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제5강 실마리를 찾아라
제5강 실마리를 찾아라
감성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첫 걸음은 그런 대화를 열어주는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잠긴 집에 들어가려면 열쇠가 필요한 것처럼, 대화와 글쓰기에서도 그 열쇠인 실마리가 필요하다. 특히 글쓰기의 실마리는 글쓰기의 절반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글를 쓰는 사람은 좋은 실마리를 찾는 데 상당히 고심한다. 대화와 글의 실마리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말하는 것 모두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대화 중 사용하는 단순한 단어도 그런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대화의 소재가 꽃, 낙엽, 저녁놀, 바다, 추억 등이라면 그 소재 자체가 아주 좋은 감성적 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감성적 대화를 위한 좋은 실마리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감성적 대화로 이끌 수 있으려면 그런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글쓰기로 이어가려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은 대화의 주제와 대화의 소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평소 다양한 지식을 얻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냥 아는 것이 많은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아는 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의 계발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강과 다음 제6강에서는 ‘울퉁불퉁’이라는 하나의 의태어(모양을 본떠 만든 말)를 실마리로 하여 감성적 대화와 글로 이어가는 과정을 예시할 것이다.
도봉산은 쓰레기장♥♥♥
어느 초여름 우리 가족은 도봉산으로 소풍을 갔다. 산 입구 계곡에서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이 바위 저 바위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넓적한 바위에 누워있기도 하면서 놀았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아주 많았는데 모두들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때 큰딸이 더 높이 올라갔다 오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와 작은딸은 그 자리에서 놀고 싶어 우리끼리 인수봉의 큰 바위 밑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기로 했다. 도봉산이 낮은 산이기는 하지만 산은 산인지라 등산길이 큰딸에게는 제법 힘든 모양이었다. 아무렇게나 버러진 듯 돌들이 여기저기 길위와 길가에 흩어져 있고 바위가 흰 배를 드러낸 채 길을 가로막고 드러누워 있었다. 등산길은 그런 돌과 바위를 요령 있게 피해가며 실핏줄처럼 얼기설기 잘도 이어져 있었다. 지금은 도봉산의 등산길이 많이 개발되어 좋아졌지만 우리 가족이 가족소풍을 갔던 수년 전에는 길이 지금보다 더 좁고 험했다.
큰딸의 숨소리가 제법 커졌다.
“재인아, 힘들지?”
“응, 힘들어. 아빠는?”
“나도 좀 그래.”
지금은 낭만 같이 들리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돌과 바위가 많은 시골에서 태어나 산에 소를 풀어놓고 쇠풀을 뜯기며 논밭을 매며 삶이 쉽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소는 대부분 어린이나 노인들이 돌보았는데 나는 내 소와 동네 소가 정해진 계곡을 벗어나지 않도록 계곡 안으로 쫓으면서 이 산 저 산으로 뛰어다니었다. 그 덕택으로 어른이 되어도 가끔 등산을 하는데, 누구보다 잘 하는 편이고 그 덕에 몸도 튼튼한 편이다. 어려서 체력을 키우면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을 유지하기가 쉽다. 도봉산 자체가 내 고향마을의 앞산보다 별로 높지 않다. 그렇지만 나도 힘들다고 그 애의 말에 동의하였다. 딸이나 아들과 대화할 때 그들의 말에 동의해주는 것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좋은 방법이다,
“아빠, 울퉁불퉁해 힘들어. 아마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 아빠는 어때?”
“나도 재미있다. 네 말대로 울퉁불퉁해서 더 재미있나봐.”
“응, 그런 것 같아.”
울퉁불퉁!
이 말은 단순한 의태어이지만, 이 말이면 딸과 재미있게 대화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머리를 스쳐가는 것들을 잘만 활용하면 멋진 감성적 대화가 되리란 예감이 들었다. 그때 마침 큰 바위가 자기 등 위에서 잠시 앉아 쉬어가라는 듯 길가에 등을 구부려 엎드려 있었다. 그 등 위에 걸터 앉아 물도 마시고 과자도 먹으면서 ‘울퉁불퉁’을 실마리로 대화를 하면 그 애가 힘든 것을 잊게 해주고 글 쓰는 이야기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재인아. 이 바위에서 좀 쉬었다 갈까?”
