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국민이 되는 길

I.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1)

매미가 웃는 까닭 2016. 3. 1. 09:01



I.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1)


 (1) 개요


우리나라 사람이 1등 국민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것이다.  전에 누군가 이런 주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지 못해 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영어의 공용어 주장에 공감한다. 물론 한글과 더불어 하는 공동 공용어로 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런 후 영어와 한국어 사이의 경쟁으로 어느 언어가 살아남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존댓말에 거부감이 많은 젊은 층에 영어 열풍이 불면 의외로 쉽게 영어의 승리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아마 현세대가 다 사라지는 20-30년 정도 지나면 영어가 공용어가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그러나 워낙 영어를 못하는 젊은이도 많아 영어가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 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것인가? 한국어는 존댓말이 있어서 한국의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한국의 발전을 저해하는지를 뒤에서 말하기로 하고 우선 존댓말의 유형에 대해 알아보자. 옛날에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 등의 신분 또한 친족 등에서 학렬(숙부, 조카, 할아버지 등의 친척 내 서열)이라는 관계 등을 고려해 존댓말의 수준을 결정했다. 그때는 하소형, 하게형 해라형 등이란 이름으로 존댓말이 세분화되었고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었다. 낮은 신분에게는 "이걸 해라."와 같이 해라가 있어 해라형이고, 상대방을 높이는 말은 '그렇게 하소서."와 같이 하여 하소형이다. 높일 필요가 없지만 아주 낮추기에는 그렇고 그럴 때 "그렇게 하게."라고 하게형이 있다. 하소형은 높임말이고 하게형은 예삿말이고 해라형은 낮춤말에 해당한다. 이 글에서 존댓말이란 용어는 이들 세 가지, 즉 높임말, 예삿말 및 낮춤말을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할 것이다.  



(2)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하는 이유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된 이유는 존댓말의 부작용 때문이다. 이 부작용은 일상생활에서 싸움이 많은 것을 비롯해, 우리 교육계에서 실력자를 배제시키는 일, 정치계의 계파문제 등 모든 것이 이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들을 하나하나 모두를 살펴보기는 힘들므로 몇 가지만 살펴보자.


1) 일상생활에서 부작용

첫째,  우리말은 존댓말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서회적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는 언어이다.  "네가 몇 살인데  왜 말을 놓느냐!"며 여기서도 싸움 저기서도 싸움을 한다. 한 살 차이로 존댓말을 해야 하고 안 그러면 왕따시킨다.  존댓말이 없는  미국은 할아버지도 친구처럼 지내며 서로 이름을 부르는 정다운 가족이 많다. 아마 영국이나 기타 유럽에도 미국에서와 유사할 것이다. 우리 같으면 후레자식들이지만 거기서는 그게 문화이다. 내가 교수로 임명되던 당시의 학과장의 성씨는기억하지만 이름을 금방 생각나지 않는다. 그의 성을 부르거나 아예 안부르며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가 그(B)와 이런 대화를 했다.


나: 내가 당신의 성씨(last name)과 이름(first name) 중 어느 것으로 부르는 게 편하냐(comfortable)?

B: 이름을 부르는 게 편하다.

나: 우리는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학과장처럼 boss에게 성씨로 부르는 게 관례다. 내가 여전히 성씨로 부르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B: 성씨를 부르면 친하지 않음을 나타내며 offending(기분 나쁘다고 번역함이 좋을 듯)하는 기분이다.

나:  알겠다.


그렇지만 나는 그후에도 계속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게 꺼림칙 해 그냥 호칭 없이 대화를 했다. 그는 내 이름을 부르는데도 말이다.

