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논어, 도덕경 등)

공자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매미가 웃는 까닭 2015. 12. 26. 03:41

 

 

(이 동양고전에서는 나 나름대로 고전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동양고전의 학문수준은 겨우 선인들이 써놓은 것을 해석하는 수준이라 이것을 탈피하고자 함이다. 그러기 전에 먼저 다음 칼럼을 보이고자 한다. 이건 어디선가 활자화한 것이다.)

 

 

공자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고전적 3대 발명품인 종이, 화약과 나침반을 발명한 곳은 동양인 중국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각종 산업에 활용되어 꽃피우게 된 곳은 서양이었다. 만물이 음양(陰陽)으로 구성되었다는 사물의 대립개념도 수천 년 전 중국에서 먼저 개발되었다. 동양에서는 그 개념이 과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점을 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반면에, 서양에서는 그 개념이 양자와 전자, 물질과 반물질과 같은 대립개념의 과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무엇이 동서양 사이에 이런 차이를 발생시켰을까?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동서양의 학문적 환경의 차이가 아닐까? 특히 그런 환경을 제공한 동양학문의 대부인 공자와 서양학문의 대부인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학문적 접근 방법의 차이가 그 원인이 아닐까? 이 엉뚱함을 확인해 볼 요량으로 공자사상을 집대성한논어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플라톤의 대화를 읽어보았다.

 

읽어본 결과, 나의 엉뚱함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공자는 인()을 자기 학문의 근본으로 삼았지만 정작 인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논어 어디에도 명확히 정의하려 시도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직접적으로 인을 정의하려는 대신에 이런 행동을 하면 인이 적고 저런 행동을 하면 인이 많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다루었다. 논어는 학문서가 아니라 단지 도덕서인 셈이다. 반면에 플라톤의 대화를 읽어보면, 소크라테스는 주어진 개념을 다른 개념들로부터 구별 짓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밝히려 노력하는 분석적 접근법을 사용함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말이라면 누구도 반론을 하지 못하도록 동양에 너무 우뚝 선 공자. 그래서 그가 가르친 도덕이 동양학문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었다. 그런 류의 도덕이 지나치게 지배하는 사회는 흔히 그렇듯, 동양은 종종 부모상을 3년 상으로 할 건지 1년 상으로 할 건지와 같은 것을 논쟁하며 에너지와 시간을 허비하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어 논어 몇 줄이나 읊으며 거드름을 피우는 비생산적이고 소비계층일 뿐인 사대부 계층만이 대접을 받았다. 그런 사회에서는 애초부터 톡톡 튀는 발상이 싹을 틔울 수 없었고, 그런 발상을 먹고 자라는 과학이나 산업은 천민이나 서민의 차지가 되어 발전을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반면 소크라테스의 분석적 접근법에 영향을 받은 서양에서는 과학이 발전하고 각종 산업이 찬란히 꽃을 피우게 되었으리라.

 

몇 년 전에 일부 식자들 사이에 공자가 죽어야 한다거나, 살아야 한다거나 하는 논쟁이 있었다. 그는 죽거나 살아야 하는 차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만약 그가 소크라테스의 역할을 하였더라면 태어나는 게 더 나을 일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기야 소크라테스도 동양에서 태어났더라면 별수 없이 또 다른 공자가 되어버렸을 동양사회인지 또한 모를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