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웃는 까닭 2015. 12. 26. 14:48

 

 

   홍대입구에서

 

홍대입구엔 늘 물살이 거세다.

어쩌다가 발을 헛디디면

목까지 잠기는 쌀쌀한 냉기가 싹둑

팔다리를 잘라간다. 아린 상처에 새로이

지느러미가 돋아나는 간지러움

늦봄 한나절의 나른한 압구정동에선

발을 헛디디면 늘 그렇게

싱싱한 인어로 부활한다.

 

아무거나 퍼먹은 식욕 탓에

누렇게 뱃살이 끼면

가벼이 날리는 풍문 위로 떠오르기 위해

오장육부를 토해내 그 틈새에 끼인 일상들을

혼탁한 햇살에 요란스레 헹구느라고

저렇게 뭐든 떠들어댄다.

 

다 토해내고 헹구어낸 후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공복감

짭짤한 경구(經句)로 배를 채우고 나면

갈증으로 타오르는 목구멍

이리저리 목을 비틀면서 아직은

지느러미가 다 자리지 않은 몸통들만이

제자리에서 자맥질하며

떠밀린 만큼만 떠밀면서

흰 거품을 가득 아가미에 물고

투명한 백일몽 속으로

춤추듯 꿈꾸듯

익사해 간다.

 

* 이 시는 처음에 '명동에서'가 제목이었지만

유행이 압구정동으로 넘어가서 '압구정동에서'로 바꾸었다.

그 후 그 유행지가 홍대입구로 바뀌었고  글 제목도 그 유행을 따라갔다.

언제 어떻게 유행이 흘러 가고 이 글의 제목이 또 어떤 것으로 그에 따라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