 

중국어에는 존댓말이 없어 10살 차이까지도 친구가 된다고 한다. 일본어에는 존댓말이 있지만 5살 차이는 친구가 된다고 한다. 우리도 내가 어릴 때는 5살 차이도 벗하여 친구가 되었다. 타향이면 10살 차이도 벗한다고 하여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대학에서 지금 한 살 차이가 나도 친구가 될 수 없다. 중국이나 서양에는 없고 우리와 일본에만 있는 못된 말인 선배와 후배라는 단어를 써 가면 서열을 매긴다. 우리는 후학이나 하는 말은 있는데, 선배나 후배는 일본에서 건너온 말인 것 같은데 이에 대한 확싱은 없다. 중국어에는 선배라는 말이 없어 그 소리를 들으니 생소하다는 만주출신인 조선족으로부터 들었다. 우리는 중국이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 한다 하여 자랑삼아 말하기도 했다. 중국엔 황제 앞에서도 신하가 서서 말하는데, 우리는 왕은 저 상단의 의자에 앉고 신하는 저 아래 마룻바닥에 무릎 꿇거나 엎으려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중국 사신이 이씨조선(이 경우 조선이라 하면 북한을 지칭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씨조선이라 한다. 이씨 조선은 일본인이 그 당시 조선을 비하시키기 위해 만든 말인 걸 알지만, 이 경우 대처할 적절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쓴다.)을 동방예의지국이라 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동방예의지국은 지배자에 무조건 복종하던 시대의 말이라 좋은 말 같지가 않다. 어쨌건 서열이  정해지거나 정해지지 않을 때가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는 게 우리네 말이다. 


2) 학문발전의 저해

존댓말은 연장자를 어른으로 모시고 나이가 적은 사람은 아랫사람으로 취급함을 말한다. 학계에서 이 문제는 저해가 심각하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실력을 쌓기 위해 유명한 교수 밑에서 몇 년간 post-doc(박사후과정)도 하고 나이가 든 선배가 왔을 때 후배가 교수로 있는 대학에서 교수 모집이 있어 지원하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한 실태이다. 표면적으로는 나이가 있으면 발전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나이 어린 사람이 낫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자기가 대장노릇을 하는데, 자기보다 나이가 든 선배가 오면 모셔야 하는 입장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실력이 출중하면 학생들이 그의 강의실에 모이기는 게 그런 거부감을 더 강화시킨다. 내가 미국서 교수하다 돌아왔을 때 그와 같은 이유를 직접 들어 나를 받아주지 않겠다고 한 대학도 있었다.


학문 이야기를 하였으니 그 점을 좀 더 말해보자. 우리나라 유학생은 대부분 영어도 안되기도 하여 미국에서 살아남지 못해 유학으로 필요한 최소한이 박사학위만 따면 그냥 돌이온다. 전두환 정권시절에 대학이 많이 늘다보니 석사만 하여도 교수가 되던 시절이라 미국서 석사를 하고난 후 박사 논문 을 쓸 수 있는 자격시험인 prelim(preliminary exam의 약칭)에서 불합격되어 퇴학된 사람도 한국에 와 교수를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미국서 교수를 하거나 더 실력을 쌓는 과정을 밟다 보면 나이가 든다. 나이가 차면 대학교수 지원시 불리하므로 한국 유학생은 박사학위를 하면 대부분 곧장 들어온다. 그래서 실력이 없어, 노벨상교육 시리즈에서 말했듯이, 이런 게 대학교수는 실력이 형편 없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박사학위에 대해 말하면 그건 연구를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기초지식을 겨우 배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으로 학문의 대가가 되기가 힘들어 이공계에서는 박사후과정 중 대단한 실력을 가진 대가(노밸상을 탈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유수한 지도교수) 밑에서  박사후과정(post-doc)을 한 5년 쯤 하여야 진짜 실력자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유학생은 실력이 없어서 박사후과정을 아예 못하거나 할 수 있어도 한국에 오려면 나이가 어린 게 더 나아 1년 아니면 잘해야 2년간 박사후 과정을 돌아온다. 이게 오리나라 교수위 실력이 노벨상을 못타는 주된 이유라고 보면 된다. 중국에서 노벨상을 타니 우리는 연구비가 부족하여 노벨상을 못탄다고 하는 보도를 본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그보다 실력부적이 진짜이유이다. 실력이 없으면 연구비를 아무리 주어도 성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 내가 이 블로그에서 노벨상 교육이란 카테고리의 여러 글에서 이런 주장에 대해 길ㄹ게 썼으니 거기를 읽어보기 바란다. 



