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대통령에 관한 소고

I. 우리 현대사를 있게 한 원인에 대한 소고

매미가 웃는 까닭 2016. 2. 15. 13:21

 

I. 우리 현대사를 있게 한 원인에 대한 소고

 

들어가는 말: 우리 현대 역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의 업적이랄까 과오랄까 하는 문제 논란이 되는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본 4개로(I, II, III, IV) 된 시리의 글을 쓴다. 이 글은 그 중 첫째(I)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여기도 싸움, 저기도 싸움이고  여기도 썩은 냄새, 저기도 썩은 냄새가 나는 나라이다. 이 글 I에서는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렇게 되게 한 원인에 대해서 쓴다. 이런 것을 비판하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다. II에서는 이승만에 대해, III에서는 박정희에 대해, 끝으로 IV에서는 김영삼과 김대중에 대해 비판한다. 부족한 점도 있을 것이므로 차차 보완 내지 수정을 할 것이다.
이 시리즈의 글을 읽을 때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이 있다. 그건 비판(criticism)은 부정(negativity)과 다르다는 점을 인지하면 좋겠다는 점이다. 부정은 좋은 나쁘던 반대하는 입장인데 반하여, 비판은 좋은 것은 좋다 나쁜 것은 나쁘다 하는 것이다. 이에는 건설적인 충고나 바램이 포함된다.

 

 

(1) 가치관과 잘못된 신호의 차이

 

다음 두 가지 말을 자주 말하고 듣던 때가 있었다.

 

       a, 신라 대신 고구려가 통일했더라면  만주가 우리 땅이었을 것이라 더 더 좋았을 것이다.

       b. 대한민국은 잘 굴러 간다.

      

a에 대해서는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랬다면 지금은 중국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중국의 일부여도 좋다면 모를까 대부분 내 말로 충분하게 그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요지는 신라가 통일을 한 게 역사가 적합한 선택을 했느냐 아니면 역선택(잘못된 선택)을 했느냐의 하는 것이다. 그 답은 가치관이나 기타의 관점에 따라 달라서 정답을 알 수 없다. 따라서 a에 대해서는 어느 것이 좋다 옳다라고 말할 수 없다.

 

한편, b는 1997년 말에 발생한 IMF 관리체제, 즉 외환위기 때 듣고 하던 말이었다. 이는 우리 경제에 대한  잘못된 경제정책을 선택하고 그에 국민이 호응하여 발생한 결과이다.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 생뚱 맞는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b도 공자 때문에 그냥 현실에 만족하다 당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경제가 주는 신호를 잘 읽지 못하고 당한 값비싼 경험이었다. 왜 그런지는 나중에 쓰기로 하고 아래 (2)에서 공자에 대한 비판을 좀 하기로 하자.

 

 

(2) 공자의 유교가 우리 역사와 문화에 미친 영향


공자가 시작한 유교가 들어와 판을 친 것은 조선시대였고 그건 분명 역사의 역선택(잘못된 선택)이었다. 그 유교 때문에 우리는 지난 5백년도 넘게 톡톡  튀는 생각이 금기시 되었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부모의 말에 토를 달 수 없고 나아가 아이는 소유물이라 마구 해도 되는 양 행동하는 가부장적 태도는 공자의 가르침의 결과이다. 공자가 가르친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a. 독재의 정당화

b. 대충주의 학문태도

 

위의 a에 의하면, 왕은 왕이라는 것 때문에 국민은 그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고, 아버지는 아버지란 이유 때문에 존경받아야 하고, 남편은 남자이기 때문에  부인에 존경 받고, 그 부인은 칠거지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지금도 아이는 소유물이라 생각하는 가부장 태도가 횡횡하고 그 결과 아이는 맞아 죽기도 한다. 전에 한 신문보도에 의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아버지가 경찰로서 잘 나갈 때 첩과 살고 본처 아이들은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늙자 그 첩이  그 남자를 내치니까 작은 월급으로 살아가는 본처 아들 둘에게 내가 아비니까 모셔라 했던 모양이다. 그걸 거부하니 재판을 걸어 두 아들에게 얼마씩 생활비를 주라고 판사가 판결하였다. 이처럼 형법, 민법 등 각종 법에  공자 생각이 깊이 박혀 있다. a의 적용은 공자에게도 적용되어  후학은 절대로 그를 넘어서서는 안되고 그는 늘 최고였다. 향교라는 데 가보면 그는 중국인인데도 우리 한국에서 늘 1등으로 모시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최악의 사람이라 생각한다.

