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인이여, 아바타와 망령에서 벗어나자
한반도인이여, 아바타와 망령에서 벗어나자
한반도인은 과거에서 못벗어나는데 특히 다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 윤리와 도덕 및 학문에서 공자와 맹자 그리고 노자와 장자에서 못 벗어난다.
2. 한의학에서 허준에서 못 벗어난다.
3.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김대중에서 못벙어난다.
4. 일본과 중국에서 못 벗어난다.
위의 넷의 실체와 그들로부터 못 벗어나서 발생하는 폐혜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1. 윤리와 도덕 및 학문에서 공자와 맹자 그리고 노자와 장자에서 못 벗어난다.
우리는 툭하면 논어에서 어떻고 저떻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어떤 정치적 지혜나 살아가야 할 일상지혜 등 여러 가지 교훈 내니 지침을 고전에서 찾는데 그런 것을 중국문헌에서만 찾는다. 우리나라에 정약용이 무슨 저술을 지었고 이이나 이황이 무슨 책을 썼고는 하지만 그들의 글은 있으나마나하다. 실제로 내가 읽어봐도 별로 일고싶지 안은 게 목심심서이고 이이의 격몽요결이다. 서양에서는 민주주의가 어떻고 선거가 저떻고 증기기관차가 요렇고 철도가 조롷고 하는 시대인데 정약용의 글은 미개 사회의 원님의 통치방식인 것만 같다. 그처럼 우리의 사고방식은 너무나 고리타분하다. 그래서 공자가 어떻고 노자가 저떻고 한다.
이제 공자를 논해보자. 각 지역에 향교라는 게 있다. 이는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인데, 그 지역에서 제1양반이 가장 먼저 제사를 지낸다. 그런 향교에서 제사를 지낼 때 어느 성씨를 가진 집안이 가장 먼저 술잔을 따루느냐가 그 지역 제1양반이라 한다. 그게 우리의 신분기준이다. 내가 공자를 비난하는 게 내 성씨가 별로인 것이거나 상민이나 심지어 천민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 내 성을 가진 가문을 먼저 말해보자. 나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도 그런 향교에서 제1번으로 제사를 지내는 내노라 하는 양반이고 내가 어릴 때 그런 것을 자랑하는 집안 어른이나 다른 집안의 말을 많이 들었다. 또한 그 지역의 주요인물을 모시고 기리는 서원이란 곳이 있다. 이곳은 그 지역의 내노라 하는 5개의 집안 즉, 그 지역의 제1양반-제5양반의 조상 중 최고의 사람을 모시는 곳이다. 그곳에서도 내 집안은 조상 한 분이 제1로 기리는 서열 1위인 양반이다.이다. 조상이 있는 건 자랑스런 일이겠지만 그런 것은 오히려 우리를 망치게 한 제도라 나는 그런 것을 별로라고 생각해 왔다. 요컨대, 내가 내 집안의 톰플렉스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라는 것은 알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채 내가 왜 위와 같은 말을 하는가? 내가 이 블로그의 다른 글에서 많이 언급했듯이, 위 리스트의 첫 번째로 올린 공자는 하나도 존경할 인물이 못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그럼 왜 공자는 그러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가? 오늘날 동양이 서양에 뒤진 이유가 공자를 너무 모신 탓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학문은 별로 쓰잘 데 없는 것인데도 말이다. 자 이제 이런 주장을 펴는 이유를 말해보자. 공자의 문제점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A, 독재적 사고를 가르쳤다.
B. 학문을 대충하여 동양 학문을 망쳤다.
A. 독재적 사고: 군의신강이니 하는 3강과 군신유의니 하는 오륜은 모두 임금을 무조건 모시도록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그의 정신세계의 반영이다. 그 자신만 그러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 제자오 후세에 그러도록 가르치게 한 게 그의 죄이다. 그가 우뚝 서다보니 그를 행교에 모시다보니 자유니 인권이니 하는 개념은 아예 파고들 여지가 없었다. 아무리 왕의 자섹 어떻고 저떻고 말했지만, 왕이 무슨 짓을 해도 왕을 잘 모시고 부모가 무슨 짓을 해도 부모를 잘 모시도록 가르쳤다. 그런 형식논리로 모시는 근거를 제시하다보니 실질적 논리, 즉 왕이 왕 노릇 잘못하면 폐지(지금의 탄핵)이 불가능하다. 부모가 부모 노릇을 못하면 고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형식은 형식을 낳아 죽어서 추모기간을 위해 빈소를 차리고 상복을 입는 기간을 3년으로 하는 3년상이니 1년으로 하는 1년상이니 하게 되었다. 실제로 우리 역사에 이 문제로 송시열이 결국은 사약을 받기도 했다.
