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시집) 제3부 어머님이여!
안개(2)
매미가 웃는 까닭
2015. 12. 25. 10:43
안개(2)
안개 밖에서는 눈이 트인다.
눈이 트이니 마음은 오히려
시야 안에 갇히어
눈에 보이는 끝점이 목표이고
거기까지만 마음이 미친다.
마음이 갇히니 유혹에 약하다.
길섶에 즐비한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들이
가던 길을 되돌아와 만져보다가
가져가고 싶은 유혹에 꺾어버린다.
아름다운 것들이란 있던 그대로 두어야 했음을
깨달을 때는 이미 시들어버리었다.
그것들을 허공에 내던지고 갈 길을 재촉하지만
길이 아직도 아름다운 것들로 뒤엉켜 헷갈리고
향기로움에 현기증이 나서 그만 주저앉는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들이 미워지기 시작한다.
미워하던 것들이 눈에서
안개로 끼이기 시작한다.
안개 속이라 한치 앞조차 보기 어렵다.
마침내 마음이 트이기 시작한다.
눈으로 보이는 끝점은 출발점일 뿐
거기서부터 마음이 뻗기 시작한다.
어디를 봐도 하얗기만 해
뒤돌아보아도 아쉬워 할 것 하나 없고
길이 보이지 않기에 어디든 길이므로
서두르지 않고 한 발짝씩만 나아가리라.
그때 내 발길에 뭔가 걷어차여
손으로 더듬어 보니 팻말 같다.
읽으려도 읽을 수 없으니
읽으려 하지 말자.
아예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하자.
그러자 뭔가 읽혀진다.
“안개지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눈으로 보면 미워지던 것들을
마음에 품으십시오.
사랑으로 익을 것입니다.”
마침내 눈이 트이기 시작한다.
*팻말: 여기서는 이정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