 

공자 때문에 어떤 대단한 사람이 태어나면 우리는 그를 사람을 넘어서지 못하는 전통이 있다. 공자가 그 그런 대단하여 넘지 못하는 사람이라 지금도 공자가 어떻고 논어가 저떻고 한다. 한의학에서도 허준은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이라 지금도 한의사만 나오면 허준이 어떻고 동의보감 저떻고 한다. 이런 것은 현대에서도 적용되어 이승만을 국부라 부르자느니 하고 박정희나 김대중을 욕하면 지역에 따라 대역죄인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학생이 교수를 넘어서면 말대꾸한다고 미움대상이 된다. 이처럼 대학교수라면 교수라는 이유로 존경받아야 하고 박사라면 뭐든 아는 것으로 착각하여 존경하고...그런게 모두 a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의 영향이다. 어떤 분야에 어쩌다 큰 사람이 나오면, a에 의해, 우린 그를 극복하지 못하여 창의가 발을 뻗지 못하는 이상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다 공자가 부르짖은 일종의 독재화의 정당화에 해당한다.

 

b는 이미 다른 데서 설명했으니 여기서는 간단히 설명해보자. 공자는 인(仁)을 그 학문의 근간으로 삼지만 인의 본질에 대해서는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공자와 그의 제자 등 공자의 사상을 할 수 있는 논어라는 책을 읽어보면 인에 대해 그가 한 말은 이러이러 하면 인이 있고 저러저러하면 인이 없다라는 말뿐이다. 그런 말은 인이란 개념의 본질이 아니라 인이 들어난 현상(신호)에 대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유난히 강조했지만 자기 학문의 기본 개념인 인의 본질을 캐어가는 것조차도 몰랐던 사람이다.

 

공자와 대조적으로 서양학문의 대부는 소크라테스이다. 그의 사상에 대하여  플라톤이 쓴 것는 대화라는 책을 읽어보면, 소크라테스는 어떤 개념을 말할 때 그 본질이 무엇인지 그게 다른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를 지속적으로 분석하여 탐구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인다. 그 결과 서양에서는 모든 학문에 그의 분석적 접근(analytic approach)을 발전시켜 과학과 사회학 및 인문학 등 모든 학문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러나 동양은 위 a로 인하여 누구도 그에게 도전하는 생각은 불경이 되어 전혀 이의 제기를 못한데다 그의 대충주의적 학문태도인 총체적 접근법(holistic approach)으로 인하여 학문이 별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위의 a와  b로 말미암아, 과거엔 논어나 외우고 시문이나 짓는 게 지배계급인 사대부가 할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서양의 분석적인 과학은 발전하지 못하고 그런 분야에 경험적인 것만 적용되어 한의학은 먹어보니 이런 데 좋고 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한의학도 양반이 아니라 학문이 좀 있는 서얼(신분이 낮은 첩의 아들인 서자 등)이 담당한다. 기타 실용적인 과학분야는 학문수준이 낮은 천민이 담당하여 발전할 수가 없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나 추진력이 어찌 사대부에 없겠나? 허균이 불명예로 죽었고, 조광조가 사약받고, 정약용이 유배가고, 실학이 종국적으로는 기를 별로 크게 피지 못하고 논어 속 공자의 말이나 외고 다니고 시문이나 짓던 사대부가 나라를 좌지우지 하게 되었다. 급기야 장동 김씨의 세도 정치로 인해  조대비가 이를 타파하고자 대원군을 선택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대원군 이하응의 역할은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었다. 그는 그런 걸 없애는 돌파력을 가졌지만 나라경영을 올바르게 할 능력이 부족하였다. 방향감각이 없는 오기와 복수심의 사람이라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문물의 받아들여 강해지고 우리를 목을 찰나에 있지만 그걸 보지 못하는 맹닝이었다. 그런 쇠국정책으로 나라를 패망으로 몰고간 인물이다. 그럴 선택한 조대비, 어쩌면 역사가  그를 잘못 선택한 소위 역선택(잘못된 선택)했다. 그가 선택한 며느리인 민씨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나는 민씨를 명성황후라 높여 부르고 싶지 않다. 그녀가 일본인에 의해 살해된 것은  인간적으로 비극이다. 그러나 똑똑하였다지만 현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 시아버지인 대원국과 잘 화합하여  나라를 구하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들어보지 못했고, 그 대신, 대부분의 며느리처럼, 친정식구를 끼고 시댁 대 친정간 정치대립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가 그녀도 역사가 역선택을 한 결과물이다. 내가 잘못 알고 잘못 본 것인가?