위와 같은 논리가 우리에게도 적용되어 수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본처와 두 자식을 둔 경찰관이 처자를 버리고 첩과 놀아나다가 나이들어 직업도 없고 정과 돈을 다 갖다준 그녀로부터 버림을 받았나 보다. 그러니 자식에게 모시라니까 두아아이들이 거부하자 그가 법원에 돈을 주게 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법원이 두 아들의 수입이 이러이라 하니(크게 많지도 않았는데) 각자 얼마씩 아비에게 주라는 판결을 냈다. 이게 말이 되는가? 그 두 아들이 자신들의 자식이 있다면 사교육비가 많이 들텐데. 미혼이라면 결혼비용과 주택비용이 많이 드는 시대에 미래 투자를 할 돈으로 무책임한 늙어빠진 아비의 생존책임을 지다니! 그런 책임은 국가가 져야하는데 낳아주기만 한 생물학적 부모라는 지극히 형식적인 이유로 부양 책임을 잘 배우지도 못했을 자식에게 뒤집어 씌우다니! 지금도 자식이 있으면 무모가 노년에 아무런 국가적 경제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런 형식적 논리는 민법에도 부메랑으로 나타나 있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않아도 자식이란 이유로 부모의 유산을 주장할 수 있는 게 그런 예이다. 민법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치적 상황도 이런 논리에 젖어 있다. 왕을 무조건 모시다 보니 왕은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의 환심을 사는 노력으로 나타나 남을 모함해도 왕만 움직이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게 조선 시대에 흔했던 각종 사화(무오사회, 신묘사화 등 상대방을 깡그리 죽인 대량 살인사건, 요새의 holocaust))가 일어났는 데 그게 유학을 받아들인 탓이다. 그런 모함이 성공하자면 세력이 필요해 출신지역, 모시는 스승, 집안 등으로 뭉치게 되어 계파가 나온 게 당파이다. 그 당파가 새끼를 치고 하여 이리저리 합치고 하던게 4색 당파이다. 그래서 왕비에만 뽑히면 권력을 잡는데 그 왕비가 수렴청정을 하면 그 가문의 대박이 된다. 명종 때 문정왕후라는 독녀가 생겨 정적은 다 죽이었고 나중 풍양조시와 안동김씨(사실은 그 분파로서 서울에 사는 장동김씨)가 가문위 딸이 왕비로 갔거나 또는 그 왕비가 수렴청정을 하는 바람에 정권을 잡고 무소불위로 전권을 휘둘렀다. 그래서 썩고 썩어 암행어사가 필요했고 그마저 썩은 자가 많았고 신진새력의 등장인 과거제도고 썩어 매관먀직이 횡행하였다. 드디어 고종을 왕으로 삼는데 성공한 이하응이 대원군(와의 아비, 왕비 아비는 부원군)이 권력을 잡아 쇄국정책으로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정책을 폈고 왕비가 된 민비가 권력을 노리니 절대권력이란 분담할 수 없는지라 이들 대원군과 민비의 구부간 싸움에 나라가 망하였다. 이게 다 공자가 가르친 무조건 왕을 무시라는 공자의 유학의 폐해다.
B. 동양학문을 망침: 공자의 학문적 태도나 업적에 대한 비판은 이 블로그의 다른 글에도 많으니 거기를 살펴보자. 여기서는 그 내용을 조금 요약한다.
플라톤이 쓴 책으로 소크라테스의 말을 남긴 대화라는 책을 읽어보면, 소크라테스는 어떤 개념을 논하면 그 개념의 본질을 논한다. 분석적 접근법(analytic approach))을 사용해서 말이다. 그러나 공자는 그의 학문적 기본 개념이 인이라는데, 논어 어디를 읽어보아도 인이 뭔지 그 본질을 말한 곳이 없다. 논어 학이편의 세 번째 글인지 하는 곳인가 아니면 그 근방의 글에서 이러면 인이 많고 저러면 없다는 식으로 인의 드러난 현상을 말했지 그 본빌을 파고드는 말 하나도 없다. 도데체 본질을 모르고 무슨 학문을 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한 마디로 대충대충 학문을 하고 이거 외워 식이다. 이런 학문적 접근법을 총체적 접근법(holistic allproach)라고 한다. 이 접근법은 아래 '2. 한의학에서 허준에서 못 벗어난다.'에서 설명한다. 그런 공부방법이 지금의 고등학교 교육에도 나오는 공부방법이다. 내가 대학의 재직시에 고등학교 교사가 시간강사를 했는데 학생들의 불평은 이랬다. 설명을 하지 않고 내용을 적어주고 무조건 외우라고 말했다 한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식으로 공부하고선 고등학교를 나왔을 것이다.
동양학문의 대부가 그러하니 그 다음은 말해 무엇하랴. 맹자도 말뿐으로 뭐 본질을 말해보적 없고 노자도 그렇고 장자도 그렇다. 그게 공자의 죄이다. 노자의 죄는 아닌가? 글쎄다. 동양에서 공자는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으니 노자도 다소 책임이 있지만 공자의 책인 가장 크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라디오에서 고전으 강의하는 사람들이 논어를 논하고 공자의 후학들이 하는 말을 되풀이 한다. 거기에는 우리 것이 없고 있어도 공자식 내용이다. 어서 공자의 아바타들가 하는 강의 수준을 버리고 좀 소크라테스적 강의를 하는 시대가 왔으면 한다.
2. 한의학에서 허준에서 못 벗어난다.
공자의 대충주의는 한의학에서 총체적 접근법(holistic allproach)으로 나타난다.
<다음에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