“응. 아빠. 그러고 싶어.”
바위의 좀 넓적한 곳을 골라 앉았다. 배낭에서 물을 꺼내 그 애에게 마시게 하고 나도 마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계곡에는 돌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재인아, 아까 네가 길이 울퉁불퉁하다고 했지?”
“응.”
“또 울퉁불퉁해서 더 재미있다고도 했지?”
“응. 근데. 그건 왜 물어?”
“울퉁불퉁해서 더 재미있다는 말이 너무 멋진 말이라서.”
“히히히.”
“이런 도봉산을 누가 만들었을까?”
“하하하. 그야 하느님일 테지.”
“이 못생긴 돌과 바위를 정말 하느님이 만들었을까?”
“그럼 누가 만들어. 아빠가?”
“후후, 내가 그럴 수 있으면 좋지. 네 말대로 하느님이 만들었겠지. 근데 저기를 봐라.”
나는 손으로 계곡에서 물길을 따라 아무렇게나 깔려 있는 바위와 그 많고 많은 돌을 가리키고, 이상하게 구부러진 나무도 가리키고, 죽어 넘어진 나무도 가리키고, 제멋대로 구불구불한 도랑도 가리켰다.
“아빠, 참 좋아. 바위, 나무 모두 좋아. 울퉁불퉁, 뒤죽박죽, 구불구불, 모두 제멋대로야.”
“울퉁불퉁, 뒤죽박죽, 구불구불, 모두 제멋대로. 하하, 재밌다. 하느님이 재인을 재미있게 해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나봐.”
“하하. 하느님이 실수로 만든 것일 거야.”
“하느님이 실수도 하시네.”
“하겠지.”
“재인아. 그렇다면 못생기고 추한 돌, 추한 바위, 썩은 나무 등등을 보면 하느님도 엄청난 실수장이네.”
“응. 그래서 하느님이 그들을 모두 여기에 버린 것 같아. 여긴 하느님의 쓰레기장일 거야.”
“하느님의 쓰레기장……. 와, 대단히 멋진 표현이구나.”
“히히히.”
“하하하.”
도봉산이 우리 둘의 웃음 소리로 더 유쾌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보니 꽃들도 우리를 따라 웃고 산새들도 덩달아 어깨를 덜썩이며 신나게 찌르륵 거리며 날아다녔다. 바람이 우리 웃음을 산 아래 예인과 엄마에게 전해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럴려고 하는지 바람이 살짝 우리 얼굴을 스치더니 우리의 웃음을 보듬고 산 아래로 미끄럼을 타고 내려 갔다.
실마리: 울퉁불퉁→뒤죽박죽, 구불구불, 제멋대로
→쓰레기→하느님의 쓰레기
→ 도봉산은 쓰레기장
이렇게 실마리를 찾았으니 그 실마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곤 하여 이야기를 길게 이어갈 수 있다. 실마리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고 아래의 ‘제6강 반전은 짜릿하다.’에서 이 실마리를 이어가는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다.
<어른을 위한 시>
해수욕장에서
- 대천 해수욕장-
치부만 가리고
비닐튜브에 몸을 누이니
둥둥 물위로 떠오른다.
그 동안 잔뜩 껴입은 무게로
세상 바닥에 가라앉은 채
허우적거리기만 했구나.
하늘에 일렁이는 구름을 쳐다보며
물결에 몸을 맡겨보니
파도가 등 뒤로 일렁이며 흘러간다.
세상사도 등 뒤로 흘리면 그만인데
엎드려 팔을 저어 헤엄치다가
짠물만 실컷 들이키고 말았었구나.
일렁임이 지루하여
튜브를 깔고 엎드려서
한 아름 안아서
한 아름 버려본다.
사랑도 미움도 세상사도 모두
이처럼 안아서 버리면 그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