 

공자의 영향은 진행형이라 지금도 교수나 박사라면 실력 여하에 관계 없이 존경 받는 건 군사부 일체라는 공자의 영향이다. 한국 사람과 말을 해보면 대충주의가 눈에 띄인다. 예컨대, 길을 물으면 조금 가면 나온다고 하는데, 그 조금이 가 보면 1km도 된다. 얼마전 은행에 가서 화장실을 물으니 왼쪽으로 돌아가면 화장실이 나온다고 해서 가 보면 없고 길이 여러 갈래라  어느 갈래인지 몰라서 다시 돌아와 물었다. 그때에서야 돌아가 2층으로 올라가라 하였다. 이런 대충적 길 찾기도 공자의 영향 탓이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설명하기가 길어 못하지만 우리나라 교수들은 논문에도 내용과 글쓰기에 대충주의가 너무 많이 보인다. 여기서 이만 공자에 관한 이야기는 접자. 지나치면 아니 함만 못하리니. 다만, 공자의 비판을 보려면, 이 블로그의 카테고리 고전(논어, 도덕경 등)에 쓴 첫째 글인 공자는 태어나지 말았어야라는 글을 읽어보기 바란다.

 

 

 

(3) 공자의 독재 정당화로 인한 문제점

 

*****이 부분은 나중에 전면 수정하고 다시 쓸 것이다.

 

1) 독재에서는 썩는다.

 

독재에서는 부정부패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돈을 만드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에 대한 투기이다. 어릴 때 땅에 돈을 묻어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부동산 투기 현상이 일어난 나라치고 또 썩은 나라치고 고통받지 않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로 고통받은 나라라면 아일란드라는 영국 옆나라를 빼놓을 수 없다. 아일란드에서 친구간 팔아도, 형제간 팔아도 그 누구에게 팔아도 팔고 또 파니 땅과 건물이 돈덩이가 되었다. 아, 이게 아니구나 할 때는 이미 때가 늦어 부동산은 이미 돈덩이로 된 허상의 고통덩이가 되어 푹 꺼졌다. 그래서 그 나라의 집은 너와 나의 눈물덩이가 되어 IMF의 관리체제 신세로 전락했다. 

 

또 몇 년 전 중국을 갔을 때 베이찡 외곽에 짓다만 아파트 건물이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었다. 중국경제가 이로부터의 고통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도 과거 십수년 전부터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다. 워낙 팔 것이 많아 우리처럼 고통이야 적었겠지만 그래도 심한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일본경제의 침체 원인의 진단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부동산 투기에 의한 버블도 한 원인이라 본다. 한때 일본을 팔면 미국 땅 몇배를 사느니 하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일본인들은 미국의 록펠러 건물이나 기타 건물을 사는 투기를 보였다. 그렇지만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일본이 부동산 투기를 할 때 아주 낮던 이자율이 확 오르고 또 오르니 안오르니만 못했다인가 오르고 또 오르니 안 망할 나라가 없더라인가 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 이자를 감담 못하고 손 털고 나온 게 그 약삭바른 일본인들이었다. 그런 것도 일본 경제의 침체의 시발이 아닐까 조심스레 진단해 본다.

 

부동산 투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우리나라 사람을 뺄 수 없다. 부동산 투기가 1997년 말경에 일어난 우리의  IMF 사태에서 고통을 배가시킨 게 부동산 투기였다. 그거 많이 한 기업이 망하니 해고된 종업원들이 고통을 받았으니 말이다.  부동산 투기가 가능한 지역에 주민등록을 옮기어 돈을 번 썩은 사람이 청문회의 단골손님이고 그들이 진실하지 못한 사과로 땅은 그대로 보유하면서도 속으로는 그짓 못한 너것들이 바보지 하면서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었다. 그건 과거 정부는 물론이고 4대개혁인가 한다는 현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부동산 투기를 불법으로 하고도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되면 그건 정말 부정부패의 나라로서는 금메달 감이다. 이들에게 공직에 있으면 연금도 주는데 부정부패로 돈도 벌고 연금도 벌고 안 한 사람이 바보일 뿐이다. 이런 게 다 지난 장기정권 독재정권의 결과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여러 언론매체의 대담이나 보도를 보면, 부정부패가 심해 돈이면 뭐든 된다는 나라가 북한인데 그것도 장기독재 탓이다. 중국의 시진핑이 부패로부터 나라를 바로 잡느라고 후진타오 정권이나 그 전 장쯔민 고위층에 철퇴를 내리고 있다. 중국은 그러기 전에 부정부패는 민주주의가 발달해야만 가능하다. 우리도 민주주의가 발달 못해 아직도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우리는 이러한 썩은 것을 바로 잡지 못하고 장관도 하고 국회의원도 하고 대통령도 하였으며 그런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정부조직이나 공기업에 박혀 있다. 그래서 세세손손으로 썩은 것이 나라를 바로 잡기가  불가할 것 같다. 