분야에 따라 다소 다르긴 해도 노벨상을 못타고 후보도 못 오르는 국내의 지도교수 밑에서 박사를 하면 실력이 아무래도 미국의 유수대학의 유수한 지도교수 밑에서 지도를 받고 박사후 과정을 오래 한 사람과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이 형ㄷ편 없을 것이다. 또한 미국에서 박사를 하여도 별 볼일 없는 대학에서 별볼일 없는 교수 밑에서 하여 그곳에서 교수도 못하고 박사후과정도 제대로 못받고 일찍 돌아와 자리를 먼저 잡아 대장이 된 사람도 맣ㅎ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보다 나은 실력을 쌓느라 늦게 온 사람을 자기 윗 사람으로 모시기 싫어 배척하게 된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내 동료 교수 중 하나는 미국서 그다지 유명하지 않는 대학에서 박사과정 중  prelim에서 낙방해 퇴학된 후  한국에 돌아왔다. 앞에서 말했지만 그 당시 석사만 있어도 교수가 되던 시기였다. 그는 학과장도 하고 학장도 했다.그런데 누군가 아마 이렇게 말하겠지. 그는 우리나라에는 맞는 사람일 수도 모른다고 . 맞아 그렇지. 하하.



3) 정치판의 파당 발생

정치판에는 파당이 있지만, 그 파당이 특히 많은 게 동양의 특징이다. 그 중에서도 파가 터지도록 파당간 싸움이 가장 심한 게 한국이 아닐까 한다. 존잿말이 존재해서 상하관계가 분명해 맏형, 적자 등의 호칭이 가족적 용어가 붙는다. 나아가 형님이니 아누니 하며 부르는 게 비일비재하다. 정치판에서 친노니 친박이니 하는 계파가 발생하기 쉬운 게 좋게 말해서 가족적 분위기이니 게 이런 호칭이 있다.


한때 상도동계니 동교동계니 하던 사람들도 다 그들 그룹내 형님이나 아우니 하여 지낸 계팡이다. 그때는 군사독제라 그런 계파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친노니 친박이나 비노니 비박이나 친문이니 진박이니 안**계니 김**계니 천**계니 아휴 많기도 해라. 이들이 이처럼 떼로 몰려다니는데는 다 형이니 아우니 좌장이니 하는 서열이 있고 그 서열에 존댓말이 오가 그런 서열 형성에 기여하고 형은 아우를 돌보며 거느리고 아우는 형님을 모시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예, 예, 예라고 할 것이다. 그러다가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면 형님지역에 아우가 형님은 퇴물이요 하며 처리하는 게 정치판이다. 장군의 아들이란 영화에서 보듯, 일제시대의 깡패집단에서는 의리나 있었지 지금은 그런 의리도 없이 형님 지역구에 내가 나가니 형님은 물러나사오 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의라를 말했으니 의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의와 도덕이 중요하다. 의리는 도덕이 아니다.  



  (위 글은 말이 아직 부족하다. .. 나중에  고치고 더 쓸 것임)


II.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2)


여기서는 영어를 공용어로 하면 문제가 되는 점에 대해 쓰고자 한다.



(1) 영어를 공용어로 하면 잃게 될 것


1) 문화유산

중국도 한자가 표기상 너무 어렵다고 한때 한자의 폐기하고 로마자 표기로 바꾸기로 검토헌 바 있다. 베트남이 프랑수인드리 들어와 프랑스식 문자로 베트남어를 표기한 것과 같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고 많은 문화적 유산 때문에 한자를 폐지하는 대신에 간체자를 만든 것으로 안다. 간체자를 만들다 보니 고유의 한자에 간체자까지 있어 이 또한 한자 자체도 이중어적 문제가 발생하여 더 이상 간체자를 만들지 않는다. 이런 어려운 문자를 벗어나도록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그러나 세종도 하지 못한 일이 있었는데, 우리는 문자보다 더 문제가 된 복잡한 것은 경칭어(존댓말)인데 이는 어느 누구도 바꾸기가 어렵다. .그레서 영어라는 처방이 필요하다. 중국은 유산문제가 중요하지만 미래 발전에 존댓말 같은 문화적 장애요인은 아니다. 우리는 한글 문화유산이 있기는 하지만 경우 몇 백년이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 발전요인에 존댓말이 장애요인이 되고 있아 중국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2) 최만리의 총대매기

세종이 한글을 만들 때 앞장서 반대한 사람이 최민리인가 한다.

(나중에 더 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