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시집) 제2부 그때 그 시절
겨울나무(2)
매미가 웃는 까닭
2015. 12. 14. 23:08
겨울나무(2)
과즙이 충만한 과일이랑
가진 모든 것을 베풀고
뼈만 남은 모습이 초라하다.
새들도 품을 떠난 지 오래다.
흑백만이 허용되는 겨울 들판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초라한 그림자로
죽은 듯 서 있어야 할 것이다.
풍만한 육신을 수시로 흔들던 바람을
몸짓마저 버린 앙상한 팔 사이로
이제는 쉽사리 흘려보낼 수 있다.
새들이 날아간 남쪽을 향하여
꽁꽁 언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로 그 애들이 날아갔지 하고
겨우 내내 되새김질하며 서 있어도
흔들어 새들을 보내던 팔을 움츠릴 수 없지.
겨울은 점점 더 깊어가고
축복처럼 내리는 눈의 흰 무게에 눌려
비굴하기 쉬운 거무스름한 이웃들보다
더 가난하고 더 외롭고 더 초라하게
더 검은 그림자로 죽은 듯 살아야지
그러면서도 깡마른 등을 곧추세울 수 있는
겨울 들판의 표상으로 살아가면서
하얗게 얼어붙은 들판에 뿌리를 박고
아픈 관절 마디마디에는 연초록 잎눈을 키우고
시린 손가락 끝마다 연분홍 꽃눈을 키워서
희미한 기억처럼 새들이 날아올 때
얘들아, 어서 오거라 말없이 소리 지르며
천 개 만 개의 꽃다발을 흔들어주어야지.
겨우내 그리움에 참아온 눈물은
봄비에 묻혀 몰래 흘려보내야지.
*작시 후기: 허무하고 쓸쓸하고 외로운 건 인간만이 아닙니다. 훌훌 털고 일어나 그 인생에 다가가 겨울을 날 생각이어요. 그게 인생의 봄을 기다리는 길일 것 같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