 

부패는 불법투기뿐만 아니라 이권의 청탁 등 다양하여 이미 독자도 식상할 정도로 들었을 것이다. 그 중 먼저 교육 관련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한때 촌지가 있어 가장 인기 있던 담임은 초등학생 1학년의 담임이었다는 웃기엔 너무 비참한 나라였다. 어린 학생을 빌미로 교사가 촌지에 따라 아이들을 달리 다루기까지 했다지 않는가! 이제 그런 건 사라졌지만, 영훈 중학교, 의정부에 있는 한 대학의 소유주가 국회의원이었다가 유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대학, 원주의 어떤 재단이사장, 서울의 M대학의 재단문제 등에서 보듯이 재단자금의 유용, 힝령, 전용 등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의 돈벌이 수단 으로 되어 교육이 제대로 되겠는가! 부정부패는 전두환, 노태우의 통치자에서부터 이장들의 농촌자금의 유용 등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발생한다. 이는 또한  포스코의 전 사장, 4대강 공사의 담합 및 부실공사 의혹 등과 같이 크고 작은 과거완료형만이 아니라 , 아리랑 TV의 방모 사장에서 보듯 유형과 규모가 다양하게 현재진행형으로 발생하고 있다. 신 모의원이 아들의 로스쿨 졸업에 개입하였다는 인적문제는 물론 노모 의원의 시집의 판매 등에서 그 형태가 다양하다.

 

 

2) 독재파당이 판을 친다.

 

독재에서는 파당이 많다. 독재자체가 파당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이씨조선. 이씨조선은 일본인들이 쓴 말이라 안 쓰려하지만 북한도 조선이요 고조선도 조선이라 그냥 조선이라 하면 찜찜함)은 파당의 역사이다.  공자의 독재 정당화는 파당을 하도록 되어 있다. 독재를 하러면 그를 지지해줄 파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선은 공자의 후예들로 가득차 있으니 파당의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정도전이 왕의 전횡을 막으려고 왕권을 줄이는 제도로 만들었다 한다. 그러나 이 좋은 제도가 오히려 파당을 만들어 싸움을 하도록 부추기는 제도로 되어버렸다. 이처럼 잘 하려고 만든 게 우리 한민족에게는 늘 이 모양대로 문제가 된다. 동인과 서인에서 시작되어 노론이니 소론이니 하며 4색 당파로 인해 영정조의 탕평책이 효용이 없이 정조가 독살되었다는 설도 있다. 나아가 그런 당파싸움이 친일이나  친러니 하다가 급기야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최후 순간에 망국의 책임자는 고종, 대원군, 민비인데, 대원군과 민비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파당의 수장일 뿐이다. 무능력으로 그걸 방치한 게 고종이다. 누구는 민비를 명성왕후라 부르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민비란 말은 일본인이 그녀를 비하하려 부른 이름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녀를 그렇게 부른다. 

 

이념적으로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한 공산당이 독재를 했다. 또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변호사 출신인 민간이었지만 독재를 했다. 또한 싱가포르에서도 리관유는 변호사 출신이면서 독재를 했다. 이들을 예외로 치면 오늘날 대부분의 독재는 군인이 쿠데타로 시작한다. 이념의 나라이지만 중국이나 북한은 쿠데타는 아니하였어도 결국은 군인들을 이용해 나라를 장악하여 독재를 한다. 이념의 나라는 아니었지만 터키의 케말파샤도 독재를 했다. 케말파샤는 군주제를 폐지하여 독재를 했지만 자연사가 빨리 와 장기 집권을 하지 않아 지금은 터키의 국부로 불린다. 만약 그가 자연사하지 않았다면 권력을 놓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 터키는 아마 대 혼란에 빠지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리관유는 중도에 스스로 하차하였지만, 다른 군부독재자 중 누가 스스로 하야한 자기 있었던가 모르겠다. 죽어야 그 자리를 내 놓는다.

