 생겨서이다. 결석을 4번인가 하면 성적을 주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당시 학생의 일부가 군인이라 그들이 동원훈련에 참가하여 수어에 참여할 수 없었다. 나느 그들에 대해 결석으로 처리했다. 그랬더니 학생 중 일부가 내가 결석으로 출석부에 기재를 하느 모습을 보고 그러지 말라고 요구했다. 자기 친구가 동원으로 훈ㄹ현을 받는데 봐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성여부는 내 소관이고 결석을 하면 그렇게 하는 게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했다. 어떤 학생이 결석으로 되느냐 않느냐는 것을 내입으로 그에게 말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건 국방장관과 교육부장관 등이 결정하지 교수는 아니 되는 것을 되는 것으로 하면 안 되니 그렇게만 알아라고 하고 수업을 진행하려 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은 갑자기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래서 아하 이런 수업에 더 이상 내가 봉사헤서는 안 되갰구나 샆어 그런 수업을 하지 않았다.
이런 교육 외에도 나는 눈먼 돈을 위해 부당한 집행의 개선 등 여러가지 사안에서 개선노력을 시도했다. 그러나 내 목소리가 썩은 생각을 방음장치로 사용하는 영혼에는 귀찮은 시끄러운 소리로 메아리치지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지그런데 지친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니면 그런 일에 무관심하려 하였다. 그렇게 하니 나에 대한 평가가 나아지는 듯 했다. 이게 그들이 바라는 버티기 작전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권초기에 흔히 나타나는 소위 공무원 복지부동이나 기타의 버티기 작전으로 개혁자를 물먹이는 방법과 같은 작전일 것이다. 왕따는 더 적극적인 물먹이기 작전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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