 

군부쿠데타로 장기집권으로 쿠데타를 하다 보면 서로 죽이는 사태가 벌러진다. 공로자 중 핫바지 대장은 나중에 실질적 주모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또 그 주모자와 핫바지 사이의 관계에 따라 핫바지는 일정한 보상을 받고 조용히 살거나, 5.16쿠데타 때 핫바지 대장인 장**에서 보듯, 대부분 토사구팽감이다. 핫바지는 자기가 한 역할에 일정한 지분을 염두에 둘 터이니 주동자에게는 거추장스러울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쿠데타 주모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는 파당을 지어 쿠데타를 하였지만 깡패라는 파당을 일소하는 것을 개혁의 1호인양 한다는 점이다. 자기들은 더 큰 부패의 길을 시작하면서 부패를 일소한다고 소리친다.

 

파당의 예를 좀 보자. 옛날의 집성촌도 당파이요. 종친회도 파당이요, 오늘날의  동창회도 파당이다. 물론 **향우회도 파당이요 반상회도 파당이다. 반상회는 그냥 일하자는 게 아니고 이웃집은 어떻니 저떻니 마치 옛날의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라는 TV 프로그램 수준의 남의 일에 콩놔라 팥놔라 수준의 일이 일어난다. 조금 지나치면 북한의 총화 같은 지경으로 갈 수도 있다,. 유신이 성공했다면 그랬을 것이다. 다.

 

파당은 상기와 같은 쿠데타를 하는 것 외에도 추가로 많은 폐단을 저지른다. 많은 청탁 등의 집단이기주의가 그런 파당에서 비롯된다. 내가 미국서 교수하다 돌아와 교수가 되려고 원서를 내려 하니 **대학은 00지역 출신이 주가 되어서인지 그 지역사람을 원한다는 언질을 주기도 하고, 또  xx 대학에는 ##대학 출신이 많아 그 대학 출신이 아니면 그 대학에 원서도 내자 말라는 충골르 받기도 하는  등의 파당이 횡횡하였다. 방송국을 보면 특정 대학의 아나운서들이 많고 타 대학 출신은 구색맞추기로 조금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종합병원도 그렇다. 이런 게 옛날 같으면 기묘사화 등 상대방 죽이기가 일상이었을 사회였고 조광조처럼 사약을 받고 정약용처럼 유배를 갔으리라.

 

3) 갑질논란은 왜 발생하는가?

 

공자는 독재를 정당화하는 이론을 제공하였는데, 그 결과로 위계질서라는 이름으로 권략, 나이, 학문 등이  남보다 우위에 있으면 이를 휘두르는 갑질 경향을 보인다. 그런 권위적인 사회에서는 남을 눌러야 나의 위상을 세우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갑질은 그 갑이 되게 한 원인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부모는 부모라는 이유로 갑질을 한다. 아이의 인생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너는 이 방향으로 나가야 해 하는 건 양반이다. 이게 다 공자가 시작한 권위중의적 발상에 근거한 잘못된 교육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는 권력과 돈이고 현실적으로 주먹도 한몫을 한다. 돈(경제적) 갑질의 예는  **간장, **유업, **전통주 등의 회장이나 회사가 운전기사나 대리점 등과 같이 경제적 약자에게 한 짓이다. 권리와 의무 사이의 갑질은 운전사고를 살짝만 나도 피해자의 무한대 권리가 작동해 갑질을 해댄다. 이들은 신체적 피해가 증명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자기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누려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 한다. 주먹의 갑질은 깡패가 일반인에게 부리거나 사채를 얻었을 때 주먹쟁이들만 부리는 갑질만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어쩌다 어깨만 부닥쳐도 10대들이 물리적 힘의 갑이 되어 어른들을 드들겨 패는 신체적 위해 사건에 대한언론보도를 접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형사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다는 말을 종종 듣고, 또 경찰이 피의자를 고문이나 협박을 통해 자백을 강요하는 건 공권력을 이용한 갑질이다.  무슨 사모님인가 사위의 분륜을 의심해 청부살인을 한 사람은 감옥에서도 특혜를 받는다든가 떠는 유전무죄 무전무죄는 돈과 권력이 야합한 결과의 갑질이다. 

 

 (나중에 더 씀)

 

 

3) 음서제는 왜 발생하는가?